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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잃어버린 서촌을 찾아

by 진 란 2009. 12. 13.

잃어버린 동네를 찾아서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오밀조밀 오래된 서민의 역사와 일상이 살아 숨쉬는 ‘서촌’의 매력 뒤지기
한겨레 현시원 기자  박미향 기자
» 오밀조밀 오래된 서민의 역사와 일상이 살아 숨쉬는 ‘서촌’의 매력 뒤지기
이제 막 시작된 신선한 가을 하늘 아래 종로구 통의동 일대를 산책했다. 어렸을 때 긴 막대기를 들고 뒷동산을 탐험했던 기억을 되살려 군데군데 미로처럼 숨어 있는 골목길을 들여다보며 인왕산 바로 아랫마을 옥인동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통의동, 창성동, 체부동, 효자동, 누하동, 누상동, 옥인동, 필운동 등이 퍼즐처럼 모여 있는 경복궁 서쪽의 ‘서촌’은 아기자기하고 풍성했다. 빨랫감 같은 생활의 흔적이 듬성듬성 골목에 나와 있는가 하면 청와대 앞길의 잘 가꿔진 가로수 꽃들은 호사로웠다.
 
그런가 하면 권력 1번지인 청와대와 가까워 삼삼오오 전경들이 동네 보안을 책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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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갤러리’, ‘컨테이너 갤러리’, ‘쿤스트독’까지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전시공간을 유유히 걷다가도 유니세프 한국본부 앞, 청와대에 가까워지자 경찰이 “어디 가느냐”고 각을 세워 묻기도 했다.

 

남의 동네를 구경하기 위해 특정 공간을 찾는 건 쓸쓸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궁터였던 서촌 일대에 새로운 문화적·도시적 경험들이 쌓여가고 있는 건 삼청동이나 가로수길처럼 ‘뜨는 동네’를 선점하기 위한 몇몇의 전략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누상동 한옥에 살고 있는 박성진 건축 코디네이터는 서촌에는 이상 가옥, 박노수 가옥, 60년대 생활한옥, 이항복 집터,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등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이 많고 궁에 물자를 댔던 서민문화의 흔적이 밴 골목길이 남아 있어 양반골이었던 북촌보다 복잡한 곳이라고 말했다.

 

“근래 생긴 새 공간 중 작업실을 겸한 카페가 눈에 띄죠. 문구 디자인 사무실을 겸한 카페 ‘스프링 컴 레인 폴’이나 가구 디자인 사무실 아래 문을 연 카페들은 장사만 하려고 문을 연 게 아니라 서촌에서 살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거 아닐까요?

 

북촌이 쇼윈도 같은 느낌을 풍긴다면, 서촌은 작고 오밀조밀한 골목에 서민의 일상이 곳곳에 살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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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함 벗어나려는 갤러리·작업실 속속 상륙

 

원거리에서 보는 통의동 일대가 권력과 가까운 곳,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이라면, 근거리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통의동은 구석구석 디테일이 살아 있는, 그래서 옆집 사람들의 식거리와 근황이 궁금한 몇 안 되는 서울의 ‘동네’다.

 

2006년 겨울 통의동 옆 창성동에 터를 잡은 디자인 사무소 ‘워크룸’의 김형진 디자이너도 그런 동네를 상상하며 이곳에 왔다. “외국 영화를 볼 때마다, 카페에 들어서면 주인공을 알아채고 그에 맞는 음료를 주는 모습이 그렇게 멋스러워 보이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선 막상 많은 이들이 동네에서 활동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전 동네에서 이뤄지는 뭔가에 대한 로망이 있었죠.”

 

박활성, 이경수 등이 뭉친 젊은 디자이너 사무소 ‘워크룸’은 ‘통의동이 요새 문화적으로 뜨고 있다’는 신호탄을 알린 대표적 공간이다.

 

“문밖의 공간과 이야기하겠다는 의지로 통유리를 선택했고 입구가 거창하지 않은 1층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꾸민 ‘워크룸’에서는 외부와 소통하는 관계지향적인 작업들이 꾸준히 진행됐다.

 

 미술관에서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 규정하기 쉽지 않은 전시들이 열렸고 디자이너들은 이웃 가구 카페 ‘MK2’, 헌책방 ‘가가린’의 메뉴판이나 로고 등 아이덴티티를 세우는 작업을 했다. 거창한 일은 아니었지만, 노란색 종이의 ‘워크룸’식 디자인은 외부에 이곳의 매력을 각인시키는 단서가 됐다.

 

“통의동에 어떤 식의 새로운 기운이 만들어지는 건 구호처럼 한순간 목표 달성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거리가 새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모이는 건 누구나 이 동네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들이 몇 달 전 한 인터뷰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영추문길은 지금 일방통행로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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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추문길 끝 후지필름 건물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체부동, 누하동, 누상동을 올라가는 길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나와 있는 인왕산을 향해 가는 바로 그 방향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퇴적물에 가까울 만큼 ‘예스럽다’고 느껴지는 소박한 간판의 책방, 과일가게, 어린이들을 위한 피아노 학원이 열려 있어 생활 속 모습을 모처럼 드러낸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서는 젊은 기운도 옛 기운 못지않다.

 

최근 몇 달 새 체부동 ‘대오서점’ 옆방에는 자신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파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가게 ‘풀’(pool)이, 좁은 동굴 같은 지하 건물에는 ‘로스트 갤러리’ 등이 생겼다. 통의동 부근에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일대 한옥의 경우 평당 2000만원에 달하지만, ‘풀’처럼 소박한 공간은 한달 25만원의 월세로 아직은 저렴하다.

 

최근 인왕산 근처에도 급작스러운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옥인아파트를 기록하기 위해 젊은 예술가와 활동가들이 모였다. 그들 중 김화용 작가는 실제 옥인아파트 주민이다. “옥인동은 새소리와 계곡물 소리가 들려서 움푹 들어간 사각지대 같았지만, 시청 광장 집회부터 청와대 1인시위까지 다 보이는 특별한 공간이었어요. 인왕산 등산로 들머리라 새벽이면 등산객들이 야호!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죠.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유리를 깨는 등 심각한 철거 과정을 다 기록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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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정경 아래 역사와 현실, 정책 문제 첨예

 

서촌이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건 잊혀졌던 ‘동네’라는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한 상자에 담겨 있어서다. 그리고 이런 서촌의 궤적은 어린 시절 뛰놀았던 동네를 환기하는 개인적 기억뿐 아니라 침전된 역사적 경험과 대도시의 변화가 한데 섞여 있다.

 

통의동에서 15년 동안 철학원을 운영한 한 역술가는 “예부터 최고 명당 자리다. 음과 양이 조화돼 마음이 들뜨지 않고 여유롭다. 문화예술이 꽃필 장소”라고 호언장담했다.

 

통의동의 유서 깊은 보안여관에 사무실을 꾸린 일맥문화재단 최성우 이사장은 “서촌은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지만 도화선 같다.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와 도심 재개발 문제, 유적 보존 문제, 옥인아파트 자리에 청정공원과 물길을 만들겠다는 정부 입장 등이 다 다르다.

 

하지만 서촌은 삼청동 같은 대로가 아니라 때론 막다른 길이 나오기도 하는, 있는 그대로의 골목길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서촌은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처럼 이렇게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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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서촌 주민 누가 있나

 

⊙ 조희정·조희철 형제 | 조선 선조 때 선비 조원의 두 아들로 임진왜란 때 어머니를 해치려는 왜적에 온몸으로 대항했다. 둘의 효성이 너무도 지극해 이후 이곳을 효곡(孝谷), 효잣골, 쌍효잣골이라 했다. 지금은 가정집과 카페가 있는 평화로운 길목에 두 형제의 집터를 기억하는 비석이 있다.

 

⊙ 겸재 정선 | 조선시대 진경산수를 개척한 겸재 정선도 그의 벗과 와유(臥遊)하며 서촌에서 노닐었다. 지금의 경복고등학교 근처에서 태어난 정선은 현재 옥인동 군인아파트가 된 지역에 ‘인곡유거’(仁谷幽居)라는 집을 짓고 살았다. 그림 <인곡유거>에 정갈한 방에서 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남겼다.

 

⊙ 추사 김정희 | 국내 백송 중 가장 컸지만 지금은 밑동만 남은 ‘통의동 35번지 백송’ 터가 <세한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곳. 1839년 무명의 화가 허련이 통의동 추사의 집을 찾아 그림을 배우고자 저택 문을 두드렸다.

 

⊙ 이상 | <오감도>에서 막다른 골목을 언급했던 시인 이상도 서촌에서 자랐다. 1910년 8월 태어난 그는 가난 때문에 통의동 백부 집에 보내졌다고 한다. 오는 10월 ‘아름지기’ 재단은 이상 집터에 세울 건축물 설계를 주제로 건축상을 제정한다.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2009-09-12 오후 01:4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