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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음악과함께듣는 기독교 죄악사1 El Condor Pasa [3]

by 진 란 2008. 10. 23.

음악과함께듣는 기독교 죄악사1 El Condor Pasa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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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과함께듣는 기독교 죄악사1 El Condor Pasa [3]

    El Condor Pasa

    I"d rather be a sparrow 달팽이가 되기 보다는
    Than a snail 참새가 되고 싶어요
    Yes, I would 맞아요
    If I could 할 수만 있다면
    I surely would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

    I"d rather be a hammer 못이 되기 보다는
    Than a nail 망치가 되고싶어요
    Yes, I would 맞아요
    If I on-ly could 할 수만 있다면
    I surely would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

    A way I"d rather sail away 지금은 멀리 날아가버린
    Like a swan 한마리의 백조처럼
    That"s here and gone 나도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어요
    A man gets tied up 땅에 얽매여 있는
    To the ground 사람들은
    He give"s the world 세상을 향해서
    It"s saddest sound 가장 슬픈 신음소리를 내지요
    It"s saddest sound 가장 슬픈 신음소리를...

    I"d rather be a forest 길거리가 되기 보다는
    Than a street 숲이 되고 싶어요
    Yes, I would 맞아요
    If I could 할 수만 있다면
    I surely would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

    I"d rather feel the earth 이 세상을
    Beneath my feet 내 발밑에 두고 싶어요
    Yes, I would 맞아요
    If I on-ly could 할 수만 있다면
    I surely would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요

    1492년 8월 3일, 산타 마리아 호, 핀타 호, 니냐 호 등 3척의 배에 120명의 인원을 인솔하고 팔로스 항을 출발, 온갖 고난을 극복, 61일간의 항해 끝에 10월 12일 서인도 제도의 한 섬에 도착했다. 원주민들이 '과니하니' 라고 부르는 섬이었는데, 콜룸버스는 이를 '산 살바도르'(San Salvador,성스러운 구세주)라 이름을 붙였다. 그 섬은 끝없는 항해로 절망에 빠진 선원들에게는 구세주 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산토 도밍고와 쿠바를 차례로 발견하고, 산토 도밍고에 '나비다드'(navidad, 성탄절)라는 성채를 구축했다. 그 성채의 한 복판에는 교회가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메리카에 세워진 최초의 유럽 거점인 셈이며 교회다. 1493년 4월, 그는 아메리카에서 수집한 소량의 금과 원주민을 데리고 바르셀로나 항에 개선 장군처럼 귀환했다. 귀국한 콜럼버스는 왕 부부로부터 ‘신세계’의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그가 가져온 금제품이 전 유럽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일화도 생겨났다. 17척에다 1,500명의 대선단에 의한 제2회 항해(1493)는 그의 선전에 따라 금을 캐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콜럼버스가 '신세계'에 도착했을 때,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라 카리브해 섬이였다. 가장 처음 본 섬을 그는 '이스파니오라'라고 불렀는데, 지금 그 섬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섬은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과 하이티 두 나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섬에는 '타이노'라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와 함께 왔던 당시의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처음에 거기에 도착했을 때 콜럼버스와 그 일행은 어쩌면 에덴동산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토록 자연이 아름답고 또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성서 속의 낙원 에덴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물건을 별로 지니고 있지 않았스며, 더위 때문에 옷도 별로 입고 있지 않고, 거의 벌거벗은 상태에 가까웠다. 그들은 농경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매우 뛰어난 농법이었다. 여러가지 종류의 작물을 동시에 함께심었다. 그렇게 하면 관리를 하거나 손댈 필요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밭에서는 일주일 중 몇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으며, 물고기가 먹고 싶으면 바다로 들어가면 곧장 얻을 수 있고, 그것도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무엇을 하면서 지내느냐 하면, 무엇보다 음악이 중요하였였다.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시간,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이 대단히 많았다. 혹은 이야기꾼이 모두에게 이야기를 하는 시간. 혹은 장식물을 만드는 시간. 그들은 대단히 솜씨가 뛰어나서 머리장식이라든가, 목걸이라든가, 귀걸이라든가, 다양한 것을 만들고 있었었다. 즉, 예술활동인 것이였다. 그리고, 유럽인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성행위였다. 연인이 한몸이 되어서 이러저러한 온갖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을 별로 숨기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도 꽤 많았습니다. 후에 이것을 야만적인 이단행위로 규정 학살은 시작된다.

    콜럼버스 일행은 그들을 노동자로 부려먹고 싶었지만,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할 리는 없을 것은 당연하다. 타이노족 사람이 본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8시간이나 10시간 동안 노동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였다.

    콜럼버스는 이사벨라 여왕에게서 돈을 받아 아메리카로 왔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것이 좋은 투자라는 것을 여왕에게 증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였다. 따라서,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는 금과 은으로 된 장식물을 가지고 가면서, 거기다가 타이노족 원주민 2명을 데리고 갈 계획이다. 그리고, 귀국후 이사벨라 여왕에게 '신세계'에는 풍부한 '부'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금이 있고, 은이 있고, 그리고 노예도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콜럼버스는 여기에서 노예제를 만들고,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였다. 타이노족은 거의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칼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몰랐다. 칼과 갑옷으로 무장한 스페인 사람들이 몹시 두려웠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곧바로 노예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타이노족은 노예가 되려고 하지 않고 자꾸 죽어가기 시작한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병으로 죽거나 또는 버티고 앉아서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울화병으로 죽기도 하고, 또는 아이들을 낳지 않기도 했다. 자신의 아이가 노예로 사는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계속되는 학살. 그래서 타이노족은 백년 사이에 전멸하였으며. 지금은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게되었다.


    <인디언 살인마, 원조 성매매 포주, 콜럼버스 | 하나뿐인 지구 2004/12/15 23:07>

    "성삼위의 이름으로, 팔 만한 노예는 모두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다목(빨간 물감 채취하는 나무)과 노예들이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노예들은 비록 살아있는 물건이지만 황금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1493년 스페인 왕과 카톨릭에 보낸 서신중에서

    1492년 콜럼버스는 히스파니올라 섬에 처음 상륙했다.

    그의 승무원 쿠네오는 이렇게 썼다."1495년 2월 17일 스페인으로 돌아올 때, 우리 배에는 그동안 잡아들인 인디언 남자와 여자 천육백명이 실려 있었다...."

    쿠네오는 콜럼버스에게서 선물받아, 개인 노예로 삼은 아름다운 십대 카리브 소녀와 섹스를 하려고 하자, 소녀가

    "온힘을 다해 저항했다"

    고 썼다. 그래서

    "소녀를 무자비하게 짓뭉개고 나서 강간했다"

    더욱이 히스파올라니 섬은 콜럼버스의 상륙이후 벌어진 벌목때문에 온 섬이 황무지가되었다.

    "콜롬버스의 괴로움을 지나 복음의 사역자들의 부름을 위한 것이다."

    신대륙 발견 400주년 기념일에 '성자'라는 칭호를 주자고 교황에게 보낸 스페인 교구 청원서 중

    콜럼버스 일행이 서인도제도 일대를 발견하고 탐험한 후, 제 2차 항해 때부터 비인도적인 만행은 시작되었다. 몇 가지만 실례를 들겠다.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에 5개의 왕국이 있었던 시대의 실화이다.


    1. 마리엔 왕국의 최후

    콜럼버스 일행이 이 섬에 처음으로 도착하였을 때, 원주민(마리엔 왕국)들은 신기한 배와 이상한 사람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줄 알고 전원을 초대하여 성대한 환영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또한 콜럼버스가 타고 온 배중 한척이 폭풍우에 한척이 파선되었을 때도 온 국민이 나서서 구조하는 일을 도와 주었을 뿐 아니라 필요한 재료를 모두 제공하고 배수리까지 도와주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콜럼 버스 일행은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Lequnne, op.cit., p 170)

    그러나 콜럼버스 일행이었던 천주교인들은 은인들을 배은망덕으로 보답하였다. 며칠 후에 안정을 되찾은 그들은 원주민들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악마로 돌변하였다. 그들은 원주민 촌을 포위, 기습공격으로 순식간에 거의 전 주민을 살해하고 그들의 왕국을 점령해버렸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베풀었던 왕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남은 사람들과 함께 숲속으로 피난가야만 했다. 그러나 피신하고 도망간 잔존 생존자들 마져 추적하여 섬멸하였다. 진실로 배은망덕하고 교활하고 비인간적이며, 사악한 학살 행위였다. 이것이 콜럼버스가 인솔하고 온 천주교인들이 그들이 발견한 섬들에서 일으킨 천인공노할 만행의 시작이었다.

    2. 하라과 왕국의 비화

    도미니카 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왕국으로 비옥한 땅과 가장 발달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콜럼버스 일행(천주교도들)이 처음 이나라에 왔을 때 낯선 손님에게 베푼 호의와 또 콜럼버스 일행을 수차 죽을 위기에서 구하여준 이야기는 많다. (Ibid., pp.171-172 참조)

    그런데 여기서도 콜럼버스 일행은 그들의 고마움을 배은망덕으로 갚았다. 60여명의 기병과 300여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일시에 그들을 불로 태워 죽였다. 그들의 계략은 먼저 그 나라의 유력자, 귀족들 300여 명을 은혜를 갚는다는 구실로 만찬에 초청하여 몇 채의 가옥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일시에 불을 놓아 태워 죽였다. 불을 피하여 집 밖으로 뛰쳐나오는 귀족들은 사전에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이 창으로 찔러 죽였다. 도망가다 넘어진 어린애는 칼로 다리를 잘라 버렸다.(Ibid.,P173). 여왕은 경의를 표시한다며 총이나 칼을 사용하지 않고 목매달아 죽였다.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국민들은 카누를 타고 다른 무인도로 도피해야 했다. 그러나 콜럼버스 일행의 천주교도 지휘관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사로잡으라고 명령하였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악마가 바로 그들이었다. 많은 원주민을 잡아 노예로 혹사한 콜럼버스는 다음과 같은 구실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였다. 원주민들은 식인을즐기는 잔인하고 욕심이 많고 타락한 영혼이기에 이들을 천주교 신앙으로 무장시켜야 구원의 백성이 될수 있다. 그 방법으로 노예들을 합숙시켜 남자들은 금을 채굴시키려고 광산으로 보냈고, 부녀자들은 땅을 개척하여 농사를 짓도록 하였다. 노예부부가 함께 거하면 아기의 출산으로 노동력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여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들의 식사는 잡초였다. 그들은 동물로 취급되었는데, 아이가 태어나 산모의 영양부족 으로 젖이 나오지 않아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Ibid)


    콜럼버스가 4차에 걸쳐서 개척한 침략수로를 뒤따른 천주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량한 원주민들을 약탈.강간.학살하였으며, 그들의 조상을 모시던 산소와 성지는 물론 국토 전체를 유린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원주민들의 종교와 문화를 파괴하고 원주민 말살작전을 전개하였다. 살아남은 원주민들 가운데 건장한 사람들을 생포하여 노예로 팔아 돈을번 콜럼버스와 뒤를 따른 기독교인 들이 자행한 침략을 인류는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것인가? 역사는 왜 이 심판을 게을리 하고 있는가?

    면역성이 없는 원주민들에게 기독교인들이 처음에 전달한 가장 살인적인 선물은 천연두. 홍역.매독 같은 전염병이었다. 수백 만의 원주민들이 기독교인들이 옮긴 전염병에 걸려 전멸하다시피 멸종되고 말았다는 기록을 기독교인 자신들이 남겨놓았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천주교인들이 처음에 도착하였을 때 중남미 원주민 인구는 약 2,500만이었는데, 침략이 시작된후 약 100년 동안에 그 인구가100만으로 줄었다는 백인들의 기록이 남아 있다.

    (stannard,D.E.,American Holocaust, 1992, p. 11.. pp. 85-86 참조)

    복음 전파와 선교라는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온 천주교도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예수의 교훈이나 계명도 아랑곳없이 목전에 보이는 자기들의 이익만을 위하여 살인단체로 변모하였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살작전을 강행하였다. 이렇게 무고한 원주민들을 살해하고서도 고해성사만 하면 모든 죄는 흰눈처럼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요약하면 콜럼버스가 시작한 중남미 침략은 그 후 천주교 세력의 중남미 침략과 지배를 확고하게 하는 선도 역할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라는 종교는,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그들이 생각하는 미개지에 식민지를 확장하는 일에 예수의 이름과 복음 전파라는 미명으로 가장하고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침략자들은 자기들의 침략행위를 개척과 발전이라는 미명과 기독교 선교라는 명목으로 자화자찬하면서 약 350년 동안에 유럽의 네 배가 넘는 광대한 땅과 자원을 빼앗고, 1억 2천만의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북중남미를 정복하고 말았다. (Sannard,op.cit,p.151)

    1500년도 초기에 유럽에서 온 천주교인들은 남미 페루지방 일대에서 840 - 1,350만의 원주민을 학살하였다. 그것은 그 지방 인구의 94%였다. (Ibid.,p.87) 또 그들은 16세기 중에 중남미에서 6,000 - 8,000만의 원주민을 학살하였고 그 학살은 계속되었다. (Ibid.,p.95.151.305.317 참조)

    당시 유럽은 신대륙 발견할려고 한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발상일뿐이며, 콜럼버스도 장삿꾼이었을 뿐이다. 역사적 사명을 띄고 신대륙을 발견할려구 했던것도 아니였다. 아울러 종교적 신념도 아닌 카톨릭의 종교적 이익을 숨기온 역사일 뿐이다.


    *난 이 노래를 자유에 대한 노래로 받아들인다.
    껍데기를 이고 바닥을 기는 달팽이, 벽에 박힌 채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못, 가로와 세로로 구획된 질서 잡힌(잡혀버린) 거리 들은 자유 없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어버린 생명을 차마 버릴 수 없어 비굴한 삶을 이어가고, 감옥이 되어버린 세상에 갇혀서 큰 소리 한 번 마음껏 지르지 못하며, 생명을 고양시키는 자연으로부터도 차단되어 있는(포장이 된 거리는 인간이 발 아래 쳐 놓은 또 하나의 벽이 되었지 않은가) 인간의 모습....
    시인은 껍데기를 버리고 가볍게, 비록 가장 연약한 새 중의 하나인 참새가 돼서라도 하늘을 자유를 느끼고 싶고, 해머로 벽을 세상의 감옥을 부수고 싶고, 자연과 호흡하며 생명을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무리 생활을 하지 않아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디에도 매인 데 없이 홀로 나는 백조의 기품을 그리고 마침내는 저 높은 하늘을 비상하는 콘돌의 기상을 노래한 것이 아닐까.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2/24/Tupac_amaru_execution.jpg
    스페인 총독에 의해 능지처참 형을 당하고 있는 콘도르상키(José Gabriel Condorcanqui 또는 Túpac Amaru II, 1742 ~ 1781)

    그들이 그를 때리려 하나 때릴 수 없고
    그들이 그를 찢으려 하나 찢을 수 없고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하나 죽일 수 없네

    이제는 끝 났다고 믿어졌을 고통의 3 일 째 되는 날
    저 땅 너머에서 자유 라 외치며 그가 되 돌아 오기에
    그들은 그를 죽일 수 없다네


    Querrán volarlo y no podrán volarlo.
    Querrán romperlo y no podrán romperlo.
    Querrán matarlo y no podrán matarlo.

    Al tercer día de los sufrimientos, cuando se crea todo consumado,
    gritando: ¡LIBERTAD! sobre la tierra, ha de volver. ¡Y no podrán matarlo!" 라고,

    페루 시인 호무알도(Romualdo, 1926~)가 독립을 위해 싸우다 붙잡혀 팔 다리 떨어져 나가는 참형으로 죽임을 당했던 잉카의 후손 농민반란 주모자 콘도르상키를 잉카 제국에서 태양 신, 잉띠(Inti)의 사자로 경배되던 쿤투르와 동일화 시켜 다시 살려 낼 수 있었던 것은 불사조처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부활하여 자신을 믿는 자들을 불멸의 저 세계로 이끌어 가고 있는 쿤투르에 대한 신앙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들을 핍박한 기독교인들의 침략자 근성앞에 그렇게 죽어간 인디오들의 설움이 베인 곡 오늘도 콘돌은 남미을 날으며 자유을 그리며 옜 과거의 아픔을 인디오들의 영혼이 되어 우리 머리위을 날으며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 수많은 인디오들의 영혼을 위해 이 노래 El Condor Pasa을 들으며 그들의 억울하고 원통한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울러 잉카문명의 발생지인 페루라지만 현제 유럽인과 교접하여 생성된 혼혈족, 메스티조(Mestizos, 전체 약 37%)보다 더 많은 약 50% 정도의 토속 순혈 원주민(Amerindian)들이 페루에 제 아무리 현재 존재한다고 해도, 순혈 원주민들이 자기 정신(영혼)의 순수함을 지켜내지 못하면 다시말해 문화의 불순도를 낮추지 못한다면 잉카제국의 재 발현은 불 가능 할 것이다. 가능하게 하는 첫 걸음은 순수혈통의 쿠에추아 족을 끌고 가도록 쿤트라에게 옛 잉카 제국의 그 때 '신화'를 회복 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구경꾼들의 눈요기 감과 자신들의 분풀이(스페인에 대한 복수) 수단으로 그 쿤투라가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페루에서 태어나 페루 대통령이 됐던 일본넘 후지모리(Alberto Ken'ya Fujimori)가 지난 십년간(1990~2000) 페루에서 더럽혀놨던 것들을 깨끗이 제거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다른 족속들과의 제대로된 공존이 한 국가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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