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있는風景

[천리포 나무들] 단군 시대 때부터 이 강산 삼천리에서 자라난 무궁화

by 진 란 2011. 8. 25.

 [천리포 나무들] ‘나라꽃’이라는 이유로 얼토당토 않은 수난 겪어




   [Hibiscus syriacus '파랑새']
   [참고] 각각의 사진마다 바로 아래에 무궁화 품종의 이름을 적어둡니다. 

   [2009. 9. 3]

   8월 가고 9월 왔습니다. 여름의 꼬리와 가을의 머리가 오르내리는 해님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락거립니다. 가을 학기 시작된 학교에 번지는 아이들의 왁자함이 반갑습니다. 수목원 숲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아침 바람이 이제는 제법 쌀쌀합니다.

   아직 미처 다하지 못한 무궁화 이야기 계속 이어갑니다. 오래 전부터 무궁화는 우리 곁에서 자랐지만, 개나리 쥐똥나무처럼 오랫동안 생울타리로 쓰이며, 그냥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특별히 보호하지도 않았고, 종 보존을 위한 별다른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겨우 1960년대 후반 들면서 학계에서 새로운 품종을 선발하기 시작했습니다.

   [Hibiscus syriacus ‘전남 3’]

   1972년에는 처음 열린 무궁화 전시회가 아마도 우리가 본격적으로 무궁화의 가치를 알리고 보전하는 작업의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이때부터 새 품종에 우리 식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적극적인 종 보존 사업을 벌였지요. 이때 붙이는 무궁화 이름에는 민족 고유의 심성과 정서를 나타내는 낱말들을 썼지요.

    익숙한 사람 이름을 붙이기도 했고, 설악, 안동, 남원 같은 땅 이름을 이용하기도 했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정서를 상징할 배달, 한얼 등을 붙이기도 했고, 서정적인 낱말로, 첫사랑, 한사랑, 늘사랑, 산처녀, 파랑새 등을 붙였습니다. 그밖에 서울, 강원, 경기, 경남 전남 등 지역 이름을 붙인 것도 있지요.



   [Hibiscus syriacus ‘서해’]

   이후 1985년에는 한국무궁화연구회가 결성되면서, 무궁화의 품종명 붙이는 작업에 보다 정밀한 전문성을 꾀했고, 외국 도입 품종과 우리 품종과의 비교 연구 등이 활발하게 진행됐습니다. 아울러 무궁화 종 보존 사업도 적극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무궁화가 언제 어떤 연유로 나라꽃에 지정됐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랫 동안 우리 민족이 마치 우리 정서를 상징하는 꽃처럼 가까이에 심어 키우는 꽃이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 꽃이 된 것입니다. 흔히 우리 한반도를 ‘무궁화 삼천리’라고 표현한 것도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 되는 근거 중의 하나일 겁니다.



   [Hibiscus syriacus ‘전남 1’]

   흥미로운 것은 무궁화는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라, 우리 백성을 상징하는 꽃이라는 점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을 상징하는 꽃은 이화(李花)였습니다. 배나무 꽃을 가리키는 이화(梨花)가 아니라, 오얏나무 꽃을 가리키는 이화(李花)입니다. 오얏나무는 자두나무의 순우리말 이름입니다.

   조선 왕실의 상징이 이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구한말부터 우리나라 꽃을 백성들의 꽃인 무궁화로 자연스레 정하게 됐다는 것도 의미있는 일 아닌가 싶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왕실이나 귀족의 상징인 꽃을 나중에 나라꽃이 되곤 한 것과 비교되는 일입니다.



   [Hibiscus syriacus ‘청암’]

   그렇게 우리 민족의 상징이 된 무궁화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지나는 동안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나무를 탄압한 예는 아마 인류 역사를 통틀어 무궁화가 유일하지 싶습니다. 일제 식민지 지배자들은 독립 투사들이 무궁화를 우리 나라의 상징으로 여긴다면서 애꿎은 무궁화를 탄압한 거죠.

   일제 침략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궁화의 가치를 폄하하기에 나섰습니다. 일테면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고 하여 ‘눈에피꽃’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별명을 붙이는가 하면, 손에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긴다고 해서 ‘부스럼꽃’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까지 무궁화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Hibiscus syriacus ‘Jeanne d'Arc’]

   하지만, 비정상적인 탄압은 거꾸로 그 탄압에 맞선 동정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지요. 식민지 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침략자들의 탄압에 맞서 무궁화를 더 아끼고자 했습니다. 죄 없는 무궁화를 탄압하면 할수록 그같은 선조들의 무궁화에 대한 애정은 커졌지요.

   탄압과 애정이 교차하면서 무궁화는 우리 땅에서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일본인들의 침략 행위는 참으로 끝이 없이 계속됐습니다. 일제 침략자들의 무궁화 탄압은 ‘무궁화 동산 사건’이라는 터무니없는 사건에서 극에 이르렀습니다.

   [Hibiscus syriacus ‘Elegantissimus’]

   이 사건은 남강 이승훈 선생이 창립하고 고당 조만식 선생이 교장으로 있던 오산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당시 조선 독립의 기개가 높았던 오산학교의 교정에는 민족의 상징인 무궁화를 심어 키우는 동산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동산을 보게 된 일본인들은 이 동산이 우리의 독립운동 정신을 키우려는 의도에서 조성된 것이라며, 철거하라고 지시했지요.

   그러나 학생들이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았어요. 그러자 일본인들은 그 무궁화 동산 전체에 불을 질러 무궁화를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그게 바로 ‘무궁화 동산 사건’입니다. 그야말로 얼토당토 않은 일입니다.

   [Hibiscus syriacus ‘Comte d'Hainault’]

   당시 일제의 무궁화 탄압에 맞서 남궁 억 선생은 무궁화를 살리기 위해 남달리 애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은 무궁화 묘목을 길러 전국에 나눠주고, 무궁화를 많이 심고 키우는 일에 앞장섰지요. 선생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우리나라 지도에 무궁화를 수놓게 하는 등 무궁화를 널리 알리려 했다고 합니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무궁화의 수난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라꽃 논쟁’이 그것입니다.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던 겁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무궁화의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닌 인도이며, 황해도 이북에서는 자라지 못하며, 진딧물과 같은 해충이 많은 나무라는 걸 근거로 삼았습니다.

   [Hibiscus syriacus ‘아랑’]

   논쟁은 치열하게 진행됐지만,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특성과 많이 닮아 있고, 또 법령으로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지정하지 않았다고 해도, 나라 안팎에서 무궁화를 우리나라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우리가 이 나무를 잘 가꾸어야 한다는 수준에서 마무리됐지요.

   일제의 무궁화 탄압과 나라꽃 논쟁 등을 겪으며, 무궁화에 대한 이미지가 다소 경직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까닭에 무궁화 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는 그 꽃에 씌워진 외적인 이미지가 더 도드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엊그제도 말씀 올렸듯이, 무궁화 꽃은 보면 볼수록 참 아름다운 꽃임에 틀림없습니다.

   [Hibiscus syriacus ‘늘사랑’]

   무궁화는 보기에 좋은 나무일 뿐 아니라, 쓰임새가 무척 다양한 요긴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뿌리는 물론이고, 줄기에서부터 잎, 열매, 꽃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귀한 약재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에도 무궁화의 쓰임새를 강조한 기록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도 “무궁화의 약성(藥性)은 순하고 독이 없으며, 장풍(腸風)과 사혈(瀉血)을 멎게 하고, 설사한 후 갈증(渴症)이 심할 때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는데, 졸음이 온다”며 약재로서의 쓰임새를 강조했습니다.



   [Hibiscus syriacus ‘Boule de Feu’]

   또 본초강목에서는 약효가 높은 식물로 무궁화를 들었지요. 여인들의 대하증과 종기의 통증을 멎게 하는 진통제로도 쓰이며, 무궁화를 달인 물로 눈을 씻으면 눈이 맑아진다고도 했습니다. 또 무궁화의 껍질과 꽃은 혈액순환을 도우며, 잎을 달인 물로 치질 부위를 찜질하고, 씻으면 통증이 잘 멎는다고 합니다.

   우리 강산의 여름은 무궁화가 있어서 더 아름다운 게 사실입니다. 꽃이 크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나무로, 조경용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나무입니다. 여름 간다지만, 무궁화는 여전히 우리 곁에 활짝 피어있습니다. 이 계절에는 무궁화 꽃 다 떨어지기 전에 꼭 한번 우리 곁의 무궁화를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Hibiscus syriacus ‘홍대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궁화 꽃입니다. 그만큼 저 역시 준비해둔 이야기와 사진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지금 우리 수목원에는 배롱나무, 꽃무릇 예쁘게 피었지만, 기왕에 시작한 무궁화 이야기 좀더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 솔숲닷컴에서 받은 편지

 

 

 


 

 

 

[천리포 나무들] 단군 시대 때부터 이 강산 삼천리에서 자라난 무궁화




   [Hibiscus syriacus ‘Single Red’]
   [참고] 지난 주에 그랬던 것처럼 사진 바로 아래에 무궁화 품종의 이름을 적어둡니다.

   [2009. 8. 31] 

   무궁화 꽃은 아름다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아름다운 꽃으로 많은 사람들이 칭송해왔어요. 저만의 생각일지 모릅니다만, 사실 무궁화 꽃의 참 멋은 단박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바람의 소리가 귓전을 간질이는 느낌을 얻을 만큼 꽃 송이 앞에 가만히 서서 한참 들여다 보아야 이 꽃이 정말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지 싶어요.

   특히 우리에게는 무궁화가 ‘나라꽃’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바람에 그 아름다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국경일 행사 때라든가, 국가 기관의 건물 앞 뜰에서나 보는 의례적인 꽃 정도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Hibiscus syriacus ‘角倉=Suminokura’]

   나라 꽃이라는 명분 때문에 이 꽃 자체의 아름다움에 다가서기 어려워진 건 아닐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다른 꽃들 못지 않게 무궁화 꽃은 참 예쁜 꽃입니다. 게다가 꽃이 그리 많지 않은 여름 내내 꽃을 피우기 때문에 더 돋보이는 꽃이기도 합니다.

   무궁화가 우리의 나라 꽃이 된 것도 실은 어떤 특별한 까닭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나라에 이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고, 한여름 내내 피어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하다 해서 저절로 나라 꽃이 된 것이지요. 애국가의 한 소절도 그렇지만, 우리의 산하를 그냥 ‘무궁화 삼천리’라고 이야기하기도 할 정도이니까요.



   [Hibiscus syriacus ‘강원 2’] : 천리포수목원에서 선발한 품종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여름을 대표하는 꽃입니다. 여름 시작되는 7월께 처음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늦게는 10월 초까지 무궁무진하게 꽃을 피우는 게 무궁화입니다. 아침에 피어난 꽃이 저녁 되어 지고나면, 다음 날 아침에 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면서 우리의 여름을 아름답게 하는 나무입니다.

   무궁화 한 그루에서 무려 1천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데, 많은 경우에는 3천 송이까지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이 알맞은 나무입니다. 대개의 경우 한 그루의 무궁화에서는 하루에 스무 송이에서 서른 송이를 피워 올리면서 백일 동안 지속됩니다. 결국 한 그루에서 무려 3천 송이의 꽃을 피우는 겁니다.



   [Hibiscus syriacus ‘충무’]

   꽃의 생김새는 무척 다양합니다. 엊그제 보여드린 사진에서나 오늘 편지에서 보여드리는 꽃들도 저마다 다른 모습입니다. 홀꽃, 겹꽃, 반겹꽃, 천겹 등의 생김새에, 가장 흔한 연보랏빛에서부터 거의 푸른 빛이 도는 청보라빛과 흰색까지 있습니다. 또 꽃송이의 한가운데 짙은 빨간 색이 들어있는 것도 있고, 그냥 한 가지 색으로만 이뤄진 꽃도 있지요.

   무궁화는 자라나는 모습도 참 여러 가지입니다만, 기본적으로 나뭇가지는 위로 쭉쭉 뻗어가는 성질을 갖고 있지요. 줄기 아랫부분부터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며 자라나는 게 대부분이지만, 어떤 품종은 하나의 굵은 줄기가 쭉 뻗어오른 뒤 줄기 중간 쯤에서 가지가 여럿으로 펼쳐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Hibiscus syriacus ‘배달’] : 무궁화에는 이 나무처럼 지역 이름을 붙인 품종이 여럿 있습니다.

   처음 나는 어린 가지에는 털이 많이 돋지만, 자라나면서 차츰 털은 사라지지요. 잎사귀의 가장자리에는 불규칙한 톱니가 나있는데, 이게 워낙 불규칙해서, 조금은 어지러워 보인다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단정한 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 모습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시겠지요.

   꽃송이의 크기에서도 차이가 큽니다. 식물도감에는 무궁화 꽃의 지름이 대개 6-10센티미터 정도 된다고 하지만, 어떤 품종의 경우는 5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꽃이 있는가 하면, 어떤 품종은 15센티미터나 되는 큰 것도 있지요.



   [Hibiscus syriacus ‘사임당’] ‘천리포 1’ 과 마찬가지로 천리포수목원에서 선발한 품종입니다.

   무궁화에는 곤충들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많다고 합니다. 진딧물이 많은 까닭이 되겠지요. 진딧물은 무궁화의 어린 가지에 많이 달라붙습니다. 이런 까닭에 무궁화를 기르고자 하려면 진딧물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생각해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름 내내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서 그 정도의 수고는 필요하다 하는 거지요.

   무궁화는 키우기가 쉬운 나무에 속합니다. 씨앗으로 번식하거나 꺾꽂이 방식으로 번식하거나 그리 어렵지 않게 번식시킬 수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물이 잘 빠지고 햇빛이 적당히 드는 곳이라면 긴 가뭄이나 오랜 장마도 끄떡 없이 견뎌내는 생명력이 질긴 나무라고 합니다.



   [Hibiscus syriacus ‘紫盃=Shihai’] 안동 예안향교 경내에 ‘안동’ 고목이 있습니다.

   무궁화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 인도 소아시아 등지에서 잘 자랍니다. 그밖에도 추위가 극심한 한대지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이지요. 무궁화는 겨울 추위도 잘 견디는 나무여서 우리나라처럼 사철 기후의 변화가 심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지금 우리나라 안에서 무궁화의 자생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무궁화는 단군 시대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자라던 나무인데, 이상하게도 그 많던 자생지가 지금은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는 거예요.



   [Hibiscus syriacus ‘산처녀’]

   추위에 강한 무궁화는 봄에 오는 소리에도 무딘 모양입니다. 목련이나 개나리 같은 ‘영춘(迎春)’의 나무들이 성급한 꽃을 피우는 동안에도 무궁화는 싹을 틔우지 않습니다. 무궁화는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눈을 틔웁니다. 한 여름 내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그렇게 ‘몸 만들기’에 철저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무궁화는 전 세계적으로 약 3백 종의 품종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수목원에서 수집해 키우고 있는 품종은 2백 종이 훨씬 넘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무궁화를 모두 수집한 것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무궁화는 아욱과에 속하는 나무인데, 친척 관계를 가지는 식물로 황근과 부용이 있지요.



   [Hibiscus syriacus ‘루즈’]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찹니다. 가을 걸음걸이가 빨라졌네요. 귀뚜라미가 매미 대신 노래를 합니다. 여름을 대표하는 꽃 무궁화 이야기 아직 많이 남았는데, 여름은 그렇게 달아납니다. 계절 바뀔 때마다 그렇지만, 이 여름 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늘의 무궁화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입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어느 새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한가득입니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체온을 재는 걱정스러운 풍경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어른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때입니다. 계절 바뀔 때마다 인사로 하던 ‘감기 조심하세요’ 라는 인사가 어느 때보다 귀하게 들려옵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Hibiscus syriacus ‘전북 1’]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 솔숲닷컴에서 받은 편지

 

 

26757

더보기

내도 무궁화 나무, 전국 최고령?
주민들 "130년 정도 됐다"…국립공원 "수령 측정 후 천연기념물 신청 검토"
2011년 08월 22일 (월) 10:59:17 김경옥 기자 oxygen0801@naver.com

 

   
 김명규 내도 자치위원회 사무장이 130년으로 추정 되는 대한민국 최고령 무궁화를 설명하고 있다.
내도에 있는 한 무궁화 나무의 수령이 화제다.

손목 굵기인 마을의 다른 나무(수령 50-60년)에 비해 이 나무 둘레는 80cm를 넘는 만큼 수령이 130년 정도는 될 것이라고 주민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수령 측정이 없었던 만큼 궁금증이 커질수 밖에 없는 것. 방금대 내도마을 이장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부터 나무가 있었다고 들었으니 최소 130년은 될 것이다"며 "하얀 꽃을 피우는 백단심으로 8월에 꽃이 만개한다"고 말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관계자는 "100년이 넘어 보이긴 하지만 정확한 수령 측정이 안된만큼 우선 수령을 측정한 후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현재 나무가 쇠약한 상태로 구멍을 뚫어 측정하기 어려운 만큼 특수 장비를 임대해 9월 중 산림청 관계자와 나무의 정확한 수령을 파악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최고령 무궁화 나무로 천연기념물 또는 보호수 등재 등의 신청을 하면 문화재청이 검토를 거쳐 천연기념물 지정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궁화 나무는 강릉시 사천면 강릉 박씨 종중 재실 내에 있는 것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수령 110년이 공인 기록.

내도에 있는 무궁화 나무가 측정결과 최고령 무궁화 나무로 공인되고 이에따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  이는 내도는 물론 거제의 새로운 자랑거리로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내도는 지난해 행정안전부로부터 '가고 싶은섬 (Best) 10'에 선정됐고 이에따라 아름다운 섬 가꾸기 사업을 위한 국비를 지원 받았다.

 

 

더보기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
2011년 08월 09일 (화) 11:46:54 김형남 국가브랜드 자문위원 wk@worldkorean.net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이다. 2007년 어린이 1만 명이 뜻을 모아 무궁화 관련 단체의 도움을 받아 선포했다. 숫자 8을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 기호(∞)가 되어, 끝이 없다는 무궁(無窮)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인 점과 무궁화가 만발한 한여름 시즌을 고려하여 결정하였다.

 

나라꽃 무궁화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이 초대대통령이 되자, 하와이에서 많이 봤던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지정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의 무궁화에 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진(東晉)의 지리서(地理書) 《산해경(山海經)》에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君子之國有薰華草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다. 또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君子之國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기록이 있고, 《예문유취(藝文類聚)》 권(卷)89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백성들이 그것을 먹는다(君子之國多木菫之華人民食)' 라는 기록이 있다.

 

최치원 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뜻함)이라 하였고, 《구당서》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중국에서 한국을 '근역(槿域)'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예종(睿宗)은 고려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하였다.

 

이상에서 보더라도 최소한 4세기 중엽의 한국에는 가는 곳마다 무궁화가 만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라는 구절이 아무런 저항없이 수용된 것도 무궁화가 오랜 세월을 통해 우리나라, 우리 민족과 인연을 맺어 온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과 더불어 지내 온 무궁화가 일제 강점기에 수난을 겪었다. 일본은 무궁화를 뽑아 없앴으며,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서고 손에 닿으면 부스럼이 생긴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는 일본인들이 수십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무궁화나무는 모조리 골라서 베어내고, 벌레 먹고 보기 싫은 품종만 골라서 남겨두었다. 애국지사 남궁억 은 무궁화 묘목을 전국적으로 보급해오다가 형무소에 투옥되었고,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도안도 삭제되었다.

 

무궁화가 태극기와 함께 한민족에게 조국을 상징하고 결속력을 키우는 강력한 존재임을 간파한 일제는 무궁화를 우리 민족과 멀리 떼어놓기 위해 무궁화를 볼품없는 지저분한 꽃이라고 경멸하여 격하시키고 일본 꽃인 벚꽃을 심게 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 겨레는 가슴에 무궁화를 새겼으며, 정부 규정상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것은 1949년이지만, 실제로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은 이미 수천년 전의 일이다. 1949년에 공무원의 배지에 등장했고, 1950년에는 태극기 깃봉에 새겨졌다. 한편, 전 세계의 200여 종 무궁화 가운데 우리나라의 순수 무궁화로는 단심계ㆍ아사달계ㆍ배달계가 있다.

 

태양처럼 매일 새로운 꽃이 연속적으로 피어, 초여름에서 가을까지 백여일 동안 끊임없이 가장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것이 무궁화다.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노래가사 그대로 무궁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에 보통 작은 나무는 20여 송이, 큰 나무는 50여 송이의 꽃이 피므로 100여일 동안이면 한 해에 2천~5천여 송이의 무궁한 꽃을 피운다.

무궁화는 그 속에 담겨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도도히 흐르는 배달겨레의 맥락과 함께 보아야 한다.

 

 

[문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궁화 나라꽃 무궁화가 활짝 피어있다.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942-1번지에는 우리나라 가장오래된 무궁화가 있다.

수고 6.4M의 둘레 28CM에 달하는 우리꽃 무궁화

 

더보기

가장 나이 많은 무궁화 '안동' / 김호태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피었네 피었네 ........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울타리에 피어있는 무궁화를 보면서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입학하면서 동요 태극기와 무궁화를 함께 새로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동요 무궁화는 늘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집 주위에 항상 무궁화가 피어 있었고 늘 그 꽃술을 따며 놀았던 기억들이 몸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무궁화는 일제의 번뜩이는 칼날 앞에서도 무궁하게 피었던 꽃이다.

 그리고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도 어김없이 꽃을 피우며 민족과 함께 했던 군자의 기상을 잃지 않고 우리와 함께한 꽃이다.

예안향교 명륜당(明倫堂) 앞에는 의젓한 자태의 토종 무궁화 한 그루가 서 있다. 나이는 100살 정도이고 ‘안동’이라 이름 지어진 무궁화다. 안동을 상징하는 많은 문화재가 있어도 안동이란 이름으로 당당하게 불리는 것은 없다. 또 이 무궁화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무궁화나무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안동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많다. 더욱이 남원에 있는 무궁화 ‘남원’아가씨와 결혼을 하여 ‘삼천리’를 탄생시켜 그 유명세가 더하다. 결국 무궁화 ‘안동’은 방방곡곡에 ‘삼천리’를 꽃피우게 된 셈이다. 특히 ‘삼천리’는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과 독립투사 분들이 어느 지역보다 많아 자랑거리듯이 왜인들의 눈을 피해 장수하고 있는 무궁화 ‘안동’이 있어 또한 자랑거리다. 왜인들은 우리의 민족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자행했지만 그 중에서도 한민족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무궁화를 없애기에 더욱 철저했었다. 태극기는 장롱 속에 숨겨서 간직할 수 있었지만 무궁화는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에 그 명맥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왜인 경찰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휘젓고 다니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눈에 뛰는 무궁화는 모두 뽑아 없애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무궁화에 대한 비난까지 일삼았다. 진딧물이 많이 달라붙고, 화려하거나 예쁘지도 않고, 원산지가 한국이 아니라는 등의 말로 폄하하는 일까지 벌렸다. 왜인들이 물러간 뒤에도 그들에게서 교육받은 일부 사람들이 나라꽃을 아예 바꾸자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많은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 무궁화 ‘안동’이 예안 향교 정 중앙에 자리 잡고 100년 넘게 자라준 것에 먼저 고마워할 따름이다. 왜인 경찰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당시의 교육기관이었던 향교에 이런 무궁화를 심어서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는 것도 또한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예안지역을 대표하는 교육기관 예안향교는 조선 초기인 15세기 후반에 문을 열었다. 선조 34년(1601년)에 개?보수를 거쳐 오랫동안 이 지역의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궁화 ‘안동’은 조선 말기인 1900년대 국권이 흔들릴 무렵에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그 누군가가 이 곳 예안향교에 심은 것으로 보인다.

 

군자의 꽃 무궁화


무궁화는 어쩌면 나라꽃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가까이 하기 어려워진 나무가 아닌가 싶다. 무궁화는 그냥 꽃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운 꽃이다. 7월부터 100일 이상 한여름 내내  꽃을 피우는 귀한 여름꽃나무여서 정원수로 더없이 좋은 수종이다. 그리고 아침에 해가 뜨면 피고 저녁이면 꽃잎을 여미는 태양과 함께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 행사의 관례적인 일에 많이 동원되는 꽃이라는 점이 개인이 사랑하기에 좀 거리가 있게 느껴 질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무궁화는 나라를 상징하기 전에 한 종의 식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꽃이다. 사전에 무궁화는 아욱과의 내한성 낙엽관목으로 학명은 Hibiscus L.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Hibiscus라는 속(屬)명의 어원은 Hibis (고대 이집트의 아름다운신)+ isco(유사하다)라는 뜻으로 즉, 아름다운 신을 닮았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종(種)명인 syriacus는 원산지가 중동의 ?시리아?라는 뜻인데, 시리아에는 무궁화가 없기 때문에 명명자가 잘못 붙였다는 것이 학자들의 통설이다. 또한 영명의 Rose of Sharon에서 ?샤론?이란 성경에 나오는 성스러운 땅을 일컫는 말로 ?신에게 바치고 싶은 꽃?또는 ?성스러운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란 뜻으로 대단히 아름다움을 뜻하며, Shrub Althea는 Althea가 그리스 말로 ?치료하다?라는 뜻이므로 약용으로 쓰이는 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명(漢名)의 순화(舜花), 순영(舜英)도 미모의 여인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로 대단히 아름답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매우 아름다운 꽃으로 표기되고 그 종류도 대단히 많기 때문에 학명의 변천도 다양했을 뿐 아니라, 분포 지역 및 꽃 색깔과 모양에 따라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궁화는 단군 조선이 세워지기 이전인 선사시대 환 나라의 나라꽃인 ‘환화’로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어 오천년 동안을 겨레와 함께한 꽃임을 알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그 쓰임에 따라 이름도 무려 194가지나 되어 다양하게 우리 생활에 녹아 있음이다. 무궁화란 명칭은 옛 문헌인 동국이상국집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무궁화의 군자다운 모습을 잘 표현한 이름인 것 같다.

 

뉴욕 식물원 본관 앞에는 무궁화동산이 있다. 이 식물원 관계자는 이 무궁화동산을 아주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고 한다. 무궁화는 우리만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 그 누가 보아도 좋은 꽃임에 틀림이 없다. 그 깨끗한 흰 꽃잎이 붉은 빛 화심을 감싸고 있어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산해경(山海經)에서 군자의 나라에는 훈화초가 있다.(君子國 有薰華草)라 하였고, 고금주(古今注)에서는 “군자의 나라에는 천리나 되는 지방 곳곳에 목근화(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다.(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하고 하였다. 

 

무궁화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다. 섬나라 왜인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독도를 사랑하듯이 무궁화 ‘안동’도 애정을 가지고 잘 보살펴야하겠다.   
 

 

 

더보기

무궁화 색깔 분류 전설

shrub althaea라고도 함.
아욱과(―科 Malvaceae)에 속하는 낙엽관목.
[개요]

 

님보라(홀꽃)
배달(홀꽃)
온대지방에서 7~10월의 약 100일 동안 줄기차게 피는 아름다운 꽃나무이다. 보통 키가 2~4m이지만 가로수로 심는 교목도 있다.

 

 

그루 전체에 털이 거의 없고 많은 가지를 치며 나무껍질은 회색이다. 잎은 마름모꼴의 계란 모양으로 어긋나며 얕게 3갈래로 갈라진다. 잎자루가 짧고 잎가장자리에는 불규칙한 작은 톱니가 있다. 꽃은 종 모양으로 새로 자라난 가지에 돋아난 잎겨드랑이에서 1송이씩 피며 꽃자루가 짧다. 꽃은 매일 이른 새벽에 피며 저녁이 되면 시들어 말라 떨어지는데, 3개월 동안 매일 새 꽃이 피어 계속 신선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꽃은 홑꽃과 여러 형태의 겹꽃이 있는데, 꽃잎이 5장으로 된 홑꽃은 도란형(到卵形)이고 밑부분이 서로 붙어 있으며, 지름이 보통 6~10㎝이다. 겹꽃은 일반적으로 홑꽃보다 작고 지름이 4~5㎝이다. 꽃잎의 기부에 있는 진한 보라색 또는 적색의 원형 무늬를 단심(丹心)이라고 하는데, 화맥(花脈)이 단심과 같은 빛을 띠고 짧게 또는 길게 방사하는 것들도 있다. 무궁화는 보통 홑꽃·반겹꽃·겹꽃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반겹꽃과 겹꽃은 일반 꽃들과 같이 수술이 꽃잎으로 변한 것으로, 수술이 일부만 변한 것은 반겹꽃, 거의 다 변한 것은 겹꽃이 된다. 꽃의 빛깔은 흰색·분홍색·연분홍색·보라색·자주색·청색 등이다. 수술은 많은 단체웅예(單體雄蘂)로 되어 있고, 암술대는 수술통의 중앙부를 뚫고 위로 솟아나와 있으며 그 정상부인 암술머리는 5갈래로 갈라져 있다. 꽃받침은 난상피침형(卵狀披針形)이고 그 밑에 꽃받침보다 짧은 선상(線狀)의 외악(外 )이 있다. 열매는 긴 타원형의 5실로 되어 있는데 완전히 익으면 5조각으로 터져서 그 속에 들어 있던 씨들이 멀리 퍼진다. 씨는 10월에 익고 모양은 편평하며 털이 있다.

 


아사달(홀꽃)
영광(홀꽃)
사임당(반겹꽃)
[원산지와 나라꽃의 유래]

 

 
 무궁화의 'syriacus'라는 종명은 '시리아 원산'이라는 뜻이지만, 학계에서는 원산지가 시리아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인도와 중국이라는 설을 가장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옛 문헌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널리 심었던 것은 분명하다. 최근에 중국의 후난성[湖南省]·푸젠 성[福建省] 및 광시좡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일대에 널리 자생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한반도에서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산해경 山海經〉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책은 상고시대의 지리·풍속을 널리 조사해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의 제9권 해외동경(海外東經)에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君子之國在其北……有薰花草 朝生募死)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국은 한반도라는 것이 밝혀졌고, 훈화초는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의 옛 이름이다. 또한 중국의 〈고금주 古今注〉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나 되는데 무궁화가 많더라"(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구절이 있다. 이상의 문헌만으로도 한반도에는 수천 년에 걸쳐 무궁화가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신라의 효공왕이 897년 7월 당나라의 광종(光宗)에게 국서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그 국서 가운데 신라를 자칭하여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 국서를 초한 사람은 중국에까지 문장가로 이름이 나 있던 최치원으로, 그의 문집인 〈최문창후문집 崔文昌候文集〉 제1권에 그 초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신라시대부터 한국을 '무궁화 나라'[槿城]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궁화가 어떻게 한국의 나라꽃이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조선의 윤치호 등의 발의로 애국가를 만들면서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조선의 나라꽃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직후인 1949년 10월 대통령 휘장과 행정·입법·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하여 문교부가 제정·사용했고, 1950년에는 태극기의 깃봉을 무궁화의 꽃봉오리로 제정했다.

'♬있는風景'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읽는 도시… 북카페, 가을을 맞다  (0) 2011.10.21
벽속의 요정  (0) 2011.09.26
엘렌느Helene  (0) 2011.08.14
‘숫자로 보는 스머프의 비밀’ 최초 공개!  (0) 2011.08.03
걸어가자  (0) 2011.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