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詩 : 오세영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하늘 하나 있다면
詩 : 이상윤
추억은
곱지만
언제나
별처럼 멀고
사랑은
아파도
끝없이
꽃처럼 아름답다.
그대여
뜨는 별이 없어도
작은 우리 가슴
숨겨진
하늘 하나 있다면
꽃처럼 향기롭지 못한
사랑이라도
언젠가는
눈을 열어
그리운
별처럼
눈물로
반짝이며 오겠네.
커피가 있는 아침 풍경
詩 : 이재현
밑그림을 좋게 그려 놓아야 할까
바위를 덮는 이끼도 시로미 꽃도
자작나무 가지 멧새도 두엇 그려 두고
계곡 맑은 물 속 어족도
내 기억을 야금거리며 갉아먹는
이름 모를 갑충도 그려 넣어야겠지
홀로 지샌 밤이 그리 서러웠을까
새벽놀이 가슴을 핥아오면 아픔처럼
아침은 또 그렇게 열리는데
한 잔의 커피가 놓인 탁자 위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감돌아 가고
잊혀진 사람 그 미소를 흉내로
애써 머뭇거리는 그 영혼 같은
깃이 상한 새 한 마리 날아오르는
어쩌면 내 욕망의 저 불 무덤이었을
오, 그대 날아오르는 빛의 후조여
내 하루만의 날카로울 위안이여
밤새 구겨진 오솔길이 쭉 펼쳐진다
[개불알꽃]
[삿갓나물]
이 꽃잎들
詩 : 김용택
천지간에 꽃입니다
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 눈을 감습니다
아, 눈감은 데까지 따라오며 꽃은 핍니다
피할 수 없는 이 화사한 아픔,
잡히지 않는 이 아련한 그리움,
참을 수없이 떨리는 이 까닭없는 분노
아아, 생살에 떨어지는 이 뜨거운 꽃잎들.
그대 아직도 그리운 사람입니다
詩 : 이상윤
그대 아직도
그리운 사람입니다.
잡을 수 없어
바라만 보는 낮달처럼
한없이 멀리 있지만,
당신이 내 곁을 떠난다 해도
나는 아직
이별이 아닙니다.
날마다 거울 보며
눈썹을 그리는
손톱 붉은 내 사랑
당신이 나를 잊는다 해도
나는 아직
혼자가 아닙니다.
겨울을 건너가는 바람처럼
멈추지 못해
내가 당신을 버리지 않으면,
그대 아직도
그리운 사람입니다.
너무 오랜 기다림
詩 : 유하
강가에 앉아 그리움이 저물도록 그대를 기다렸네 그리움이
마침내 강물과 몸을 바꿀 때까지도 난 움직일 수 없었네
바람 한올, 잎새 하나에도 주술이 깃들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은 모두 그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매순간 반딧불 같은 죽음이 오고 멎을 듯한 마음이 자니갔네
기다림, 그 별빛처럼 버려지는 고통에 눈 멀어 나 그대를 기다렸네
2007년 6월 3일 일요일
지난 주에 개불알꽃을 보러 금대봉으로 갔다가 만족스러운 모습를 보지 못하여 이번에 다시 개불알꽃을 찾아 군부대의 허가를 얻어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원래 예정된 코스는 용늪이 있는 대암산 이었지만 대암산으로 가는 길에서 인접한 지역에 있는 민통선 내에 개불알꽃들이 활짝 피어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양구 시내를 벗어나 대암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한참을 더 들어가니 막다른 길을 군부대 초병이 길을 막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던 것이다. 미리 사전에 허가를 받았지만 확인절차에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원수와 본인임을 확인한 후 들어가도 좋다는 소리에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의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서 한참을 들어가니 울창한 숲으로 뒤덮힌 골짜기가 나타났다. 차량으로 더 이상 진입하기도 힘든 아주 좁은 길로 이어져 적당한 곳에 주차를 시키고 차에서 내려서니 바로 그 옆 길가에 개불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길 가에 피어있는 개불알꽃은 이미 시들어 가면서 붉은 꽃송이가 어느새 빛이 바래가고 있었다. 무척 무더운 날씨지만 파란 하늘에 오래간만에 만나는 아주 청명한 날씨였다.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 그런지 꽃으로 피어있는 개체수도 여기저기 제법 많은 편이었다. 숲 속에 피어있는 개불알꽃은 아직도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간간이 들어오는 빛을 기다리며 촬영하기도 하고 반사판을 이용하여 빛을 만들어 주면서 교대로 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약 2시간 정도 개불알꽃 촬영을 마치고는 바로 대암산으로 향했다. 대암산은 습지식물의 보고로 알려진 용늪이 있는 곳으로 이 곳도 사전에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물론 반대편 길로 올라오면 사전에 군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출입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용늪으로 들어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지금은 들꽃을 만나기엔 가장 어중간한 시점인 탓에 출입문을 통과하여 임도(군사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엔 특별히 눈에 띄는 꽃은 없었다. 간간이 큰앵초가 한 두송이 보일 뿐이었다. 용늪 입구에 도착하여 가져온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는 늪지대로 내려섰다. 용늪에는 세잎종덩굴과 종덩굴, 요강나물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늪으로 완전히 들어서니 숙은처녀치마가 여기저기 활짝 피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늘의 목적은 오리난초를 촬영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우선 오리난초가 피어있는 곳으로 바로 찾아갔다. 오후 2시의 햇살은 너무 강하고 뜨거웠다. 게다가 습지에서 발생하는 열기는 숨을 쉬기 조차도 힘들 정도로 후덥지근 하였다. 오리난초는 꽃의 크기도 작고 키도 작아 카메라를 축축한 땅에 바짝 붙여서 촬영을 하여도 만족스러운 구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 또 다시 오리난초를 담으러 올 수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면서 다양한 촬영을 시도 하였다.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아름다움이 황홀함으로 변했다가 그리고 신비로움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 모습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2시간 이상을 머무르며 무더위도 잊은채 촬영을 계속 하였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오리난초의 촬영을 마치고 숲 속으로 들어가 보니 삿갓나물과 큰앵초 그리고 금강애기나리가 여기저기에 피어 있었다. 큰앵초를 담아 볼려고 몇 번이나 시도 했지만 너무 강한 햇살에 꽃잎이 뭉개져 버려 포기를 하고는 빛이 살짝 들어온 삿갓나물을 담아 보고는 되돌아 나오면서 숙은처녀치마를 촬영해 볼려고 애를 썼지만 그것도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다.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서 역광의 묘미는 있는 듯 하였지만 주위에 같이 자라난 습지 식물들로 인하여 배경처리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눈으로 보이는 그 아름다움 모습만 가슴에 담아 왔다. 4년 전부터 매년 1-2번 이상 대암산 용늪을 찾아 왔지만 단 한 가지의 꽃만을 보기 위해 이 곳을 찾아오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꽃을 찾아 훌쩍 떠나는 그 마음은 그 곳에서 꽃을 만나든 혹은 만나지 못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 못보면 내일 보면 될 것이고 올해 못 만나면 또 일년을 기다려 내년에 만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꽃이 그 곳에 피어 있는 그 날 까지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내 마음은 언제나 그 곳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리라.
[오리난초]
사진
개불알꽃(복주머니란)...양구 민통선 안에서 촬영 [2007년 6월 3일 오전]
오리난초(나도제비란)...대암산 용늪에서 촬영 [2007년 6월 3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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