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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스크랩] [說話] `천년학`의 영화미학 ... 임권택의 100번째 영화 엿보기

by 진 란 2007. 4. 14.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장면

 

 

           [커버스토리]  '천년학'의 영화미학

                                거장 임권택 감독의 생애 100번째 영화 <천년학>   

 

개봉 전부터 회자된 ‘천년학’의 명장면 하나. 눈먼 소리꾼 송화를 소실 삼은 남원 부자 백사노인이 송화의 흥타령을 들으며 임종을 맞는다.

 

밖에선 매화 꽃잎이 흐드러지게 날리는데, 눈발 같기도 한 것이 묘하게도 하늘로 날아오른다(컴퓨터그래픽이 아니다). 참으로 호사스러운 죽음이지만 아름다운 만큼 덧없기 또한 이를 데 없다.

 

노인은 왜정때 친일로 부를 쌓은 세력가이고 그를 만나 잠시 유복한 한철을 보낸 송화는 어려서 4·3항쟁을 피해 제주에서 도망나온 처지다. 얄궂다. 이런 역사의 질곡을 임권택 감독은 스쳐가는 대사로만 즈려밟는다.

 

‘태백산맥’이며 ‘서편제’며 ‘취화선’처럼 영화는 우리네 땅과 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우쳐주는 장면들로 빼곡하지만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영욕의 역사와 덧없는 삶을 죄다 머금고 흩날리는 꽃잎처럼, 임권택의 풍경들은 그 자체로 서사이고 캐릭터이며 영화적 맥락이다.

 

‘천년학’은 그간 쌓여온 임권택 감독의 영화미학이 소란스럽지 않게 모여든 영화다. 소리꾼 양아버지 밑에서 남남이지만 남매로 키워진 송화와 동호 사이의 정한(情恨)은 ‘서편제’의 읊조림 그대로지만, 한폭의 한국화를 스크린에 담는 심미안은 ‘취화선’(2002)의 그것이며 아픈 우리 근대사를 원망 않고 관조하는 시선은 ‘태백산맥’(1994)의 연장이다.

 

특히 장구한 세월 동안 남녀가 닿을 듯 말 듯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애틋함은 ‘노는 계집 창’(1997)의 구도를 닮았다. 연인이고픈 간절함과 끝내 그러지 못하는 애절함. 어린 시절 한이불 아래 누워 발끝끼리만 가닿을 때부터 그 절절함이 쌓였겠으나 마음은 꺼내지지 못한다.

 

각자 떠돌이 생활을 하며 떨어져 살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격한 재회의 순간을 맞을 때마저 카메라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풍경의 일부로 멀찌감치서 이들을 붙들고 있거나 눈을 마주보지 못한 채 뺨 언저리로 시선을 내리고 만다.

 

둘이 만나 자연에 안길 때 송화의 소리마저 아득해지는 원경(遠景)이든, 손에 닿을 듯 송화의 뽀얀 볼을 눈으로만 어루만지는 접경(接景)이든, ‘천년학’의 가슴은 그렇게 수줍고도 깊다. 그래서인지 ‘천년학’의 감정은 만날 때보다는 떠날 때 굴곡을 드러낸다.

 

          천년학의 배경 바닷가 장면

 

           사진제공:프라임엔터테인먼트              

 

             천년학의 촬영지 광양 매화마을 장면

 

 

 

195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대략 30년의 세월을 짚어가는 영화는 동호가 아버지를 뿌리치고 가출한 이래 줄곧 누군가를 떠나보낸다. 동호가 부부의 연을 맺었던 극단 여배우 단심을 뒤로 하고 떠날 때 포장마차의 뿌연 연기에 파묻히는 그의 발걸음, 송화가 아버지의 유골을 묻고 마음의 고향인 선학동과 이별을 고할 때 그녀의 매몰찬 뒤태 같은 것들은 역시나 원경이지만 어떤 클로즈업보다 애잔하다.

 

동호가 몸담던 극단의 고집스러운 소리꾼 노인(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송순섭 명창이 직접 출연해 흙의 소리를 들려준다)이 누추한 말로를 접고 세상을 떠나는 대목은 주변인물을 통해 주인공들의 앞날을 상상케 하며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영화가 절제할수록 관객은 상상한다. 한 인물이 떠나기까지 주변과 관계맺던 사연들을 켜켜이 쌓아가되 그 행간은 설명하지 않고 비워두는 임권택의 서사는 조·단역 한사람 한사람에게까지 관객이 마음 둘 곳을 내준다.

 

신영복 교수가 그의 동양고전 강독을 통해 줄곧 강조한 논리를 빌리자면 ‘천년학’은 화이부동(和而不同), 즉 화(和)를 추구하되 동(同)을 고집하지 않는 미학적 지향을 보여준다. 경제적인 국익을 이유로 획일과 흡수, 합병을 의미하는 ‘동’의 논리가 지배하는 오늘날, 영화는 관용과 공존, 평화를 뜻하는 ‘화’의 가치를 살려낸다.

 

극중 선학동 포구에 쌓인 방조제는 맑은 바닷물길을 막아버리고 학을 쫓아버렸다. 인물의 ‘존재’가 아닌 모든 것들과의 ‘관계’로 극을 풀어가는 영화는 종반부 두 주인공이 서로를 쳐다보되 강요하지 않으며 자연의 일부로 남아, 마침내 선학동에 학을 불러들이는 것으로 끝맺는다.

 

충무로에 30~40대 재기 넘치는 감독들의 작품은 꾸준히 배출되고 있지만 이처럼 겸양과 절제가 스크린에 투사된 경험을 얻기는 쉽지 않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는 이렇게 자연과 하나되며 한국영화에 또한번 가르침을 남겼다.

 

              소리를 완성하기 위한 고통의 장면

 

              원작 선학동 나그네의 작가 이청준과 촬영지 모습

   

         거장 임권택 감독                 사진제공:프라임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년학'  

 

소리꾼 유봉(임진택)은 어린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를 거둬들여 남매의 연을 맺어주고 선학동 포구 앞에서 판소리를 가르친다. 송화는 소리를, 동호는 북장단을 배우며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되지만 남매라는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소리를 배워봐야 배만 곯는다며 집을 뛰쳐나간 동호는 군 제대 후 사랑하는 누이를 찾지만, 눈 멀고 아버지를 여읜 송화는 떠돌이 소리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꾸만 엇갈리는 둘의 인생역정은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을 반복하게 하고, 동호는 유랑극단에 들어가 여배우 단심과 몸을 섞은 뒤 아이를 갖게 된다.

 

영화는 어려서부터 송화를 짝사랑해오던 용택(류승룡)과 동호가 선학동 선술집에서 만나 그간의 사연을 나누는 데서 시작, 송화와 동호가 환상인 듯 실재인 듯 다시 만나 장단을 맞추는 광경으로 맺는다.
경향신문 송형국기자/사진제공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출처 : 촌장의 취재이야기
글쓴이 : 촌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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