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첫 카르멘: 테레사 베르간사>
어머니도 고향에서 기다리고 계시고, 결혼을 앞둔 약혼자도 엄연히 있으며, 넉넉하진 않지만 안정된 직장까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담배 공장 아가씨의 뇌쇄적 도발에 빠져서 그만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순식간에 탈영병의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남자 주인공 돈 호세입니다.
언뜻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노래가 바로 '당신이 내게 던진 이 꽃은(La fleur que tu m'avais jetée)'입니다. 흔히 '꽃 노래'로 불리는 이 아리아는 카르멘의 탈옥을 방조한 죄로 감옥 생활을 하고 나온 돈 호세가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이지요. 작곡가 특유의 지극히 서정적인 선율에다가 맘껏 고음을 자랑할 수도 있어서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를 비롯해 당대의 테너들이 즐겨 부른 곡이기도 합니다.
<시쳇말로 요즘 가장 뜨는 돈 호세: 요나스 카우프만>
노래의 첫 구절인 동시에 아리아의 제목인 '당신이 내게 던진 이 꽃은' 오페라에서 잔잔하기만 했던 돈 호세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일종의 극적 장치입니다. 더불어 노래에 들어가면서 정서를 환기시키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가끔씩 콩쿠르에 참가한 젊은 테너들이 심사위원과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이 첫 구절부터 잔뜩 목에 힘주어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곡의 흐름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입니다. 김광석의 노래 '사랑했지만'을 부르면서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부터 곧바로 악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내 인생 최고의 카르멘: 역시 아들 클라이버>
"사랑했지만"이라고 꺾어 부르는 대목까지는 계속 숨을 고르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꽃 노래' 역시 절정은 뒷부분에 놓여있습니다. "시들고 마른 이 꽃은 언제나 그 부드러운 향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해도, "눈을 감아도 이 향기에 취한다"고 해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테너만큼은 결코 평정심을 잃어선 안 됩니다.
꽃이라는 소재에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 대목으로 넘어가면서, 노래의 긴장감도 증폭되고 테너의 톤도 더불어 고조됩니다. 결국 돈 호세는 "아무리 당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증오하고, 내 앞에 놓인 운명에 대해 자문"하면서 아무리 되뇌어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카르멘을 사랑한다는 것이겠지요. 여기에 도달할 때까지 테너는 목장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의 총잡이처럼 마지막 한 방을 아껴두고 있어야 합니다.
< 출처 :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의 '꽃 노래' >
그렇기에 이 '꽃 노래'의 절정은 마땅히 자신의 운명을 온통 흔들어 놓은 '카르멘'의 이름을 외치는 후반부가 되어야 합니다. 음악적 흐름도, 가사의 전개도, 심지어 테너의 음정도 '카르멘'을 연신 외치는 대목에서 최고조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 뒤로는 한 치의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이 설령 옛 사랑의 희미한 추억까지 동원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대로 정점까지 밀고 나가야 하겠지요.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이 오페라의 치명적 아름다움은 주인공들이 모두 자신이 파멸로 치닫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운명을 애써 부인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어두운 극장의 객석에서 지켜보면서 우리는 '카타르시스'에 젖어들지요. 이 오페라의 매력은 어쩌면 우리의 남루하고 비겁한 일상과 대비되기에 더욱 강렬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고 절벽 위로 즐겁게 몸을 던졌던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처럼.
La fleur que tu m’avais jetée,
Dans ma prison m’était restée.
Flétrie et séche, cette fleur
Gardait toujours sa douce odeur;
Et pendant des heures entiéres,
Sur mes yeux, fermant mes paupiéres,
De cette odeur je m’enivrais
Et dans la nuit je te voyais!
Je me prenais à te maudire,
À te détester, à me dire :
Pourquoi faut-il que le destin
L’ait mise là sur mon chemin?
Puis je m’accusais de blasphème,
Et je ne sentais en moi-même,
Je ne sentais qu’un seul désir,
Un seul désir, un seul espoir:
Te revoir, ô Carmen, ou,
te revoir!
Car tu n’avais eu qu’à paraître,
Qu’a jeter un regard sur moin
Pour t’emperer de tout mon être,
Ô ma Carmen!
Et j’étais une chose à toi
Carmen, je t'aime!
La fleur que tu m’avais jetée,
Dans ma prison m’était restée.
Flétrie et séche, cette fleur
Gardait toujours sa douce odeur;
Et pendant des heures entiéres,
Sur mes yeux, fermant mes paupiéres,
De cette odeur je m’enivrais
Et dans la nuit je te voyais!
Je me prenais à te maudire,
À te détester, à me dire :
Pourquoi faut-il que le destin
L’ait mise là sur mon chemin?
Puis je m’accusais de blasphème,
Et je ne sentais en moi-même,
Je ne sentais qu’un seul désir,
Un seul désir, un seul espoir:
Te revoir, ô Carmen, ou,
te revoir!
Car tu n’avais eu qu’à paraître,
Qu’a jeter un regard sur moin
Pour t’emperer de tout mon être,
Ô ma Carmen!
Et j’étais une chose à toi
Carmen, je t'aime!
*게시글 출처 / http://blog.chosun.com/article.log.view.screen?blogId=137&logId=567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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