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가들의 괴벽
10월 27일 세종체임버홀. 프랑스 출신의 명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피에르 앙타이는 엄격한 요구 사항을 주최 측에 전달했다. 연주 직전에 손을 덥힐 수 있도록 따뜻한 물을 청했다. 무대로 걸어나올 때 앙타이의 손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1955년 6월 미국 뉴욕의 오래된 교회에 23세의 청년 피아니스트가 찾아왔다. 한여름이었지만 외투에 베레모까지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그의 장비에는 악보 뭉치 외에도 수건 묶음, 큰 생수 두 병, 서로 다른 색깔과 용도를 지닌 작은 알약 다섯 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음반 녹음을 앞두고 언제나 몸을 움직이는가 하면, 흥분에 들떠서 지휘를 하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발레를 하기도 했다. 비스킷을 우걱우걱 씹어먹기도 했다.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ould·1932~1982)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던 날의 풍경이다. 이 음반은 이듬해 출시되자마자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반세기 넘도록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전설로 남아있다. 20세기 바흐 건반 음악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굴드의 녹음 풍경은 이렇듯 괴벽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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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격적인 옷차림과 괴벽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 /EMI 제공
숨을 거두기 3년 전, 한국에서 가진 리사이틀에서 리흐테르는 일상적인 무대 조명을 모두 끄고, 엷은 핀라이트와 스탠드불만 밝힌 채 피아노 앞에 마주 앉았다. 마치 한 편의 회화를 보는 것처럼 어두운 무대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집중력을 높였다.
성악가의 경우, 팬들과의 알력이나 갈등에서 평소 습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1990년대 유럽 오페라 무대를 사실상 평정했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Alagna·47)은 지난해 12월 이탈리아의 명문 오페라 극장인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부르다가 1막 1장에서 그대로 퇴장해버렸다. 이 오페라에서 주인공 라다메스 장군 역을 맡은 알라냐는 유명한 아리아인 ‘청아한 아이다’를 부르다가 밀라노 오페라 팬들의 야유와 조롱을 견디다 못해 멋대로 나가버린 것이다. 같은 역에 함께 캐스팅됐던 테너가 청바지 차림으로 황급히 뛰쳐나오는 촌극을 빚었으며, 이 사건으로 알라냐는 극장 측으로부터 출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해외 순회 공연을 일상적으로 다녀야 하는 연주인들은 자신이 공연할 극장 측에 까다로운 전제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지난 5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의 요구 조건 역시 화제가 됐다.
당시 케네디는 “공연 당일, 최고급 일식 레스토랑에서 직접 배달한 생선 초밥 한 접시를 리허설 룸에 마련할 것. 최소한 25점 이상을 준비하고 참치 4점, 장어 4점, 연어 4점, 참새우 4점, 주방장이 선택한 5점 등을 마련할 것. 젓가락, 간장, 와사비 등을 추가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사전 주문했다.
케네디는 펑크 머리에 가죽 점퍼와 부츠 등 파격적인 옷차림 못지 않게 개성이 강한 연주로 찬반 논란을 몰고 다니는 연주자다. 그가 녹음한 비발디의 ‘사계’(EMI)는 클래식 음반 가운데 단일 음반으로는 최다 판매 기록(200만 장)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당시 내한 공연에 앞서 그가 보내온 요구 조건을 담은 첨부 서류만 장장 25페이지에 이르렀다. 리허설 때 케네디의 의상실에 프랑스 최고급 품종인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샴페인을 준비하고 얼음과 함께 샴페인용 글라스 20잔도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맥주 36병, 품질 좋은 레드 와인 1병, 생수 12병 등도 요구 목록에 함께 적혀 있었다.
공연장이나 주최 측에서는 언제나 연주자들의 기행과 괴벽이 골칫거리다. 하지만, 멋진 연주와 그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과정이기에 감내해야 한다. 또 팬들은 그런 뒷이야기가 있어 더욱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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