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떠나고싶은풍경

유네스코도 인정했지요 ‘세상에 이런 숲이 …’

by 진 란 2011. 5. 13.

중앙일보 윤서현.김성룡] 어릴 적부터 국립수목원을 자주 찾았다. 단풍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도, 초봄에 피는 홀아비바람꽃을 알게 된 것도, 청설모를 처음 만난 것도 국립수목원에서였다. 이곳에 오면 맘껏 심호흡부터 한다. 불순물 제로의 맑은 공기, 길길이 자란 듬직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숲의 향에 세상의 찌든 때가 말끔히 씻겨나가고 마음이 평화롭게 가라앉는 걸 느낀다. 이 숲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국립수목원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일단 이름부터 잘못 알고 있다.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지정되면서 광릉수목원이라는 이름은 폐기됐다. 그러나 아직도 아무 데나 돗자리 깔고 앉아 먹고 노는 공원 정도로 아는 사람이 더 많다. 국립수목원은 국내 최고의 산림생물종 연구기관이자, 우리나라에서 네 개밖에 없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국립수목원의 참모습을 국립수목원 이정희(47) 박사의 도움으로 소개한다.

글=윤서현 기자 < yoonshjoongang.co.kr > 사진=김성룡 기자 < xdragonjoongang.co.kr >

1 숲생태관찰로의 각시붓꽃. 2 관목원의 분꽃나무. 3 양치식물원의 홀아비꽃대. 4 화목원의 산당화. 5 양치식물원의 우산나물. 6 양치식물원의 참새발고사리.

# 온갖 희귀식물이 모여 사는 곳

관람객들이 노란 피나물 꽃이 핀 숲길을 걷고 있다.

"양치식물원은 5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양치식물 도해도감』을 바탕으로 조성한 공간입니다. 고사리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죠."

 이정희 박사의 설명과 함께 바위틈의 홍지네고사리·느리미고사리·왁살고사리 등이 눈에 들어왔다. 국립수목원은 2002년부터 양치식물의 자생지 조사를 진행해 표본 1만2000여 점을 수집하고, 1200㎡(약 360평) 면적의 외부정원에 양치식물 95종을 식재했다. 국내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인 골고사리와 미기록종인 산쇠고비도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국내 자생종 보존을 위한 국립수목원의 노력은 오는 15일 개장하는 '희귀특산식물보존원'에도 담겨 있다. 울릉도·한라산·백두산·석회암지대·고층습원·숲정원으로 나눠 희귀·특산 식물 150여 종을 각각의 생태환경에 맞게 식재해 전시한다. 울릉도 특산종 우산고로쇠·홍만병초·솔송나무·섬기린초·섬초롱꽃, 백두산 특산종 흰두메양귀비·넌출월귤 등이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된다. 한라산 정상에만 서식하는 시로미, 석회암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희귀종인 동강할미꽃도 이곳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식물이다. 이 박사는 "지난해 구축한 '희귀특산식물보존복원인프라'를 바탕으로 2~3년 안에 500여 종에 이르는 국내 희귀·특산 식물을 모두 수집해 전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화목원에서 만난 직박구리.

# 숲은 가장 위대한 학습의 장이다

'어린이정원'은 국립수목원의 숙원사업이었다. 전체 관람객 중 46%를 차지하는 어린이 관람객에게 식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자연 체험의 기회를 주고자 2006년부터 어린이정원을 계획했다. 한데 예산이 부족해 착공도 하지 못한 채 계획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어린이정원이 빛을 보게 된 건,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재정 지원을 하면서부터다. 그는 선친인 고(故) 최종현 SK 회장이 지난해 '숲의 명예전당'에 오르면서 국립수목원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됐다. 올 3월에 착공에 들어가 지난 12일 개장한 어린이정원은 습지원·나비정원·햇살정원·야생화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향과 색, 감촉이 특별한 초롱꽃·백리향·구절초를 비롯한 64종의 초화(草花·꽃이 피는 풀)와 영산홍·황매화·수국 등 20여 종의 수목을 선별해 식재했다.

 '손으로 보는 식물원'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간이다. 주로 향이 강하거나 줄기와 잎이 특색이 있어 손으로 만져 구분하기 쉬운 식물을 전시하고, 점자로 표찰을 설치해 시각장애인도 식물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줄기나 잎을 문지르면 생강향이 나는 생강나무, 잎사귀에서 누린내가 나는 누리장나무, 나무 껍질을 입에 대면 쓴맛이 나는 소태나무 등이 주요 수종이다. 손으로 보는 식물원은 8개월의 내부 수리를 마치고 오는 15일 새로운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이 박사에 따르면 기존의 수목에 라벤더·로즈마리·차이브·백리향·캐모마일 등 40여 종의 허브가 추가된다고 한다.

수생식물원 내 연못에 비친 모습을 뒤집으니 또 다른 환상적인 풍경이 만들어진다.

# 국립수목원에서 봄을 만끽하는 방법

광릉숲은 서울보다 기온이 3~4도 낮다. 그래서 언제나 봄이 조금 늦다. 서울에선 봄꽃이 거의 끝물인 요즘, 국립수목원은 벚꽃과 철쭉, 진달래가 한창이다. 이 박사가 벚꽃이 가장 예쁘게 핀 곳을 보여주겠다며 '육림호'로 안내했다.

 "육림호(育林湖)는 이름 그대로 나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인공저수지예요. 이젠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진 않지만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벚나무들이 봄마다 장관을 이루죠."

 이 박사의 설명대로 하얀 벚꽃과 참나무·서어나무의 연녹색 새순, 투명한 호숫물이 환상적인 시각의 심포니를 연출하고 있었다. 꽃과 풀, 물이 어우러진 또 다른 그림은 '수생식물원'에 숨어 있다. 우리나라 국토의 형태를 본떠 만든 이곳에는 수련·부들·가래·마름 등 물가나 물속에서 자라는 식물 200여 종이 산다.

국립수목원의 봄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선 '화목원'과 '관목원'에 꼭 들러야 한다. 화목원은 특별히 꽃이 아름다운 188종의 나무를, 관목원은 높이가 2m 이내인 388종의 나무를 모아 심어 놓은 곳이다. 관목원은 올라가는 길도 좁고 꼬불꼬불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찾는 국립수목원의 숨은 명소이기도 하다. 오를 때는 숨차지만 국내 특산식물인 히어리의 연황색 꽃, 매혹적인 자태의 붉은 산당화 등을 마주하면 이쯤의 수고는 까맣게 잊게 된다.

 이 박사가 "관목원에서 꼭 봐야 할 게 있다"며 한참을 끌고 갔다. 흰진달래였다. 진달래의 변이종으로 서식 환경의 변화와 무분별한 채취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희귀종이다. 이때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돗자리 깔고 앉아 흰진달래 가지를 얼굴에 끌어당겨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꽃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 이용정보

국립수목원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방문예정일 30일 이내에 홈페이지(www.kna.go.kr) 로 예약해야 한다. 국립수목원은 하루 입장객 수를 평일 5000명, 토요일 3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국립수목원에는 체계적인 관람을 도와주는 전문해설가가 있다. 매시 정각에 시작해 수목원 해설은 1시간, 박물관 해설은 30분이 걸린다. 정문 안내센터에서 신청하면 된다. 자동해설기도 마련되어 있다. 수목원 자동해설기는 안내센터에서, 박물관 자동해설기는 산림박물관 1층 안내데스크에서 무료로 빌릴 수 있다. 관람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일요일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초등학생 500원. 서울에서 출발하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의정부를 지나 43번 국도를 타고 들어갈 수 있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IC에서 빠져나와 47번 국도를 타고 진입할 수 있다. 서울시청에서 42㎞ 거리다. 승용차 주차료 3000원.

▶김성룡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xdragon1/

 

 

야생화 관련 주요 사이트

 

김태정의 한국의 야생화 www.wildflower.co.kr
이명호의 야생화 www.skyspace.pe.kr
함백산 야생화 www.gogohan.go.kr
한국자생식물원 www.kbotanic.co.kr
한택식물원 www.hantaek.co.kr
아침고요수목원 www.morningcalm.co.kr
야생화개발연구회 www.wildflower114
한국의 들꽃 www.wildflower.pe.kr
국립수목원 www.kna.go.kr

 

 

 

 

 

 

543년을 가꾼 숲, 광릉 국립수목원

 

[중앙일보 윤서현.김성룡] 5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겨울을 보내고 맞는 봄의 싱그러움, 그 생명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계절이다. 해마다 5월이 오면 수목원을 간다. 온갖 정성 들인 수목원은 사계절 언제라도 아름답지만, 다양한 채도의 초록으로 채워진 5월의 수목원은 우리에게 삶의 환희마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국립수목원 내 전나무 숲길에 드러누워 하늘을 봤다. 따사로운 햇살 사이로 층층나무의 연둣빛 새순이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전국의 수목원(식물원 포함)은 현재 61개다. 미등록이지만 일정 규모를 갖춘 곳을 포함하면 100개 가까이 될 것으로 산림청은 추정한다. 하나 신록이라고 다 같은 신록이 아니다. 신록에도 등급이 있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국립수목원의 신록은 543년의 역사와 정통성을 자랑한다. 국립수목원 하니까 잘 모르는 분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릉수목원의 공식 명칭이 국립수목원이다. 국립수목원은 여기가 유일하다.

 국립수목원은 광릉숲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애초 이 터는 신숙주(1417∼75)의 묏자리였으나 세조가 자기 묏자리로 썼다. 1468년 6월 세조와 왕비 윤씨가 여기에 묻히자 조선 왕실은 '광릉(光陵)'이라 이름 붙이고, 광릉을 중심으로 사방 15리(약 5.9km)에 이르는 숲을 능림(陵林)으로 지정해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때부터 광릉숲은 금림(禁林)이 됐다. 500년이 넘도록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난 숲은 식물학자가 말하는 '극상림'의 경지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 스스로 완성된 생태계를 구축한 안정된 숲이 극상림이다. 그 원시의 숲 생태계가 서울시청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다. 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다.

 현재 광릉숲에는 식물 983종이 자라고, 동물 2881종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종이 서식한다. 그 내력과 가치에 머리를 조아린 것일까. 일제강점기 일본인은 우리 땅 곳곳에서 아름드리나무를 숱하게 베어갔지만, 광릉숲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에도 국군과 미군 모두 광릉숲 근방에서는 소이탄(표적을 불사르는 폭탄)을 쏘지 않았다고 한다.

 광릉숲을 관통하는 도로에 들어서면 시속 30㎞ 제한속도 표지판이 보인다. 그 제한속도에 맞춰 달리다 보면 숲이 내뿜는 밀도 높은 공기와 까막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가 차 안으로 날아든다. 숲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받는 자연의 선물이다.

 글=윤서현 기자 < yoonshjoongang.co.kr >

사진=김성룡 기자 < xdrago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