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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벽속의 요정

by 진 란 2011. 9. 26.

 

 

 

 

벽속의 요정과 함께 사는 엄마와 어린 딸의 흥미진진하도고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당시의 실화를 토대로 한 원작을 극작가 배삼식이 우리 상황에 맞게 재구성, 각색하여 김성녀의 <벽속의 요정>으로 탄생시켰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대 상황과 벽 속에 숨어 딸의 성장을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 그리고 가난과 남편의 부

재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가족과 인간의 사랑에 대해 되돌아보고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 줄거리

옛날에는 말이야, 그런 요정이 어느 집에나 있었어. 지금도 먼 산이나 숲 속이나 연못 속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법 진지하면서도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엄마의 말을 듣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지금 나의 딸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와 같은, 그러나 그것은 아주 아주 나중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린 아이였던 1930년대 후반으로 돌아가 볼까요. 그 때 나는 요정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1950년대 말. 아이는 벽 속에서 누군가의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 없이 행상을 하는 어머니와 살던 아이는 벽 속에 요정이 있다고 믿게 되고 요정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아이는 소녀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하면서 '벽속의 요정'과 둘도 없는 친구로 성장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 요정이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좌우익의 이념 대립 속에서 억울하게 반정부인사로 몰리게 된 아버지가 이념대립에 선봉에 선 사람들에게 쫓겨 벽 속으로 피신해 숨어 살게 된 것이다.

한편 어머니는 행상으로 힘겹게 삶을 이어가다 베를 짜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되찾는다. 늦은 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베를 짜는 어머니를 도와 남몰래 수건을 뒤집어쓰고 베를 짜는 아버지… 세월이 흘러 숙녀로 성장한 딸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식 직전 아버지가 짜준 베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벽 앞에 서서 갈라진 벽 틈 사이로 자신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사면대상이 되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되고, 그때부터 짧지만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자신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야만 했던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세상을 떠난다.

'살아 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이라며 아버지를 격려하며 살아온 어머니도 세상을 뜨고 어머니와 같은 나이가 된 딸은 어느 바람 부는 날, 벽 속에서 들려오는 무슨 소리를 듣는데…

 

 

"매번 첫 공연은 마치 첫날 밤처럼 설레고 떨립니다. 이번이 7번째 무대인데, 대사 틀리면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관객들도 계셔서 더더욱 겁이 나기도 합니다. (모노 드라마를 하는)배우는 두 시간 내내 사투를 벌입니다. 조금이라도 좋았다면 관객 여러분 덕분입니다" -배우 김성녀씨의 인삿말

 

 

[벽속의 요정] 첫 공연을 끝마친 배우 김성녀는 여러가지 감정을 가득담은 인사말을 꺼냈다. 이 작품만 '10년 공연'하기로 한 목표를 정했다는 김성녀의 일곱번째 무대 역시 기립박수로 끝을 맺었다. 여전히 1인 32역 김성녀의 파워는 대단했다. 볼때마다 새롭고, 웃긴 장면에선 여지없이 웃게 된다. 마치 진짜 베를 짜는 듯한 손 포즈에선 자연스럽게 동작을 따라하게 된다. 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김성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다양한 연기변신은 감동이었다.

 

 

 

 

다섯살 꼬마에 이어 갈래머리 소녀, 다소곳한 대학생이 무대에 있는 가 싶더니 어느 순간 온갖 행상과 베짜는 일로 하루 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고달픈 어머니가 등장해 있다. 엄마와 딸, 아빠와 딸, 남편과 부인이 한 무대에 함께 있는 순간도 다반사다. '지킬 앤 하이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몇초만에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한다. 극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주인공뿐 아니라 조연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김성녀는 계란장수, 동네 건달 등 조연들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혼신을 다해 연기한다. 잠깐 잠깐 짬을 내 그림자 인형극 '열두달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게디가 '열두 달이 다 좋아'와 '열두 달이 다 싫어' 두가지 버젼까지 준비 돼 있다.

"나는 요정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극 도입부에서 나오는 멘트이다. 이 멘트 그대로 관객들은 '요정 김성녀'에 홀려 두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울고 웃는다. 베로 아빠가 손수 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도 나도 훌쩍인다. 시종일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왔다갔다 한 뮤지컬 드라마가 관객들의 마음을 한 없이 저릿하게 만든 장면이기도 하다. 친구로 지내온 벽속의 요정이 아버지임을 깨달은 딸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러시아민요 '스탠카라친'을 노래할 때 감동의 정점을 찍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 넘버는 세 차례 불려진다. '살아있기에 아름다운 이 세상, 소중한 사람들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메시지'가 확연히 드러나게 하는 장치이다. 이 작품을 매해 찾는 열혈팬들의 귀에는 '김성녀 배우가 건강한 몸으로 매번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

 

2005년 연극 프로젝트 '여배우시리즈'의 일환으로 초연됐던 김성녀의 1인극 [벽속의 요정](극본 배삼식, 연출 손진책)은 스페인 내전 당시의 실화를 토대로 한 원작을 극작가 배삼식이 우리 상황에 맞게 재구성, 각색하여 탄생. 좌우익의 이념 대립 속에서 억울하게 반정부인사로 몰리게 된 아버지가 이념대립의 선봉에 선 사람들에게 쫓겨 벽 속으로 피신해 숨어살게 된 사연을 기본 축으로 어릴 적부터 '벽속의 요정'과 대화를 나누며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해 간 딸의 이야기,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의 뭉클한 모습을 녹여내 가족과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작품.

초연 이후 매해 찾아오지만 매번 그 공연기간이 짧아 여차했다가는 예매를 놓치기 쉽다. 이번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초연 이후 7년만에 드디어 장기공연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떡잎부터 알아본 초연의 제작자, 송승환과 7년만에 재회인 셈이다. 9월 25까지 PMC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약 50일간의 여정을 '김성녀의 연기혼을 불러 일으키는 그녀의 뮤즈 그리고 평생의 반려자, 손진책 연출'이 함께 만들어간다.

이번 공연을 처음으로 함께 본 엄마는 첫공연이 끝난 뒤 극장 로비에 서 있는 손진책 연출에게 악수를 청했다. 프로그램 북 내에 있는 사진과 글을 보고 알아 본것이다. 연출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60대 엄마의 눈에도 이번 작품이 뭔가 경이로워 보인 모양이다.

'김성녀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이끈 뮤지컬인만큼 10번째 공연 이후로도 매년 그녀를 만나길 기대해본다. 한편, 지치지 않는 열정의 소유자 김성녀는 15일 광복절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무료로 공연되는 [2011 아시아 전통 오케스트라 서울 공연]에도 참여. 우리나라 국악인을 대표하여 피날레 무대를 장식할 예정이다.

공연전문 칼럼니스트 정다훈( otrcoolpen@hanmail.net )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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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녀의 ‘절대연기’…벽속의 요정

 



 
2006년을 빛낸 연극으로 <경숙이, 경숙아버지>와 더불어 세인들 입에 오르내린 <벽속의 요정>도 한 말씀 안 드릴 수 없습니다. <벽속의 요정>이 처음 관객을 만난 것은 2005년 6월입니다.

난타로 유명한 송승환 PMC 공동대표가 "대학로에만 연극 극장이 있는가, 죽어가는 강남의 소극장들도 살려보자"하여 국내 유명 여배우 6명을 섭외해 같은 해 2월부터 1년동안 <여배우 시리즈>를 탄생시켰는데, 그때 나온 것이지요. 저는 사실 개인 사정으로 초연 당시 <벽속의 요정>을 보지 못하고, 지난해 앙코르 공연으로 보았는데, 그렇게 펑펑 울면서 본 작품은 이후에도 좀처럼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성녀 씨는 MBC 마당놀이로 이름 석 자를 전국에 알린 배우(요즘에는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당놀이 배우로만 떠올려지는 것은 김 씨에게는 다소 억울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미 연극과 뮤지컬로 백상예술대상서울 연극제 등을 여러 차례 거머쥔 실력파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마당놀이 이미지를 확실하게 벗게 해준 작품이 바로 <벽속의 요정>아닐까 싶습니다.

<벽속의 요정>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일본 작가 후쿠다 요시유키의 소설을, 극작가 배삼식 씨가 한국 상황으로 옮겨와 실제감을 더합니다. 일제시대 말 징용을 피해 일찍 결혼한 시골 처녀와 일본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심성이 착해 집안의 전답을 하인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몰살당할 뻔한 지주들을 구해줍니다. 하지만 이 일로 빨갱이로 몰려 할 수 없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방안 벽 속 빈 공간에 40년 동안 몸을 숨기고 살게 됩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한테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가 돈 벌러 나가면 두려움에 훌쩍거리는 어린 딸을 달래주는 벽속의 요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딸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벽속의 요정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줄거리로만 따지만 통상 서른 명쯤 등장해야 하는 작품인데, 단 한명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은 새삼 경이롭다는 느낌마저 줍니다. 30개 배역을 30가지 색깔로 소화해낸 김성녀 씨의 연기 내공은 이 작품으로 마침내 꽃 피웠다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어떤 연극 평론가는 이를 두고 '절대연기'라며 극찬했습니다. 그의 재능은 사실 타고난 것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연극 연출가 김향, 어머니는 국극배우 박옥진으로 뱃속에서부터 무대에 섰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사실 35살에 대학에 들어가 10년 만에 대학원을 마치면서 등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공부하며 독하게, 치열하게 살아온 결과물 아닐까요?

대학교수로, 배우로, 마당놀이 전수자로, 연출가 손진책의 아내로, 뮤지컬 배우 손지원의 엄마로 김성녀 씨는 여전히 바쁩니다. 그가 건강해 아주 오랫동안 무대에 서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기자칼럼] 김소영의 객석에서 문득 (김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