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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쥬세페 아킴볼도

by 진 란 2007. 3. 22.

탁월한 상상력을 지닌 화가, 쥬세페 아킴볼도

 

 “사과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꼬마들의 노래를 듣다보면 사과같이 동그랗고 윤기나는 얼굴이 떠오른다.

이외에도 얼굴을 비유하는 상투적인 어구는 많다.

앵두같은 입술. 흑진주같은 눈동자. 송충이같은 눈썹.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실제로 그림으로 그려진다면 어떨까?

 

유승민 _

미술비평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및 동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현재 강의와 전시 기획일을 하고 있음.

 

 

<사서>, 캔버스에 유채, 97 x 71cm,  스웨덴 스코클로스터 스로트, 1566년경.

 

 루브르 미술관에 가면 수많은 명작이 관람객을 맞는다. 며칠을 두고 발품을 팔아도 끝이 안나는 미술관 기행. 그림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도통 알 수 없는 신화나 성서에 대한 수수께끼같은 그림들사이로 눈에 번쩍 띄는 그림 네점이 있다. 바로 쥬세페 아킴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의 괴이한 인물초상들이다.

 

아킴볼도의 인물초상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아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발상의 독특함에서 비롯된다. 온갖 종류의 꽃과 과일, 채소, 새, 어류 등으로 퍼즐 맞추듯 그려진 그림은 재밌게도 사람의 얼굴을 기막히게 형성하고 있다. 그것도 주제에 맞는 소재들을 포착한 것이 한번더 무릎을 치게 만든다. 도대체 이 화가는 왜 이런 그림들을 그렸을까?

매너리즘 화가로 분류되는 아킴볼도는 이태리 밀라노 태생으로 합스부르크왕조의 궁정화가로 활약했다. 당시 아킴볼도가 모셨던 왕은 막시밀리안 2세와 루돌프 2세로, 아킴볼도의 그림에 만족하여 적지 않은 금일봉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아킴볼도 자신이 작품에 대해 남긴 글은 전무하므로, 미술사가들은 동시대 작가들을 통해 유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매너리즘의 전형적인 작가로 생각되어왔고 그것마저도 아킴볼도가 사망한 후에 완전히 잊혀졌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초현실주의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그 ‘또活?기괴함’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바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목의 계절 연작이다. 꽃으로 가득찬 <봄>은 멀리서 보면 살짝 미소띤 젊은 여자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머리나 옷은 모두 허상이었을 뿐 사실은 봄꽃의 꽃잎과 줄기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백합 꽃봉오리로 된 코, 튤립 귀, 가지꽃으로 그려진 눈, 흰 꽃들로 만들어진 높은 옷깃. <여름>은 또 어떠한가. 가지가지 여름과일들과 채소로 이루어진 얼굴 아래로 세워진 옷깃에는 자신의 이름과 제작연도까지 쓰고 있다. 호박 코와 앵두 입술, 밀이삭으로 된 눈썹과 머리에 올려진 여러가지 과일들은, 보기만 해도 싱싱한 여름의 기운이 느껴진다.

 

 

봄>, 캔버스에 유채, 76 x 64cm, 파리 루브르박물관, 1573년

 

<여름>, 캔버스에 유채, 76 x 64cm, 파리 루브르박물관, 1573년

 

부서진 통위에 머리가 올려진 <가을>은 등장하는 열매며 색채만 보아도 계절을 짐작할 수 있다. 서양배로 그려진 뭉툭한 코 옆에는 잘익은 사과가 건강한 볼을 표현하고, 익어 벌어진 밤송이가 조그만 입을 만들고 있다. 버섯으로 만든 커다란 귀에는 농익어 터져버린 석류 귀걸이가 달려 있다. 머리를 가득 채운 포도와 그 잎사귀는 술의 신 바쿠스를 떠올리게 한다. 바라만 봐도 스산한 <겨울>은 계절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고목둥치로 된 얼굴, 껍질이 벗겨진 코와 버섯으로 된 이가 다 빠져버린 합죽이 입에서 우리는 늙은 노인의 얼굴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우둘투둘한 피부에는 듬성듬성 수염이 나있다. 하지만 고목둥치에 신선한 오렌지와 레몬이 달려있고, 머리에는 초록색 아이비 잎이 자라고 있는 걸로 보아 춥고 힘든 겨울도 머지않아 끝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가을>, 캔버스에 유채, 76 x 64cm, 파리 루브르박물관, 1573년.

 

<겨울>, 캔버스에 유채, 76 x 64cm, 파리 루브르박물관, 1573년.

 

 계절연작 외에도 물 속에 사는 어류로 가득한 <물>, 하늘을 나는 새들로 꾸며진 <공기>, 땅에 사는 동물들로 채워진 <땅>, 불쏘시개와 총, 화포 등으로 이루어진 <불> 등 고대 그리스에서 사물을 이루는 기본요소로 꼽았던 4요소를 다룬 그림도 있다. 당시 이태리에서는 플라톤주의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플라톤의 저술인 <티마에우스>에 등장한 세상의 기원에 대한 기본사상에 아킴볼도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모든 것은 물과 불, 공기, 흙 이 네가지 요소로 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동물, 식물 모두 네요소로 구성되었으리란 것이다. 플라톤처럼 아킴볼도도 사람과 동식물을 여러가지 요소의 구성체로 파악하고 이것의 총체로서 이런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아킴볼도는 고대사상과 철학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던 사람으로 높은 교양을 지닌 지식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궁정화가로 활약했기에 그림에 간간히 공작이나 매, 사자, 양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들을 집어넣기도 했지만, 이 모든 역사적인 알레고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조화로운 색채와 발군의 창의력이 가득한 그의 그림은 강한 인상과 함께 보는 즐거움을 준다.

 

 

<채소 경작인>, 목판에 유채, 35 x 24cm 크레모나 시비코 알라 폰조네 박물관,  1590년경.

 

<채소 경작인>을 180도 회전 시킨 모습

 

 출처 : With I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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