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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스웨덴, “동거 파트너 구합니다”

by 진 란 2007.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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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이경국

“직업은 전문직 종사자, 여성스러운 옷 맵시를 즐기는 스웨덴 태생의 40대 금발 여성으로 경제여건이 좋고 마음씨가 관대한 스타일리시한 남성을 찾습니다.”


“조기 퇴직한 50세 남성으로 온유하고 약간 수줍음을 타는 여성을 찾습니다. 펍에서 맥주 한잔을 나누고, 음악을 즐기면서, 저녁엔 함께 산보할 수 있는 여성이면 오케이!”


스웨덴의 최대 일간 신문인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 주말 발행본에 깨알 같은 글씨로 두 면을 빼곡히 채운, 이성을 찾는 광고 문안들 중 일부다. 주말 이틀 동안 1000명을 훨씬 넘는 스웨덴 남녀가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광고를 내고 있는 셈이다. 20대부터 심지어 70대 노인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이성을 찾는 광고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해 보인다.


신문, 인터넷 또는 잡지 등에서 이성을 찾는 광고는 뭔가 음성적이고 비건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기 십상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의 이런 광고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일부를 보여줄 뿐, 결코 퇴폐적이거나 성매매를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스웨덴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많은 이성과 교제하면서 삶을 영위한다. 스웨덴에서의 이성 문화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그 안에 나름대로의 전통과 문화의 뿌리가 있다. 유교적 전통에 뿌리 박힌 한국의 결혼관과 달리 스웨덴에선 일찍부터 동거(Sambo) 문화가 자리잡았다. 1910년대에 이미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스톡홀름에 올라온 농촌 출신 젊은이들이 보편적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방법은 동거였다. 당시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하는 부모의 경우, 30%가 결혼이 아닌 동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국가였던 스웨덴에서 결혼이라는 의식은 반드시 교회에서 치러야 하고 남녀 가족이 모두 모여 축하해 주는 의식이었다. 1900년대 들면서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세속화도 동시에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남녀 간 교제를 선호하게 됐다. 결혼식 파티를 치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도 동거를 선호하게 한 한 가지 이유다.


이런 문화는 지금껏 지속되어 가정을 이뤄 아이를 낳고 사는 부부의 경우, 결혼보다는 동거인 경우가 훨씬 많다. 특히 젊은층에서 동거는 가장 보편적 삶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20~24세층을 볼 때 여성의 75%, 남성의 85%가 동거를 가정 구성의 가장 보편적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스웨덴에서의 결혼 관련 통계를 보자. 인구가 500만명이던 1900년 당시 결혼은 3만건이었던 반면 인구가 700만명으로 늘어난 1950년엔 6만건으로 올랐다. 하지만 인구 800만명 시대인 1993년 들어서 결혼 건수는 3만4000건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그만큼 동거 부부가 늘어났다는 말이다. 동거 생활은 서구 유럽의 일반적 현상이지만, 스웨덴과 덴마크 같은 북유럽에 특히 폭넓게 퍼져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금요일 저녁 10시. 평일 이 시간대엔 이튿날 출근을 위해 다들 일찍 취침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경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금요일 저녁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단둘 혹은 삼삼오오 친구들과 떼를 지어 저녁 외식을 한 뒤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기 위해 나이트클럽 앞에 줄이 늘어선다. 이런 곳에서 이성을 만나기도 한다.


혼자 외롭게 술을 마신다면 이성을 찾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다. 그 다음으로 직장 혹은 학교에서 이성을 찾고, 여행을 하면서도 이성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들어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서 이성을 찾는 빈도도 높아졌다.


동거를 통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스웨덴인은 평균적으로 2년 동안 살다가 헤어진다는 통계가 있다. 한번은 필자가 대형 쇼핑몰에서 장을 보는데 앞에 선 부부가 입을 맞추고 사랑의 표현을 하다가 계산을 할 시간이 되자 각각 계산하는 걸 목격했다. 남자가 자기 물건값을 먼저 계산하고 나머지 물건은 여자가 계산했다. 함께 살지만 살림살이는 각각 분리하는 동거 문화의 한 단면이다. 함께 살긴 하지만 가전제품, 가구 등 큰 물건들은 각각 누구 소유인지를 명확히 하며 사는 식이다. 서로의 관심과 사랑이 식었을 때 간편하게 헤어질 수 있도록 처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는 셈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게 되는 공간이 있다. 사용하다가 싫증난 물건,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을 갖다 놓으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와서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게 한다. 그런데 가끔 보면 크리스털 제품 세트처럼 좋은 물건이 나와 있을 때가 있다. 돈으로 환산하면 20만~30만원은 족히 되는 물건이다. 이런 물건은 동거로 살던 커플이 헤어지면서 서로 가지기를 원치 않아 이곳에 왔다고 보면 된다.


▲ 북유럽의 젊은 세대에겐 동거가 자연스러운 생활형태로 자리잡았다. 공원에서 키스를 나누고 있는 젊은 커플. (photo AP)

스웨덴인의 동거 문화를 방만이나 방종, 가정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기피하는 것으로 이해할 일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형식에 연연하지 않는다. 동거일 경우에도 결혼만큼이나 합법적인 부부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법적 체계가 뒷받침된다. 예를 들어 주택수당, 출산수당 및 출산휴가, 아동수당 등 다양한 복지제도가 ‘동거 부부(커플)’에게도 결혼한 부부와 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동거 증명서만 당국에 신고하면 결혼한 사람들처럼 합법적 부부로 인정받는다.


그러니 스웨덴의 동거 형태는 한국의 그것과 매우 다른 셈이다. 스웨덴에서 동거는 결혼을 전제로 한다거나 결혼으로 나아가는 과정인 것이 아니라, 이성과 만나고 헤어지는 행위를 가능케 한다. 현재 살고 있는 이성과 언제든지 자유롭게 헤어질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동거 문화는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을 가중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젊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들면 경제적으론 안정되더라도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대인관계도 좁아진다. 남녀할 것 없이 젊었을 때의 패기나 외모는 점차 퇴색하기 때문에 마음에 맞는 이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신문 광고를 통해 이성을 찾는다.


요즘 스웨덴에선 나이가 들수록 독거인이 늘어나는 게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자살률이 증가하고 알코올 중독 같은 사회질병이 늘어난다. 혼자 살면서 생기는 질병인 전립선암은 독거 노인이 많은 서구에선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이 된다고 한다.


밤이 유난히 긴 스웨덴의 겨울을 이겨내기란 젊은 사람도 쉽지 않다. 더구나 독거노인에게는 크나큰 시련일 수밖에 없다. 복지제도가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되었다는 스웨덴에서도 ‘외로움’이라는 병은 국가에서 대신 치료해줄 수 없다. ‘외로움을 어떻게 떨쳐버리느냐’가 ‘인생을 어떻게 의미있고 재미있게 마감할 수 있느냐’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연혁·위클리조선 해외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