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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정무교기자의 용늪탐방

by 진 란 2008. 10. 16.


정무교기자의

가보고 싶은 인제탐방

  

  내가 대암산 용늪에 대해 들었던 것은 신문기자를 시작한 올 봄이었다. 누군가가 인제군에 있는 명소를 꼽으면서 대암산 용늪을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그 이름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게 했다. ‘용늪‘이라니!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름을 들으면 산을 다녀본 사람이면 누구나 나처럼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수가 없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환경운동본부인제지부>에서 용늪을 지키자는 목적으로 안내산행을 한다는 것이다.   

  9일 아침, 대암산 용늪을 탐방하기 위해 서흥리 노인정 앞에 모인 사람들은 남녀 40여명이었다. 10여명은 인제군에서 숲 해설가과정을 듣는 이들이고, 나머지 30여명은 서울, 인천, 춘천, 영천 등 전국에서 달려온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야사모)> 회원들이었다. 우리는 노인정을 배경으로 일단 기념사진부터 찍고 차에 분승해서 출발했다.

▲ 트럭을 타고 용늪길로...
  차는 완만한 산길을 따라 달렸다. 승용차를 마을에 세워두고 트럭 짐칸에 탄 사람들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흔들리면서도 웃었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짐칸에 타보는 게 재미난 체험이었다. 좌우에 산을 끼고 골짜기를 따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달리자 등산로 들머리가 나왔다.  

  이곳에 주차를 한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였다. 산행을 안내하는 이종렬(51) 서흥리 이장이 산행 배경을 설명했다. 

▲ 이종렬이장의 용늪안내
 

  “현재 대암산(해발 1304미터)은 휴식년제 기간 중이고 군작전지역이며, 생태계 보존지역에 유전자 보호림이며, 천연기념물 246호입니다. 그래서 사실 등산이 안 됩니다. 그런데도 등산을 하는 까닭은 현재 대암산이 처한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자연을 사랑하는 분들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자세한 설명은 올라가서 하겠다며 오솔길로 앞장을 섰다. 우리는 좁은 길을 따라 한 줄로 따라갔다. 오전 10시 30분이었다.

  골짜기에는 장마철처럼 물이 많았다. 콸콸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건너 숲으로 들어갔다. 숲 밖 하늘은 밝았지만 숲 안은 비밀을 간직한 곳처럼 은밀하고 아늑했다. 완만한 오솔길을 햇빛이 작은 조명처럼 비추었다. 맑은 날씨와 숲은 잘 어울린다. 이런 날 숲을 걸으면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동화에서 숲은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곳으로 자주 쓰인다. 신데렐라가 일곱 난장이를 만난 곳도 숲이고, 공주가 잠자는 곳도 숲이고, 숲속의 요정이라는 말도 동화에는 흔했다. 숲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로 가득한 곳이다. 나는 키 작은 어린애처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 촬영에 여념없는 야사모 일행
  

  야사모 회원들은 길섶에 난 산꽃을 보면 이 꽃 이름은 뭐고 저 꽃은 뭐라고 꼭 이름을 짚었다. 이름을 모르는 꽃을 보면 사람들에게 물었고, 그러면 아는 사람이 대답을 했다. 꽃 이름을 알게 된 사람은 다시는 잊어먹지 않겠다는 듯 이름을 되뇌며 꽃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애인을 찍듯이 카메라를 꽃 얼굴 깊이 대고 셔터를 눌렀다. 어떤 사람은 렌즈를 가득 담은 배낭을 짊어지고는 필요할 때마다 렌즈를 갈아가며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은 카메라 두 대를 목에 걸고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나도 꽃을 좋아하지만 이들의 열성은 남달랐다. 내가 보기에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하긴 꽃을 보겠다고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이니 그 열의가 오죽할까.

 

  골짜기 물이 넓게 흐르는 바위가 나왔다. 이 이장은 이곳을 넓다고 ‘너대바위‘라고 부른다며 여기서 밥을 먹고 가자며 주저 않더니 빵과 김밥을 꺼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은 밥을 먹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선생님을 따라 소풍을 온 아이처럼 얌전하게 이 이장 옆에 앉았다. 그러자 노인 몇이 선 채로 더 올라가서 먹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엉거주춤 서서 이 이장을 보았다.

  “여기서 밥을 먹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어요.”

 

  이 이장이 말에 사람들은 ‘그런 건 빨리 말해야지’하는 얼굴로 두말없이 털썩 앉아 배낭에서 먹을거리를 꺼내었다. 이 이장은 득의만만한 얼굴로 나에게 속삭였다.

 

  “만들면 전설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그냥 가는 사람이 없어요.”

 

  나는 이 이장의 날렵한 기지에 웃고 말았다. 덕분에 우리는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고, 누가 돌리는 복분자주도 한 잔 하고 일어섰다.

▲ 무병장수터 너대바위
  앞서 걷던 이장이 허리를 숙이고 땅에서 뭔가를 주웠다.

  “다래예요.”

  길섶에 도토리만한 다래가 떨어져 있었다.

  “어머 달아!”

  다래를 입에 넣은 여자들은 호들갑을 떨며 다래를 주웠다. 나도 하나를 주워서 먹어보았다. 동그란 다래는 입에 들어가자 뭉글뭉글 껍질까지 녹아버렸다. 달고 개운했다. 신이 난 나는 손 가득 주워서 숲을 걸으며 하나씩 입안에 넣고 녹였다. 나는 산을 다니기는 해도 산에서 뭔가를 캐거나 따는 데는 영 젬병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는 나물도 내게는 그 풀이 그 풀로 보여서 뭐하나 건져오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래를 한 손 가득 들고 하나씩 녹여먹고 있자니 그동안 쌓인 설움(?)이 녹는 것 같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걷다가 앞서 걷는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 다다랐다. 이들은 금강초롱을 보고 있었다. 한 남자가 금강초롱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했다.

  “불 켰어.”

  그리고는 셔터를 몇 번 눌렀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금강초롱을 비추는 모습을 두고 금강초롱이 ‘불을 켰다’고 말한 것이다.

▲ 금강초롱
 햐, 얼마나 아름다운 느낌인가. 60대쯤으로 보이는 이 남자의 감수성은 얼마나 맑고 깨끗한가. 나는 불을 켠 금강초롱보다 매료된 얼굴로 사진을 찍는 그 남자의 얼굴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자연을 이렇게 감상하고 즐기는 사람들만 있다면 훼손이란 말은 없어질 텐데.

  숲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가 천이백 고지예요.”

  이 이장이 말했다.

  벌써 그렇게 올라왔나? 숲을 따라 온 것뿐인데 말이다. 도무지 그 높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온 길을 생각해보니 가파른 곳이 없는 대암산은 여성스러운 산이었다. 

 

  “저 꽃이 비로용담이라고 천연기념물이예요.”

  이 이장이 보라색 꽃을 가리켰다. 길섶 곳곳의 풀 무더기 사이에 아무렇게나 핀 것 같은 꽃이었다. 이 이장이 비로용담 한포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멸종돼 가는 꽃이었는데 씨앗을 채취해 증식을 시켜서 이만큼 퍼진 거예요.”

   비로용담을 귀한 자식 보듯 하는 이장의 눈길에서 병든 자식을 살려낸 부모의 심정이 느껴졌다. 꽃 한포기를 살리려고 이곳까지 올라와서 씨앗을 받고 심고 가꾸는 이런 사람과 나 같이 등산이나 하고 내려가는 이들과 어찌 이 산에 대한 애정을 견주겠나. 이 이장에게는 대암산이 마을이고 집이고 살림이지 않을까.

  “이 꽃의 뿌리가 써요. 그래서 ‘용의 담膽‘이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용늪에 용담이라. 이런 요소들이 상승작용을 해서 사람을 끄는 흡인력을 더 한다고 이 이장이 말했다. 맞는 말이다.    

  비루용담은 길섶에 쭉 이어 나타나다가 군작전도로가 나오면서 보이지 않았다. 비포장 군작전도로는 정상 밑 넓은 지역을 멋쩍게 가로질러 나 있었다. 황톳길이 산을 잘라놓았다고 할까.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걸어서 약간 올라선 헬기장에 모였다. 헬기장을 중심으로 넓은 고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올라온 산 아래 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로 큰 산들이 겹겹이 서 있었다. 서쪽으로는 멀리 양구가 보였다. 용늪은 헬기장 아래쪽에 있었다.

▲ 대암산 용늪에서.
  이 이장이 말했다.

  “용늪은 작은 용늪과 큰 용늪 두 개입니다. 그런데 저쪽을 보세요.”

  이 이장이 가리킨 높은 곳에는 큰 집이 몇 개 있었다.

  “저곳이 21사단 통신부대인데요. 눈이 녹는 봄과 장마철이면 저 부대 연병장과 군작전도로에서 흘러내려온 토사가 작은 용늪으로 내려와서 지금 작은 용늪은 육상화가 되었어요. 늪이 없어진 겁니다. 우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큰 용늪도 없어질 겁니다. 그래서 원주지방환경청에서 예산을 책정해두고 방지대책을 마련하려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 이장의 목소리는 점점 수심이 짙게 배였다.

  “더 큰 문제는 인제군의 이웃인 양구에서 이곳으로 올라오는 길을 세 개나 만들어서 관광자원으로 사용하려는 겁니다. 양구가 용늪을 개방하겠다면 인제군과 사회적 합의를 한 뒤에 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용늪은 행정구역상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산170번지>로 인제군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두 군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존대책을 마련한 뒤에 적절하게 개방을 하면 되는데, 무작정 관광객을 들여 돈을 벌겠다면 용늪은 죽습니다. 이렇게 발 빠르게 양구가 움직이는데 안타깝게도 인제군은 그동안 용늪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할 때 이 이장이 ‘개방이냐, 보존이냐’를 말한 사연이 이해되었다. 좀 생각을 해보니 이건 아주 우스운 일이었다. 주인이 낮잠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서 이웃이 돈 좀 벌자고 내 마당에 들어선 꼴이 아닌가.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니까 당한 일이다. 남 탓할 일도 못 되었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내 집 마당을 가꿔야 마땅하다. 

 

  우리는 용늪 가까이 내려갔지만 천연기념물이라 들어갈 수는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용늪은 축구장 두 개 정도의 넓이였다. 빽빽하게 풀이 돋아난 밑으로 물이 보였다. 승천하던 용이 쉬어갔다는 남한 유일의 고원습지는 산 사이에 둥지처럼 담겨 있었다. 평화롭고 아늑해서 정겨웠다. 승천하던 용이 쉬어갈 만한 조화 속이었다. 야사모 회원들은 길에 핀 구절초와 물매화를 사진에 담으려고 분주했다.

▲ 물매화. 끈끈이주걱

  송대황 야사모 회장은 “우리는 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인데 이곳은 고산습지에서 꽃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고, 끈끈이주걱, 물매화 등이 용늪에 함께 어우러져 핀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용늪의 건재를 빌며 산을 내려왔다. 그 비밀스런 숲길에 떨어진 가래도 주우면서 등산로 들머리에 다다른 시간은 오후 4시였다. 우리는 폐교된 서흥초등학교로 자리를 옮겨서 준비해둔 막걸리로 뒤풀이를 하며 용늪을 보존하기 위해 마을과 힘을 모으겠다는 다짐을 하고 헤어졌다. 해를 넘기는 대암산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서흥초교에서

출처 :한국환경운동본부 인제 원문보기 글쓴이 : greenin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