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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상처가 날아간 자리에도 희망의 꽃은 피어나는가

by 진 란 2008. 2. 18.

 

19576

상처가 날아간 자리에도 희망의 꽃은 피어나는가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한 만가

-최창근 글

 

 

 


육체 속에 갇힌 나의 영혼이여 너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너의 등에 깃털 달린 날개 있어 너보다 밝은 그곳으로 날아오를진대
이곳의 어두운 낮을 무엇 때문에 좋아하리오
- 조아성 벌레, <이데아>에서 -

형제여, 바다는 거칠다 우리의 바다는 거칠다
- 자파르 파니히, <하얀 풍선> 중에서

누가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했나
얼마나 많은 피눈물이 흘러 강을 이루었나
- 메르세데스 소사 -


오늘날 대부분의 시는 눈을 위해 쓰여지지만 귀를 위한 시도 엄연히 존재한다. 종이 위에 활자로 쓰여진 시가 작가와 독자 사이에 개인적인 교신을 갖는데 비해 음유시는 그 생명이 다수 사이의 공감 즉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데 있다. 시인은 우주와 교감하고 만인의 심금을 울린다. 오르페우스가 그랬고 백수광부의 처가 그랬다. 음유시에는 항상 '민중'이란 말이 따라 다닌다. 소리에는 국경도, 계급도, 남녀의 구분도, 언어의 장벽도 없는 탓에 사람들 가슴 깊은 곳에 바로 가서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무명시인과 무명가수들이 남긴 노랫가락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까닭은. 음유시인들은 그 노래를 모아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며 나누어주는 이들이다. 왕이나 귀족, 성직자와 같은 지배자 중심의 역사가 있는 반면 그의 반대편엔 민중으로 대변되는 피지배자들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민중의 역사는 세계의 전역에서 수많은 노래로 불려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건너온다.

예지의 서양시인 빌헬름 버틀러 예이츠가 그의 시 <술노래>의 첫 구절을 빌어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고 말한 것처럼, 동양의 시선(詩仙) 이 백이 <대지의 슬픔을 위한 술노래>에서 '술은 금술잔에 이미 넘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마시지는 말아라. 우선 먼저 내가 당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리니,'라고 읊었던 것처럼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그의 운을 받아 한국의 국민시인 소월 김정식이 <님과 벗>에서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로 끝맺었듯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와 같이 아주 자연스럽게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보통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노래들은 일시적인 유행에 의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정신을 잃게 만드는 반면 당대의 뛰어난 시에 선율을 붙여 부르는 음유시인의 노래들은 그 생명력이 길다. 그것은 그들의 노래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대중음악과는 달리 한 자아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여 자신을 발견하는 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샹송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프랑스의 대표적 음유시인이자 무정부주의자인 조르주 브라상스는 비용과 엘뤼아르, 아라공의 시를 노래했고 좌파 지식인인 벨기에의 가수 자크 브렐과 정치학을 전공한 모나코 태생의 레오 페레와 장 페라는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가수이며 <죽도록 사랑해>의 가수 프란시스 카브렐은 녹색당 소속의 지방의원인가 하면 사르트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던 줄리에뜨 그레꼬 역시 남미의 반독재 시위대 앞에서 콘서트를 여는 저항활동의 기수이다. 감미로운 샹송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이브 몽땅이나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던 장 자끄 골드만마저도 <붉음>이라는 메시지가 강한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단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 걸쳐 사회적 메시지를 대중 속에 깊이 뿌리 내리려는 의식이 투철한 민중가수들이 존재해왔다. 독일의 한스 바이더나 캐나다의 부르스 콕번, 터키의 쥘푸 리바넬리, 스페인의 유이스 아크, 포르투갈의 조제 아폰주, 러시아의 불라트 오쿠자바, 알제리의 아미드 바루디, 앙골라의 봉가 쿠엔자, 남아공의 미리암 마케바와 압둘라 이브라힘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의 북부 바스크 지방 출신의 음유시인 파코 이바녜스는 칠레의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스무 살에 쓴 <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한 개의 절망의 노래>나 19세기 말 모데르니시모 운동의 선구자였던 루벤 다리오의 <봄에 부르는 가을의 노래>에 곡을 붙여 즐겨 불렀었다. 그는 또 1936년 스페인 내란 때 희생된 페데리고 가르시아 로르카의 옛친구이기도 한 대시인 라파엘 알베르티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세기의 파란 많은 굴곡의 역사로 인해 스페인과 중남미에는 그 어느 곳보다도 음유시가 많이 불려졌었다.

많은 전쟁과 극심한 정치적 변동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하면서 입은 많은 상처들이 노래에 생생하게 반영되어 민중의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그 노래의 주제는 '사랑'과 '조국'이다. 투쟁의 역사는 상처의 역사다. 아니, 상처의 역사가 곧 투쟁의 역사이리라. 그리고 그러한 투쟁은 투쟁으로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전위된다. 볼리비아 출신의 음유시인 호르헤 테이예르는 "그 어떤 시도 불의를 뒤집을 힘은 없다. 하지만 시는 우리에게 그 어떤 고통에도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했고 그러한 고백은 "나의 목소리는 여러분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 마치 여러분의 목소리가 내 것인 것처럼."이라 말했던 스페인의 음유시인 루이스 에두아르도 아우테의 간절한 바램과도 이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의 경우는 어떠한가. 혜강의 글 <성무애락론>은 중국의 음악사상사, 나아가 예술사상사에서 고대 중국의 유가와 도가가 음악을 바라보았던 기본적인 관점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고 매우 의미 있는 사료이다. 주인과 객의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글의 요지에 따르면, 음악에는 슬픔이나 즐거움이 따로 없다. 소리에 밝은 자는 그 소리가 아무리 미묘해도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낼 수가 있으며 마음의 미세한 변화도 소리의 높낮이, 강약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소리와 마음이 모두 몸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길흉을 미리 알지 않았을까. 감정이 악기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이미 여러 악기와 지방 음악이 각기 고유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에는 자연히 정해진 애락(哀樂)의 정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음악은 사람을 울리기만 하지 웃게 한 적은 없다. 예로부터 풍속과 민심을 바꾸는 데는 음악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 것도, 또 공자가 몹쓸 음악은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모두 여기서 기인한다. 결국 음악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정치가 평화로울 때의 음악은 안온하고 즐거우며, 망해가고 있는 나라의 음악 소리는 애수에 차 있고 비탄에 빠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한 나라가 평화로운가 혼란스러운가는 정치하기에 달렸으며 음악은 그것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고전 [예기]의 <악기편>에는 음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있다. "모든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게 된다. 안에서 감정이 움직이기 때문에 소리가 되어 나타난다. 소리는 글을 이루는데 이것이 바로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은 그 나라의 정치가 잘 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지러운 나라의 음악은 원망과 분노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성(聲)에서 음(音)이 비롯되고 음에서 악(樂)이 나온다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자고로 소리만 알고 음을 모르는 자는 금수와 같고 음만 알고 악을 모르는 자는 서인에 가까우며 악을 아는 것이 비로소 군자라고 했다.

음악은 늘 그 시대의 모습과 사회상을 대변해왔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한 나라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에도 음악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일깨워주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가수가 아닌 시인의 목록에 그 이름이 올라있는 밥 딜런은 "이 세상에는 사랑타령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단 한마디 말로 이 모든 정황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있다. 또한 음악에서의 '조화'와 '분별'을 강조한 [주역]의 <계사전>을 보면 가장 위대한 음악은 쉬운 것이고 가장 위대한 예술은 간단한 것이라는 간이(簡易)의 정신이 드러나 있다. 그럴 때만이 악자낙야(惡者樂也),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이 음악을 즐겁게 접하고 들을 수 있는 것이리라. "음악은 인간의 영혼 그 자체이다. 모든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닮아간다. 인간의 영혼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1. 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정호승 시, 김광석 곡 <부치지 않은 편지> 전문


[김광석 앤솔로지 - 다시 꽃씨 되어]라는 타이틀을 달고 앨범이 발표되고 연이어 그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생전에 그와 친분이 있던 동료 가수들이 나와 그의 노래들을 한 곡 한 곡씩 불렀다. 죽은 자의 음성에 산 자의 음성을 덧입혀 새롭게 탄생한 박학기의 <잊어야 한다는 이유로>와 <외사랑>를 시작으로 <사랑한다는 이유로>의 김장훈 그리고 권진원의 <변해가네>가 이어졌다. <서른 즈음에>를 부르던 장필순은 곡의 말미에 눈시울을 붉혔고 <그날들>을 열창한 안치환은 떠나간 벗을 떠올리며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합창했다. 이소라나 한동준, 강산에, 조규찬, 윤도현 같은 동료 후배 가수들은 저마다 그에 대한 그리운 추억 한 자락을 앨범의 말미에 끼워 넣고 있다. 그만큼 그가 보고 싶다는 뜻일 터이다. 그들에게 가수 김광석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 가수를 알고 있다, 고 말하는 순간 그는 곧 사라진다. 그가 사라진 저쪽은 아득하다. 너무 아득해서 손을 내밀면 점 점 더 그는 내 곁에서 멀어진다. 멀리 달아난 그리하여 내 눈앞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그가 가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할 때가 있다. 살아 생전에 나는 김광석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그의 콘서트 장에 가본 일도 없다. 그렇지만 그의 노래는 나의 노래가 되어 늘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 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나온다면 아마 그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그일 것이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장 미셸 푸코가 "21세기는 그의 시대가 되리라."고 예언했던 질 들뢰즈가 자신의 집 이층 베란다에서 투신 자살을 감행한 그 며칠 후에 그의 부고 기사가 신문에 실렸었다. 평생동안 위반과 탈주 그리고 머물지 않는 유목민의 생활을 꿈꾸던 한 철학자의 죽음의 진상이 베일에 싸였던 것처럼 가수였던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여전히 판명되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는 아마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므로 이 가수의 죽음을 알고 있지 못하다. 이 가수의 죽음을 알고 있지 못할뿐더러 이 가수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노래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시절의 노래로부터 시작해서 동물원 시절의 그의 곡과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아름답게 빛나던 곡들을 말이다. 사람은 가고 노래는 남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노래가 남아있는 이상 사람도 남아있는 것이다.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내 마음이 외롭고 춥고 쓸쓸할 때 비오는 오월의 거리를 지나다가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순간은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따로 있지 않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지고 현실의 세계인 차안과 꿈의 세계인 피안이 몸을 섞는 것이다. 아니면 그가 떠난 후에서야 그의 노래가 가수의 육체를 빌려 덧없는 이 세상을 떠도는 것일까.

 

 


그가 남기고 간 노래들 이를테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 시절의 <그루터기>와 동물원 시절의 <거리에서> 그리고 솔로로 독립한 후 발표한 <나의 노래>와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나무> 등은 그의 대표곡이 됐지만 아무래도 그가 서른 세 살의 젊은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비밀이 담긴 앨범은 그의 4집 음반이었을 것이다. 4집에 수록돼 있는 비교적 잘 알려진 <일어나>나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아니었음을> 외에도 <회귀>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혼자 남은 밤>들을 듣고 있으면 '아! 이 남자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만다. 그가 생존해 있었다고 해도 그 이상의 완성도 높은 작품은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수 김광석의 모든 것은 4집에 고스란히 용해돼 있다고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한마디로 그의 음악인생의 결정체이자 고갱이에 해당하는 이 앨범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형적인 한국의 음반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제작자의 책임? 그 앨범을 발매한 음반회사의 책임? 아니면 그의 가치를 몰라본 대중들의 책임?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그렇게 진정한 음악인 한 명을 어이없이 잃어버렸다. 물론 그의 죽음의 사유가 음반의 실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능력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 제작한 결과물이 일반인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의식 있는 예술가라면 틀림없이 좌절의 깊은 수렁 속으로 침몰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가 입은 심적 타격은 의외로 커서 아마도 헤어나기 힘든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했을 지도 모른다.

예술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노래도 그런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의 사후에 비로소 빛을 본 라이브 실황공연을 담은 [노래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을 대변해주고 남음이 있다. 그의 육성은 진솔하다 못해 평범한 비범함이 무엇인지를 일러주고 있어 어떤 외경감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야말로 삶의 단계에 있어 최고의 경지일 것이므로.


그는 정규 앨범 도중에 문득 [다시 부르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음악여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업과 잊혀진 음악인들의 명곡들을 재조명함으로써 그가 앞으로 가야할 길의 좌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그의 동료였던 안치환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지만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가 되살려낸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의철의 <불행아>, 한 대수의 <바람과 나>,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그 자체가 그 이전에는 그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려 하지 않았던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 작업이다.

비운의 작곡가 윤명운이 쓴 노래들이 한영애를 통해 뒤늦게 빛을 보거나 반대로 이주원과 전마리의 한 생애에 걸친 고독한 항해가 결국은 세인에게 잊혀지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면 김광석의 고군분투는 절친한 벗이었던 안치환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맞물려 이제는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기록돼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객 - 김광석이 남기고 간 노래]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그의 추모 앨범에서 <희망의 노래>의 류금신과 <불나비>의 김영남 그리고 <살다 보면>의 권진원이 부르는 <바람꽃>과 <이름 없는 들풀로 피어>, <내 사람이여> 같은 곡들이 고요한 파문을 남기는 까닭은 아마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한 명은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를 좋아했었고 또 한 명은 신촌 블루스 출신의 정경화를 좋아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동물원 시절의 김광석을 좋아했었다. 김광석을 좋아했던 친구가 즐겨 불렀던 애창곡은 <그날들>이었다. <그날들>에서 감지되는 삶의 한 부분을 미리 훔쳐본 자의 예정된 운명이 <부치지 않은 편지>로 옮아간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는 슬며시 웃어버린다. 부칠 수 없는 편지도 아니고 부치지 못한 편지도 아닌 왜 하필이면 부치지 않은 편지였을까.

그것은 생명공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 지도에 명시된 프로그래밍 된 인간의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에 인화된 사람 좋은 그 웃음에서 나는 인간의 의지나 이성으로는 어찌해볼 도리 없는 불가항력적인 허무의 뿌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뿌리는 암세포처럼 그의 생애 속으로 깊고 너르게 확장되고 만 곤고(困苦)한 삶의 뿌리이다.

허진호는 그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때 이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이 겉늙음의 징후와 조짐들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포착해냈지만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인간의 삶은 이미 어느 정도는 정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념이 결코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면 고즈넉한 곳을 혼자 걸으며 그의 노래를 부를 때처럼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는다. 그것은 그가 가야하고 내가 가고 또 우리 모두가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인생길, 미만(未滿)한 안개 속에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피도 눈물도 없이 막막하고 막막한 춥고 고단한 사육제의 나날들이기 때문이다.

 

 


김광석은 긍정과 부정 사이에 존재한다. 아니, 그 사이를 시계추처럼 되풀이해서 오간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반문하다가도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왔는 걸'이라고 자위하면서 일면 초탈한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와 관조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안치환처럼 첨예한 비판적 인식을 통해 불편부당한 역사나 사회에 철저하게 개입해 들어가지 못하고 세속과 신성의 경계를 영원히 떠도는 비극적인 중간자처럼 문 앞에서 끊임없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안치환이 자신의 인생관을 그 특유의 뚝심으로 긍정의 삶 쪽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비해 김광석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부정의 긍정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부정의 긍정이란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세계인식이 형이상학적인 존재론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나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 순간에 말라버리지' 혹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오직 슬픔만이 돌아오잖아'라거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스쳐 가는 의미 없는 나날들 두 손 가득히 움켜쥘 순 없잖아'와 같은 노랫말에도 보이듯 그는 궁극적으로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세계관의 소유자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고 탄식하거나 '외롭게 나만 남은 이 공간 되올 수 없는 시간들 빛 바랜 사진 속에 내 모습은 더욱 더 쓸쓸하게 보이네'라고 우울해하는 것이다. 그 우울함이 지나쳐 극에 달하면 거리를 거닐며 노래를 불러봐도 내 슬픔은 환하게 밝아지는 눈물로 일순 전위될 뿐 결국은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라는 극단적인 자기다짐 내지는 자기최면으로까지 확장되고 마는 것이다. 부정적인 인식의 극대치까지 솟아오른 자에게는 이제 <끊어진 길>만이 보일 뿐이다.

슬픔의 음유시인 이무하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통해 고백한 "높푸른 하늘 희고운 구름 먼 산허리 휘돌아 흐르는 강물 아무 말 없어도 이젠 알 수 있지 저 부는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 . . 저 부는 바람에 실려 가는 향긋한 꽃내음 내 깊은 잠 깨우니 나도 따라 가려네 그 길 끊어진 너머로 나는 가려네'와 김지하의 시를 빌려온 <회귀>의 다음과 같은 가사를 보라.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검은 등걸 속 애틋한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저 꽃들은 가네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만 뒤에 남기고 기인 기다림만 여기 남기고 젊은 날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봄날은 가네 그 빛만 하늘로 오르고 빛을 뿜던 저 꽃들은 가네"

 

 


안치환은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으며 김광석은 일단 그 길의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 막다른 골목은 김광석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지만 그 의지마저도 실은 예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김광석은 선택함으로써 다시 선택당했다.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면 그곳엔 4차원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인간의 유한한 시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신천지가 펼쳐질 것이다. 그곳은 5차원이나 혹은 6차원의 세계일까? 선으로 이루어진 1차원의 세계와 면으로 각이 진 2차원적 세계를 거쳐 입체가 빚어내는 3차원의 세계를 통과하면 4차원의 세계가 나타나듯이. 3차원의 세계에서 공간이동을 감행한 인간은 시간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4차원의 세계에 닻을 내리지만 그 세계엔 미래가 저장돼 있기에 매 순간 변화할 도리밖에 없다. 그러하지 못하고 붙박이처럼 고정되는 순간 인간은 시지프스의 일생처럼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일에 매달리고 만다.

안치환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맥을 충실하게 이어가야 하는 사람이고 김광석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는 그 색깔이 다른 동물원의 전통을 따라가야 했던 사람이다. 그들은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였지만 그렇다고 쌍둥이처럼 한날 한시에 태어난 운명 공동체는 아니었다. 그들이 선택했던 길은 그러하기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차이가 오히려 그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김광석은 죽었고 안치환은 살아있다. 안치환의 행로에 김광석이 모두 다 들어앉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점에서 그 둘은 하나가 된다.

김광석은 그의 몫을 안치환에게 주고 갔다. 안치환은 김광석의 그림자를 떠맡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 안았다. 안치환의 노래엔 김광석의 숨결이 녹아있다. 안치환의 어깨와 등허리에 김광석은 찰싹 달라붙어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안치환과 김광석은 짝패인가. 그들이 짝패라면 그것은 너무나 희귀해서 앞으로는 그 어디에서도 접하기 힘든 드문 사례로 남을 것이다.

김광석은 안치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김광석은 안치환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김광석은 안치환이 아니고 김광석이 된다. 반대로 김광석은 안치환이 아니라고 말해 버리면 김광석은 안치환의 옷을 껴입게 된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안치환은 언제나 죽음 쪽에 한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다. 생은 그 자체로 순진무구하기에 사람의 마음이 현악기의 줄과 같아서 스치면 소리를 내고 울 듯이 진심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그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 마음의 고향


20세기 독일 및 프랑스의 핵심적인 철학사조인 현상학이 에드문트 후설(1859-1938)에 창시된 것은 기존의 유럽 자본주의를 이끌어왔던 이데올로기와 문화적 가치들이 극심한 혼란을 겪으며 급속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제 1차 세계대전 후였다. 자연, 역사뿐만 아니라 정신, 의식, 본질, 예술, 종교 등 그 존재 및 인식구조에서 서로 구별되는 다양한 사태 영역이 있음을 망각한 채 '자연' 혹은 '역사' 등 특정의 사태 영역에만 타당한 존재 및 인식원리를 일반화시켜 모든 사태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연주의(르네상스 시대이래 비약적으로 발전한 자연과학, 그 중에서도 특히 수리물리학의 성과에 크게 자극 받고 고무되어 물리학적 방법이 모든 학문의 참된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와 역사주의(19세기 후반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역사학을 비롯한 제반 정신과학에 편승해 성립된 철학사조로 역사 현장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되는 범주들을 통해 모든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적 입장)를 '사이비 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새롭게 등장하게 된 현상학은 철학의 목표는 참다운 인식의 구현에 있다는 철학의 근원적인 이념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다.

다시 말하자면, 후설의 현상학은 '철학은 모든 것의 원리, 뿌리에 관한 학이다'라는 전통적인 철학의 이념을 근원적으로 새롭게 부활시켜 현대 과학 일반이 처한 위기, 더 나아가 현대인이 처한 실존적 위기의 극복을 목표로 삼는다. 그에 의하면, '사태 자체로!'라는 현상학의 구호가 보여주듯이 엄밀한 의미로서의 철학을 근본이념으로 하는 현상학이 탐구해야할 사태는 지향성이다. 지향성은 '의식은 언제나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의식이 지닌 불변적이며 초시간적인 본질적 속성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지향성'이라는 개념을 그러한 본질에 적합하게 분석하여 하나의 학문으로 세우기 위한 방법적 절차가 되돌아감, 환원이다. 대상들은 사물 자체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의해 정립된 혹은 지향된 사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이 방법을 '현상학적 환원'이라 한다.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론은 프랑스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에 의해 구체화된다. 1945년에 발표한 [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신체적 실존의 지각현상을 강조한다. 퐁티가 이해하는 현상학의 임무는 사물과 정신 사이의 의사소통의 방법을 재정립하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현상학은 '존재하다'가 '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의미는 '나에 대해 존재하는 것', 바꿔 말하면 '나에게 나타나는 것'이라 주장한다. 부연하자면, 사물과 정신의 관계에서 정신은 사물에 대한 정의 속에 그것이 정신에 주어지는 실제적 조건들을 포함시켜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휴가를 맞아 고향에 가는 여정도 휴가의 일부인 것처럼 사물을 향한 길도 사물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각은 지각된 사물에 대한 지각 주체의 관점으로서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속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상학의 기본적인 공리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근대적 명제는 메를로퐁티에 이르러서 '나는 지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변화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후설과 메를로퐁티로 대표되는 인식론으로서의 현상학은 20세기초 유럽 철학계를 강타하면서 전후 세계에 절대적 확신성을 부여해줄 새로운 철학론으로 간주되어 역사 철학, 생의 철학, 실존주의, 해석학, 존재론, 형이상학 등으로 자신의 입지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게 되는데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바슐라르와 리쾨르들은 이때 등장한 현상학자이다. 그 가운데서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고호의 그림 <농부의 신발>을 예로 들어 예술작품이 실용적인 대상이나 일상생활의 덫에 걸린 존재와 달리 진실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소모되지 않은 채 지속된다는 사실을 현상학적 차원에서 갈파해낸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아무런 불편 없이 신발을 신고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그 신발이라는 하나의 존재자가 진실로 무엇인지 모른다. 신발의 본질은 그것을 눈앞에 두고 관찰하거나 실제로 신어본다고 해도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존재자로서 신발은 미래에 무한히 펼쳐져 있는 하나의 '세계'를 전제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개별적인 존재자에만 사로잡혀 보다 근원적인 존재론적 사태를 망각한 채 살아간다. 진정한 예술작품만이 다시 한번 진리 - A와 B의 일치라는 의미의 파생적인 진리가 아니라 세계의 근원적인 개방성이라는 존재론적 진리 -를 가능케 한다. 고호의 그림은 신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진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고호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신발이라는 도구가 삶의 총체적인 의미망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즉 존재론적 차원이 개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차원에서의 현상학은 베르 오 스테이츠의 작업을 통해서 연극에 적용되었다. 그는 무대 위의 특정한 존재들이 재현과 환영에 의해 엄격하게 연계되길 거부하는 방식들에 주목하면서 연극은 생동성과 육체성, 한마디로 생명과 더불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극의 중요한 성취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며 '존재의 두께와 의식 사이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이와 같은 스테이츠의 생각은 연극은 무대 위의 살아있는 배우들의 육체와 더불어 만들어져야 한다는 줄리앙 벡의 실험극단 '리빙 시어터'의 활동과 맞물려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관객의 적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강렬한 시각효과를 낼 수 있는 나체의 즉흥적 퍼포먼스를 통해 정치적 권력을 공격하는 등 감각적 수단의 구체화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또한 폴란드 실험연극의 단장인 예르지 그로토우스키는 연극에 사용되는 모든 기술적 측면을 제거하고 꼭 필요한 두 요소인 배우와 관객에만 집중하는 '가난한 연극'을 주창했다. 그는 배우들의 신체적 기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관객들에게 신비감을 줄 수 있도록 유도했고 더 나아가 그들이 인간과 그의 신체, 자연, 상상력, 다른 인간과의 원초적 관계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연극의 뿌리가 순수한 제의적 경험이라는 사실을 재발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연극에서의 현상학적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은 직관에 근거한 자연스럽고 유기체적인 내면심리 연기의 창시자인 콘스탄틴 스타니스랍스키와 서정적인 사실주의에 기초한 아름답고 우아한 희곡의 대가 안톤 체홉의 공동작업을 통해서였다. 스타니슬랍스키의 경우, 그의 자전적 저서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무대는 늘 '삶과 죽음 사이의 전쟁터'였다. 그는 무대에서 태어난 예술작품은 오직 한순간만 살아있으며 그것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우리 곁에 오래 머물 수 없도록 결정지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배우는 실제 리얼리티의 단계로부터 또 다른 삶의 단계로 통과해 가는 역할을 살아냄으로써 인생을 창조하고 진실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자신들이 이제껏 살아온 게 아니라 일종의 죽은 상태로 지내온 것 같다고 느끼는 극중인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체홉의 희곡은 그러하기에 스타니슬랍스키에게는 예술과 연극의 주요관심사였다. 이러한 현상학적 성향은 바다와의 싸움에서 세 아들을 차례로 잃어버리면서도 흔들림 없는 꿋꿋한 태도로 내면적 평정을 지켜나가는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을 다룬 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턴 씽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 Riders to the Sea>과 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온 우주가 관여하고 있음을 비극적인 분위기와 정조를 통해 상징적이고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벨기에의 희곡작가인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틈입자 The Intruder>가 보여주는 예술적 정감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경우, 처음엔 동랑 유치진의 제자로 희곡세계에 입문했지만 후에는 그를 능가하는 뛰어난 극작술을 보여준 월북작가 함세덕의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함세덕의 <동승>은 <도념>이라는 제목으로 1939년 삼월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 2회 연극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그의 대표적인 단막극으로 그해 오월 유치진의 연출에 의해 극연좌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1949년 당대의 여배우 최은희가 어머니 역을 맡아 <마음의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이 희곡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장선우의 영화 <화엄경>에 등장하는 선재동자처럼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 채 산사에서 자란 '도념'이라는 동자승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지막엔 그의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극의 줄거리를 인물의 등, 퇴장에 따른 시공간과 사건의 변화에 따라 장면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안대가집 재 올리는 상황이 제시되고 초부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도념의 말상대가 되어주 고 있다. 재 구경오는 여자들인 새댁과 과부를 통해 안대가집 아씨가 설명되고 이와 함께 도념의 어머니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재 구경오는 남자들인 총각과 노인을 통해 도념 에 관한 정보가 제공되며 도념은 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인수의 등장으로 토끼 덫을 쳐 놓은 도념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속세에 대한 도념의 그리움이 강조되고 도 념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가 보다 구체적으로 제공된다. 미망인은 도념을 양자로 맺고 이 에 대한 허락을 스님께 구하고자 한다. 도념은 서울에 가게 됐음을 기뻐하여 이 사실을 초부에게 알린다. 그리고는 토끼덫을 확인하러 비탈길을 내려간다. 주지는 도념을 데려가 고자 하는 미망인의 요구를 반쯤 허락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친정어머니에게 알리려고 한다. 도념이 토끼를 잡은 사실이 주지에게 발각되지만 초부의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한 다. 이 장면을 본 초부의 아들 인수는 사실을 발설하려다가 초부에 의해 떠밀려 내려간 다. 주지는 도념에게 서울로 가서 살 것을 허락하며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한다. 인수가 갑자기 등장하여 그 동안 도념이 토끼를 잡아 법당에 숨겨놓은 사실을 폭로하자 주지는 이를 확인하러 급히 원내로 들어간다. 미망인이 등장하여 도념이 인수와 싸우는 것을 말 리고 잠시 두 사람은 서울 생활을 꿈꾼다. 그러나 곧 이어 미망인의 친정어머니와 참예인 들이 원내에서 등장하여 도념의 토끼 살생을 알린다. 주지가 도념에게 살생의 이유를 다 그치자 도념은 목도리를 만들어 어머니를 드리려고 했다고 말한다. 주지는 다시 재를 지 내도록 한다. 도념은 비로소 주지의 권위에 도전한다. 어머니에 대한 비난에 반대하며 주 지의 가르침에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도념은 미망인에게 매달리며 미망인도 도념을 데리 고 가려하나 주지와 친정어머니는 절대로 불가함을 선언한다. 결국 미망인도 포기를 하고 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운다. 도념은 마지막 종을 치고 산을 떠난다. 나무하 기를 마친 초부와는 다른 길로 산을 내려간다.
- 양승국, <동승>의 공연 텍스트적 분석 -


물론 이 기본적인 이야기의 뼈대에 살을 붙이는 여러 유형의 인물이 작품 속에는 등장한다. 도념의 그리움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실체화된 서울에서 내려온 미망인과 인간적인 평범한 어른의 입장에서 미망인과 도념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는 중간적 존재로서의 주지 스님 그리고 도념의 슬픔과 고통을 담담하게 들어주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에 해당하는 상좌승 정심과 초부가 그들이다. 그리고 도념이 미망인의 양자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켜 버리는데 일조하는 초부의 아들인 인수가 그렇다.

그러나 결국 이 희곡은 외면적인 갈등에 초점이 맞추어지기보다는 사미승인 도념의 내면적 갈등, 다시 말해서 극중 주인공이 꿈에서도 그리워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결핍과 상실의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 결핍과 상실의 모티프는 작품의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짙게 드리워져있다. 가령, 인수와 동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수심이 가득한 미망인의 얼굴에서 또 어머니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기 위해 토끼를 죽이는 도념에게서 심지어는 작품의 첫머리와 말미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염불 소리, 범종 소리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현상학적 차원에서 보자면, 도념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한 '세계'이다. 그런데 그 세계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있다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아예 부재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도념은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가 없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도념에겐 처음부터 '無'의 개념에 가까웠던 셈이다. 가까이 있는 것 그래서 늘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것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먼 것, 멀어진 것, 멀리 있는 것 그리하여 내 곁에서 영영 사라져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것들이 인간의 근원적인 그리움의 대상이다. 도념의 동경과 갈망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서울에서 내려온 미망인이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머니의 대리자'에 불과할 뿐 도념에게 변함없는 모성으로 인지되는 '담지자'로서 다가서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의 맥락에서 미망인 역시 현존하지만 부재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도념이 그리는 어머니의 존재는 어린 사미승의 관념에서만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잔상은 늘 도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순례의 혼령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에게 말을 붙이고 그의 마음에 머무르면서 그를 괴롭힌다. 어머니는 부재하지만 결국 현존하는 것이다. 부재로서의 현존, 현존으로서의 부재. 그것이 함세덕의 <동승>에 나타난 현상학적 차원에서의 철학적인 메시지이다.

도념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존재가 한 '세계'라고 가정을 해볼 때 '문제적 개인'에 해당하는 '나'는 '세계'와 화해하지 못하고 불화한다. 세계와 소통하고 그를 향해 나를 열어 젖히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후설의 개념에 의지하자면, 현상학적 환원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 까닭은 명약관화하다. 메를로퐁티의 말대로, 나는 대상을 지각하지 못하고 대상을 지각하지 못한 나는 사물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념에게 어머니는 의식에 의해 정립되거나 지향된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느끼고 반응할 수가 없고 다만,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뿐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도념의 비극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주체와 대상, 정신과 사물이 분리된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손을 내밀면 다른 한쪽이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움츠러들거나 물러선다. 그것이 또한 근대 철학의 숙명이자 비극이다. 그러나 이미 세계의 전면성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나는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다. '세계'와 '나'의 합일, '나'와 '세계'의 조율을 위해서 길을 떠나야하는 것이다. 그 순례의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비로소 어른이 되고 성숙해진다. 그것은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편입해 가는 인간의 통과제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 도념은 이제 길 위에 선 것이다.

서양철학의 현상학적 경향은 [반야심경]이나 [도덕경]과 같은 동양의 정전에서도 그대로 그 모습을 되 비추고 있다. 동양의 경전에서는 세계가 서로를 안고 있는 상태, 서로가 서로를 낳는 상태를 가리켜 "부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부재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로 풀이하고 있다. 있음으로의 없음, 없음으로의 있음에 대한 이와 같은 화두는 [노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똑같은 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도를 도라 하면 늘 같은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 하면 늘 같은 이름이 아니다." 인도의 신비주의 자들은 인간이 잠이 든 사이의 어느 순간 몸이 깨어나 말하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몸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며 그 에너지가 몸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에너지는 그 자체가 이미 거대한 생물학적 바탕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 에너지는 에너지임과 동시에, 의식의 양태라는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들은 바로 그러한 에너지의 상징적인 의인화이며 따라서 그 에너지는 우주적인 에너지에 다름 아니므로 신은 결국 이곳이나 저곳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도 있는 것이고 한 개체의 안에도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노자와 장자의 범신론에 해당하는 삼라만상 모든 것에 신이 깃들여 있으며 인간 역시 일체의 집착과 욕망을 끊고 마음을 정화시켜 평상심의 경지에 이르면 신이 될 수 있다는 동, 서양의 이러한 공통된 생각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범(梵)과 개인의 중심인 아(我)의 본체가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는 우파니샤드 철학의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과도 통한다. 결국 그것은 죽음과 삶에 관한 문제이며 인간의 유한함과 그에 대비되는 신의 불멸에 관한 문제이자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의 흐름에 관한 문제이다.

사르트르는 '타자는 영원한 지옥'이라 부르짖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타인은 '또 다른 모습을 한 나'이므로 자신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내면의 자아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타인의 세계와 완전히 절연된 상태에서도 그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어 '나'와 '너'를 포함한 더 넓고 깊은 '우리'의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나의 간절한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심리학자 마슬로프가 말한 절정경험 - 우리 삶에 실재하는 어느 한순간에 하는 경험으로 존재의 조화와 나 자신의 관계를 경험하는 순간 - 이나 제임스 조이스가 언급한 개별적 실체로서의 홀연한 계시의 체험과도 같은 페르소나의 현현(顯顯) - 한 개인의 내면에서 개인이 진실하게 자아와 접촉하는 순간 - 이 파스칼이 추구한 우주의 보편적 진리로 확장되는 것을 뜻한다. 바슐라르는 이를 "꿈으로 장식되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단 한 가지도 없다"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빌어 꿈의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물질적 상상력과 결부시켜 독특하게 해석해내고 있다. 바슐라르의 말에 의지하자면 상상은 어떤 마약보다도 강력한 마약이다.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초겨울, 동리에서 멀리 떨어진 심산고찰의 산문을 빠져 나와 그의 어머니를 찾아 비탈길을 내려가는 어린 사미승의 눈에 들어온 첫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마도 속세로 내려가는 첫 순간 이미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가는 길이 실은 시작도 끝도 없는 먼 여행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여행길에 오르는 순간 그는 이제 다시는 영영 예전에 그가 머물던 유년의 세계로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행은 어쩌면 안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기에. 그래서 이 작품의 결말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초부: 아니, 너 갑자기 바랑은 왜 걸머지고 나오니?
도념: 이번 가면 다신 안 올지 몰라요.
초부: 왜? 스님이 동냥 나가라고 하시든.
도념: 아아니요. 몰래 나갈려고 해요.
초부: 이렇게 눈이 오는데 잘 데두 없을 텐데 어딜 간다구 이러니? 응, 갈곳이 있니?
도념: 조선 팔도 다 돌아다닐 걸요, 뭐.
초부: 하 얘, 그런 생각 말구, 어서 가서 스님 말씀 잘 듣구 있거라.
도념: 벌써 언제부터 나가려구 별렀는데요? 그렇지만 스님을 속이고 몰래 도망가기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서 못 갔어요.
초부: 어머니 아버질 찾기나 했으면 좋겠지만 찾지두 못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없구, 거지밖에 될 게 없을 텐데 잘 생각해서 해라.
도념: 꼭 찾을 거예요. 내가 동냥 달라구 하니까 방문 열구 웬 부인이 나를 한참 바라보구 있더니 별안간 '도념 아. 내 아들아, 이게 웬일이냐' 하구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 내려오던 꿈을 여러 번 꾸었어요.


 

3. 봄이 오면 산에 들에


16세기 영국의 작가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낸 유토피아(Utopia)라는 어휘는 그것의 희랍어 어원을 고려해볼 때 '이 세상에 없는 곳(Outopia: no-place)'과 '좋은 곳(Eutopia: good place)'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의미를 통합해 보면 유토피아란 '실재하지 않는 이상적 공간'이라고 일단 정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없는 곳,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것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포부를 표현하기도 한다. '더 좋은 사회'와 '더 좋은 세계'에 대한 꿈과 동경, 그것의 가능성에 대한 사색 그리고 그러한 이상이 실현되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토피아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가운데에 가장 좋은 국가의 형태지만 그러나 아주 멀리 있는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 서양에서 장구한 역사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된 유토피아는 분류기준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서양의 경우 황금 시대(Golden age), 파라다이스(Paradise), 천년왕국(Millennium) 등의 어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황금 시대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상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 Works and Days]에 의하면 황금 시대는 크로노스가 지배하던 목가적인 시대로 사람들은 슬픔과 고통을 모르고 힘든 노동도 하지 않고 신들의 축복 속에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렸다고 전해진다. 파라다이스는 곧 낙원으로 [구약] 창세기에서 묘사된 에덴 동산이 그 원형이다. 원죄 없이 조물주의 섭리 안에서 살며 수고하지 않아도 모든 식물을 얻을 수 있고 영생불멸을 가능케 하는 생명나무가 있는 곳, 이러한 낙원의 개념은 후대에 현실적으로는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복지' 등의 개념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천년왕국은 본래 성서의 묵시록에 표현되어 있는 지복천년의 개념에서 유래된 대망(待望)의 세계이다. 가까운 장래에 세계의 종말이 도래하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새로운 지상천국이 이룩된다고 하는 이 믿음은 중세이래 이단 제파의 카톨릭 교회의 의전주의(儀典主義)에 대한 반발과 하층민들의 반항이 결합하여 종말론적인 종교운동 내지 사회운동으로 크게 확산되어 나갔다.

동양권의 경우 옥야(沃野), 낙토(樂土), 동천복지(洞天福地), 선경(仙境), 승지(勝地) 등의 용어가 전통적으로 유토피아 일반의 의미를 표현해왔던 것들이다. 옥야는 물질적 풍요가 보장된 천혜의 공간으로 이곳에는 모든 식물과 금, 은, 보석의 재화가 무진장으로 존재한다. 아울러 온갖 짐승, 자연과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곳은 전형적인 낙원의 정경을 보여준다. 낙토는 착취가 없고 살기 좋으며 영원히 울부짖을 일이 없는 유토피아이다. 동천복지는 앞서의 옥야나 낙토보다 비교적 후대에 도교문화와 상관되어 자주 쓰여온 용어로 명산 깊은 곳에 실재한다고 믿어졌던,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를 가리켰으나 일반적으로는 속세와 격리된 산중의 살기 좋은 땅을 의미한다. 선계(仙界), 선향(仙鄕) 등의 어휘와 더불어 우리 귀에 익숙한 선경이라는 말은 간단히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하지만 신선이 살만한 좋은 곳의 의미로부터 속세를 떠난 좋은 곳, 이상적이고 완전한 곳 등의 의미로 확대되어 쓰이게 된다. 승지는 '십승지지(十勝之地)'와 관련하여 우리 나라에서 많이 쓰여온 유토피아와 상관된 어휘이다. '굶주림이 없고 병화(病禍)를 피할 수 있는 선택된 땅'이라는 의미로서 승지는 원래 풍수지리설에서의 길지(吉地) 관념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고려이래 풍미했던 도참설과 직접 관계가 있다.

위에서 논한 동, 서양 유토피아의 개념 및 유형의 변별점과 공통점을 포괄하여 종합해보면 동, 서양의 유토피아 개념상에 있어서의 중요한 차이점은 역사관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이다. 동양의 유토피아는 시종일관 순환사관에 입각하여 상실한 시대로부터의 복귀를 꿈꾸고 있는 것이 특질인 반면 근대 이후 서양의 유토피아는 진보를 향해 직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미래지향적인 움직임이며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 인간에 의해서 이 세상에 구축될 수 있는 인간의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점을 떠나서 서양이든 동양이든 모든 유토피아는 인간의 보편적인 이상, 꿈, 소망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과 현실태가 아닌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픽션의 성격을 지닌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상과 같은 개념들을 참고해볼 때 유토피아란 이상적인 공간에 대한 인간의 소망과 의식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정의할 수가 있다. 최인훈은 그의 산문집 제목에도 잘 드러나 있듯이 작품을 통해 '유토피아의 꿈'을 일관되게 꾸어 온 희귀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꿈은 매번 좌절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유토피아'의 속성에 기인하는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작가 자신의 심층의식 속에 깔려있는 비극적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이데올로기 자체에 회의적이고 그의 희곡의 인물들 또한 세계에 대한 비합리성을 자각하는 인물이지만 이와 대립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인물은 아닌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만물의 중용과 무위, 자연으로의 복귀 그리고 자아의 부정을 통한 의식의 소멸을 주장하고 있는 동양의 문화권에서는 엄격한 의미의 비극정신은 가능하지 않다고 볼 때 최인훈의 희곡 세계도 이에 해당한다고 조심스럽게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최인훈은 우리에게 그의 소설 작품을 연구, 분석했던 그간의 많은 평자들에 의해 뿌리 뽑힌 인간이라는 주제를 망향의식과 결부시키지 않고 보편적 인간조건으로 승화시킨 전후 최대의 작가, 고고한 관념의 작가로 인식되어 왔다. 그의 출세작이자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과 더불어 해방 이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광장> 역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대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제 3세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회의하는 지식인의 한 전형인 이명준이라는 개인의 지적 관념의 표류 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문단 전반과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광장> 집필 이후에도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들을 통해 그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관념세계를 일관되게 구축해 나가게 된다. 그러다가 1969년 그의 나이 33세가 되던 해 처음으로 <열반의 배>라는 제목으로 습작 형식의 희곡을 발표하게 되면서 그 동안 써오던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경향의 작품 변화양상을 보이게 된다. 소설에서 문제점으로 제기됐던 지나친 관념의 난해성과 반사실주의적 인물 묘사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생활 이를테면 문학 이전의 삶 자체, 관념 이전의 인간 그 자체에서 파생되는 생활 속으로 그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가 선택한 것은 옛 선인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고전적인 설화의 세계였다.

최인훈의 희곡 속에 의도적으로 명시되어 그것이 무대 위에 형상화될 때 작품 전체의 주제의식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비언어적인 연극언어에 해당하는 소도구들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서 그 소도구는 거울이었고 심청의 손에 들려있던 거울은 연극을 보러 온 관객에게 거울이 상징하는 메타포들, 이를테면 만남과 헤어짐, 기다림의 정서 같은 것들을 환기시킨다. 거울은 또 하늘에도 걸려있다. 하늘에 걸린 또 하나의 거울인 달을 바라보면서 심청은 헤어진 남편이나 아비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 기다림은 차고 이지러지는 달의 이치, 분명하게 실행되는 자연의 섭리와는 다르다. 만해 한용운의 시구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간사의 보편적 법칙이지만 심청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말 그대로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기약이 없기에 그 기다림은 이제 더 이상 기다림이 아니다. 미래가 없는 기다림, 전망이 없는 기다림, 실현 가능성이 없는 기다림이기에 늙고 병든 심청은 제 품속에서 깨어진 거울을 꺼내들고 스스로 교태를 지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자기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거울의 기능을 1977년 그의 나이 41세 되던 해에 발표된 세 번째 희곡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선 탈이 대신하고 있다. 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반적으로 종이, 나무 등으로 만든 얼굴의 모양이고 그 얼굴을 감추려고 뒤집어쓰는 물건이며 서양에선 가면이나 마스크가 가지는 이미지와 일치한다. 이를테면 탈은 진짜 얼굴은 숨어있고 그것을 대신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가짜 얼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탈은 그러하기에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다. 진실의 소통을 위해 탈을 쓴다고 할 때 그 탈은 이미 밝히기 위해서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우리는 탈을 사용하는가.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일 것이다. 남들에게 내보이기 싫은 아픈 상처나 부끄러움을 숨김으로써 그러한 수치심이나 치욕을 잊고 살아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탈은 어떤 의미에서 그 뒤에 숨고 싶은 심정을 대변한다. 다시 말하면 땡볕 같이 따가운 현실을 조금이나마 피해갈 수 있는 작은 그늘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혹은 그러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처는 내면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외면적인 것이다.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다. 몸의 어느 한구석이 망가진 불구적인 것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탈은 몸의 병듦, 몸의 아픔, 몸의 불구성을 암시한다.

어미는 문둥이다. 문둥이란 무엇인가. 정상적인 사람의 뼈와 살이 썩고 문드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보다는 짐승에 더 가까운 흉물이다. 달내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은 "눈도 없고 눈썹도 없고 코도 입도 귀도 없는 맨숭얼굴"이며 "사람이 아닌 달걀귀신의 모습"이다. 마음은 사람이지만 몸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 뒤틀리고 허물어진 몸의 일부분,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어미는 탈을 쓴다. 탈을 써서 몸의 아픔, 몸의 병듦을 잊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일시적이나마 몸의 아픔은 잊었을지언정 마음의 아픔, 마음의 고통은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그러하기에 그는 밤이면 밤마다 자식과 남편이 기거하는 오막살이를 찾아간다. 오막살이를 찾아가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방안에는 그가 사랑하는 남편, 못 견디게 보고 싶은 자식이 있다.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몸이 불구인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마음의 문까지 차단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비는 어떠한가. 그는 선천성 말더듬이다. 그도 역시 정상인이 아닌 불구이다. 하지만 그의 불구는 어미에 비해 그 증상이 가볍다. 적어도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잃어버린 괴물은 아닌 것이다. 아비는 자식이 제 어미를 만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미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식은 정상인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과 정의 교감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그러나 그는 몸이 병든 자신의 아내를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 아비의 사랑과 남편의 사랑 사이에서 그는 갈등한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만 아플 것인가. 마음이 아프기에 몸도 따라 아프다. 마음은 몸을 따라간다. 아니, 어미의 경우처럼 몸이 마음을 따라가는 것인가.

달내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 싶다. 집을 나간 어머니. 그러나 달내의 기억 속엔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어머니를 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머니와의 재회는 달내의 꿈속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지극하기에 달내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바우의 마음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달내의 이런 처지를 모르는 바우는 들끓는 사랑의 열병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바우가 달내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을의 사또는 달내를 소실로 맞아들이려 한다. 포교의 강압이 점점 심해지자 달내의 아비는 달내와 바우를 짝지어 도망시키려 한다.

그러나 달내는 쉽게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떠나기 하루 전날에서야 달내는 아버지가 집에 남으려는 까닭을 알게 된다. 아비는 그의 아내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비녀를 건네주는 아비에게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깨달은 달내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비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밤 깊어서야 겨우 잠이 든 달내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산불이 나고 어미는 달내를 구하려다 조막손이 된다. 그것은 달내가 어렸을 때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다. 달내가 꿈을 깬 후 곧 어미가 나타난다. 어미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멀리 가려한다는 결심을 알리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 순간 달내는 말리는 아비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달려나가 어미의 손을 끌고 들어온다. 그 모습을 멀리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바우. 바우 역시 그의 장모 될 사람이 문둥이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결국 몸이 병든 어미는 마음이 아프고 그 마음 아픔은 자신의 남편과 자식과 그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이어진다. 가족은 한곳에 모여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아비와 어미와 달내와 바우는 다같이 함께 모여 살 수 없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밀 수 없다. 왜냐하면 어미의 병은 저 혼자만의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음의 보이지 않는 길처럼 전염성이 강하다. 네 사람이 한식구가 되기 위해선 몸이 병들지 않은 나머지 세 사람이 육체적 불구가 되어야 한다. 어미처럼 한평생을 문둥이라는 몸의 부자유스러움과 괴로움이 주는 시련을 감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반대로 모두가 몸의 불구가 되는 불행을 막기 위해서 부모와 자식이 어쩔 수 없이 서로 헤어진다면 그들은 또 다른 한평생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지만 만날 수는 없는 마음의 불구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품의 결말은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감동적이다. 장소는 더 깊은 산 속. 시간적 배경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 온갖 짐승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가운데 머리수건을 한 사내 하나와 여자 둘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 그들 곁으로 다가간 짐승들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도깨비라고 소리치며 달아난다. 그들은 다름 아닌 달내와 그의 아비, 어미인 것이다. 잠시 후 등성이 너머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더니 한사람의 남정네가 또 나타난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달내를 사랑했던 바우다. 네 사람은 문둥이가 되면서 비로소 한 가족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완성을 위해 몸을 버린 것이다.

최인훈의 희곡은 대개 삶의 본질적인 문제, 근원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일상생활이나 사회현실을 해석하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민중상을 슬픈 문둥이의 이야기로 부각시킨다. 다른 작품들처럼 뚜렷한 설화가 소재로 되어있지는 않지만 항간에 떠도는 문둥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적 민중의 애환을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소리를 극소화시키고 침묵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서 보여주었던 정적인 분위기를 한층 강화시켰다. 이러한 정적인 분위기는 나아가서 자연회귀 사상으로 이어져 완전한 십장생도를 구현하고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짐승들과 하나가 되어서만이 인간세계에서 얻지 못한 평화가 가능한 것이다. 실로 "한국인의 슬픔과 아픔, 아름다운 사랑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백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바로 질기고 질긴 연과 운명을 노래한 서사시"라는 국문학자 유민영의 평가처럼 민중적 한을 화해로 승화시키며 전통적 십장생도의 이상향을 펼친다.

이 작품에서 그러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조신설화를 바탕으로 배창호가 연출한 영화 <꿈>에서처럼 사랑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주제로 형상화된다. 이 희곡은 한여름 달내가 밭에서 김을 매고 그 옆에서 바우가 말을 거는 것으로 시작해서 가을과 겨울을 거치고 난 후 다시 봄이 되어 네 식구가 김을 매는 장면으로 끝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네 사람이 한가족이 되는데 걸린 시간은 일년 정도이다. 최인훈의 다른 희곡과 마찬가지로 이 일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은 사랑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 이를테면 고을 사또로 대변되는 권력의 억압이라든지 바람소리로 상징화된 대자연의 광포함을 극복하기 위한 통과제의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 과정을 무사히 치러냈을 때 작품의 등장인물들에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 세계는 몸은 비록 정상이 아니지만 온갖 신명과 노래와 춤이 터져 나오는 마음은 한없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이다. 그 세계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산 속의 짐승들까지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살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이다. 시인 이성복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세계는 "귓속에 복숭아꽃 피고 노래가 마을이 되는 나라"이며 "어지러움이 맑은 물 되어 흐르고 그 흐르는 물 따라 불구의 팔다리도 함께 흘러가는 곳"이며 "죽은 사람도 다같이 일어나 따뜻한 마음 한잔 권하는 몸도 마음도 안 아픈 나라"이다. 그것은 시인 이성복이나 작가 최인훈이 꿈꾸는 세계이자 연극이라는 무대 위에서 달내와 그의 가족들이 이루어낸 세계이며 또한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우리들 각자가 지향하고 만들어가야할 그런 세계이다. 조화롭고 화해로운 그 세계에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환한 빛들이 넘쳐흐를 것이다. 그 가깝고도 먼 곳으로 우리 모두는 가고 싶은 것이다.

Posted by 최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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