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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남성용 정조대에서 외계인까지

by 진 란 2008. 1. 22.

 

친구와 자러 간 그 여자가 죽었다고?

작가 한차현씨, 발랄한 상상력으로 운명의 숨겨진 모습 탐구
일간스포츠 펄프픽션 네 번째 이야기 ‘숨은 자, 잠든 자, 헤맨 자’

‘영광 전당포 살인사건’과 ‘여관’에서 엽기 발랄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은 한차현 작가(38)가 일간스포츠에서 연재하는 펄프픽션의 네 번째 이야기를 오늘부터 이끌어 나간다. ‘숨은 자, 잠든 자, 헤멘 자’는 평범한 일상 속에 슬며시 낚시바늘을 드리우고 있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1951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대상을 탄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작가와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형빈 기자 [
rjaejr@ilgan.co.kr]

 

 


■남성용 정조대에서 외계인까지

 

한차현은 1999년 겨울 장편소설 ‘괴력들’을 발표하며 문단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해 봄 출간된 네 번째 장편소설 ‘여관’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 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엉뚱하게도 남성용 정조대를 가지고 다니는 여자가 등장한다. 버스와 충돌하고도 멀쩡한 이 괴력의 미녀는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물구나무 자세로 팔굽혀펴기를 하는가 하면, 가방엔 탄창이 가득 들어 있다. 주인공은 그녀와 사귄다는 이유로 정보 기관에 끌려가 고문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욱 황당한 것은 그녀와의 동침 장면이다. 그녀는 사타구니에 남성의 물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살아온 현실이 기실 얼마나 괴물 같은 모습을 지녔는가에 대한 통렬한 풍자다.

‘숨은 자, 잠든 자, 헤멘 자’의 주인공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세 명의 남자다. 친구 사이인 이들은 초겨울 강촌으로 여행을 떠난다. 남자 셋이 만나면 으레 그렇듯 여자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때맞춰 나타난 두명의 여자. 어쩌나 짝이 맞지 않는다. 한 사내는 오늘 밤 성난 욕망을 달래지 못하고 꼼짝없이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할 판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돌연 관음에 대한 제의가 튀어나온다. 친구의 섹스 장면을 엿보라는 것이다.

읽는 이를 일순 당황하게 만드는 작가의 발칙하고 생뚱맞은 발상은 사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무거운 진실의 세계에 독자가 선뜻 발을 내딛게 만들려는 의도적 바람잡이다.

“도올 선생과 박지성이 수조 광년 저편에서 온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SF 종교 작품을 구상 중이죠.” 그의 톡톡 튀는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소설 안 썼으면 음악했을 거예요

서울 토박이인 그의 원래 꿈은 소설가가 아니라 음악가였다. 학창 시절엔 마이마이를 귀에 꽂고 살았다. 클래식부터 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음악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2 때의 가을, 하라는 시험 공부는 안하고 덕수궁 벤치에 앉아 캡틴 큐(당시 유행하던 국산 럼주)를 홀짝거리며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듣던 순간 말로는 표현 못할 아찔한 절정의 순간을 체험했다. 인생의 최정점에 선 듯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을 연출해 봤지만 다시는 그런 몰아지경을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그때부터다. 삶의 모든 것이 일순간으로 압축된 것 같은 그런 상황을 글로 설명해 보고 싶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그의 취미는 의외로 음식 만들기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취미 생활을 도와주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 묵묵히 설거지만 한단다.

음악에도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 때때로 기타를 들고 블루스를 연주하곤 하지만 친구들의 썰렁한 반응은 매번 그를 좌절시킨다. “차현아 다시는 기타 치지 마라.”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 교원이의 이름으로 동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원이는 아빠가 자기 이름을 사용하는 데 대해 걱정이 태산 같다. “아빠, 거짓말했다고 경찰에 잡혀 가면 어떡하려고 그래.”

시놉시스

1999년 11월 어느 저녁, 세 명의 친구가 강촌 여행을 떠난다. 머지않아 군 입대로, 해외 유학으로 뿔뿔이 흩어질 이들은 막연한 허탈감을 느끼다 2명의 여자를 만난다.

세 친구는 가위 바위 보로 1등과 2등만 여자들과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3등인 나(화자)는 친구들의 그 모습(?)을 보기로 약속한다. 이 같은 ‘훔쳐보기’야말로 섹스를 우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엉너리를 치면서. 그런데 약속과 달리 그들은 여관방 문을 열어 놓지 않았다. 나는 새벽 강촌길을 헤매며 친구 녀석들의 배신에 짜증을 낸다. 다음 날 혼자 잠든 내 여관방에 형사가 찾아온다. 전날 밤 친구와 사라졌던 여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강촌 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밤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일간스포츠 2008.01.20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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