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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십이월 초하루의 안부

by 진 란 2008. 12. 1.
십이월 초하루의 안부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상괴목)--별꽃

단풍나무--정가네님

감나무--민들레님

만수국--주이님

노박덩굴--어화둥둥님

천일홍--하늘호수님

대나물--얼음새꽃님

벌노랑이--늘봄님

란타나--어진내님

미국쑥부쟁이--수민님

담쟁이 열매--하늬바람님

노박덩굴--양각꽃비님

온시디움--비단옷님

야콘--본향지기님

산국--꽃내님

사철나무열매--까치밥님

국화--흐르는별님

국화--황악산님

일본 국화전시회--하얀은방울꽃님

넓은잎구절초--풍운님

팥배나무열매--파란하늘님

아스터--수니님

대문자초--새미뜰님

산수유열매--비단옷님

명자나무--모니카님

산오이풀--둥굴레님

월계수--달희님

맨드라미--다인님

청미래덩굴--기특해라님

발렌타인--수련님

호랑가시나무--소사나무님

황금--아마릴리스님

산비장이--포근이님

산호수--붉은인동님

둥근바위솔--플레이아데스님

해국--나청님

동강고랭이--kplant1님

바람재 꽃님에게...!


제가 사는 집 근처에 느티나무 길이 있습니다.
논을 메워 고층아파트를 짓고 나서 새로 낸 길입니다. 길 양쪽으로 느티나무를 길게 심었습니다. 
단풍물이 오를 무렵 동료선생님 한 분이 그 곳에 벚나무 단풍이 곱다고 했습니다. 그 곳은 느티
나무 밖에 없고 느티나무 단풍은 노랗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햇살 좋은 날 오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천천히 그 길을 걸어봤습니다.
느티나무잎은 노랑, 빨강, 아직 물들지 않은 초록의 세 가지 색이었습니다. 내 마음의 단풍색까
지 합치면 네 가지 색이지요.
느티나무 단풍색은 노랑보다 빨강이 더 강렬한 색상이니 그 동료 선생님은 빨간 느티를 벚나무일
거라고 생각했고, 저는 예전에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를 많이 보았으니 빨간 느티도 노랗게 보인 
것입니다.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고 소월이 노래한 것처럼 자세히 보
고, 오래 보지 않으니 보아도 제대로 본 게 아닙니다. 
왜 느티나무 단풍색이 다른가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면 빨강,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 않으면 노랑 물이 들어요."
"느티나무 종 자체가 달라요. 예전에는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 밖에 없었는데 요즘 심은 느티나무
는 빨갛게 물든 느티나무가 많아요."  
"느티나무가 길게 늘어선 가로수를 보면 단풍색이 차이를 보이고,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되니 유전
적인 차이로 생각해요"
느티나무는 소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이등변삼각형의 수형을 가지는 것이 메타세콰이어라면 타원형 수형을 가지는 것은 느티나무입니다. 
느티나무는 가지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나고 깨끗한 잎이 무성하게 우거지기 때문에 최
상의 정자나무이며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당산나무입니다. 
느티나무는 우람한 자태를 지녔지만 무엇 하나 억누르지 않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달려가서 오랫동안 기대고 싶은 나무입니다.
단풍물이 절정에 오른 11월 8일, 충북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느티나무를 찾았습니다. 
산 좋고 물 좋고 땅 좋고 곡식 좋고 인심까지 좋은 고장이라 해서 이름이 '오가리(五佳里)'입니다. 
천연기념물 제 382호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연갈색으로 단풍물이 들어 멀리서도 기품있고 우아하게 
보였습니다. 박달산 자락 위쪽에 위치한 상괴목과 약간 떨어진 아래쪽에 하괴목이 있습니다. 연갈
색으로 물든 상괴목 오른쪽 한 부분은 붉은 색입니다. 자세히 보면 붉은 색을 띠는 것은 붉게 물든
한 그루 작은 느티나무입니다.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에 
또 감탄하게 됩니다. 
오가리 느티나무는 '우령마을'이 만들어진 800년 전에 심었다고 합니다. 상괴목과 하괴목, 그리고
주변에 또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어 마을 사람들은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 곳을 '삼괴
정(三槐亭)'이라고 부르며, 매년 정월 대보름 자정에 당산제를 지냅니다.
옛날엔 느티나무 아래서 당산제가 끝나면 대동회의가 열렸습니다. 
마을 주민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모두 모여서 골고루 의견을 나누고 다수결에 따라 결정을 짓는 대
동회의는 서구의 의회민주주의가 도입되기 훨씬 전의 민주주의입니다. 
느티나무 그늘은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고, 토마스 모어가 말한 소국과민의 '유토피아'입니다. 
느티, 하고 부르면 내 안에 그늘을 드리우는 게 있다
느릿느릿 얼룩이 진다 눈물을 훔치듯
가지는 지상을 슬슬 쓸어 담고 있다
이런 건 아니었다, 느티가 흔드는 건 가지일 뿐
제 둥치는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느티는 넓은 잎과 주름과 많은 껍질을 가졌다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권혁범
늘 늙은 티를 내는 나무여서 '느티'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느티나무 줄기는 할머니 손등처럼 쭈글쭈글하고 너덜너덜합니다. 사실 느티
나무잎은 넓은 것이 아니라 길쭉하다고 해야 하지만 수많은 잎이 만들어내는 깊은 그늘은 바람도 
잘 통하고 모기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노거수 가운데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게 바로 느티나무
입니다. 1천년을 넘게 살아온 느티나무가 우리나라에 무려 19그루가 있습니다. 
봄이면 적막한 가지에서 고사리처럼 뭉쳐있던 잎들이 하나씩 펴지며 연둣빛 세상을 만드는 모습은 
경이롭습니다. 5월께 느티나무 꽃은 새로 난 가지에 황록색으로 조그맣게 피어납니다.
경주시 교동에는 김알지 탄생의 상서로운 이적이 있는 '계림'이 있습니다.
계림에는 느티나무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 느티나무에 김알지의 금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느티나무를 보면서 느끼는 모태같은 편안함이 결코 우연은 아닙니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많이 썼지만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느티나무가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실제로 신라의 천마총이나 가야의 고분에서 나오는 관은 대부분 느티나무라 합니다.
느티나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 글자는 '어질 인(仁)' 입니다. 
느티나무를 향하여 두 손 모아 합장하고, 깊이 고개 숙여 절을 합니다. 
느티나무의 마음에 가닿아 나도 한 그루 작은 느티나무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매듭달 12월입니다.
12월에도 느티나무처럼 늘 평안하시길 빕니다. 
 2008년 십이월 초하루 바람재 운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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