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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소증 세대와 촛불 세대

by 진 란 2008. 6. 19.

소증 세대와 촛불 세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

1970년대에 실존했던 흑인 범죄조직 두목 프랭크 루커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 프랭크(덴젤 워싱턴)가

보스로 섬기던 범피와 도심 번화가를 거닐던 중 범피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범죄자였지만,

범피는 나름대로 선행도 베풀어 할렘가 흑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존재였다.

그가 죽기 전에 급속도로 대형화·체인화하는 점포들에 대해 쏟아놓는 푸념이 재미있다.

"이런 식의 개발은 미국의 큰 문제야.

모든 게 나날이 대형화되잖아.

길모퉁이 가게는 수퍼마켓이 되고, 과자 가게는 맥도널드가 되고, 여긴 초대형 할인매장이 됐어.

 

상인의 자부심이 실종됐어.

인간미도 사라졌고. 무슨 권리로 상권을 싹쓸이하느냐고…

 

정말 큰 문제야.

가게 안에 주인이 있어야 칼 들고 돈을 뜯지.

" 범피는 주인은 안 보이고 온통 종업원뿐인 할인매장 안에서 탄식을 거듭하다 숨을 거둔다.

'아메리칸 갱스터'의 이 대목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촛불시위를 떠올렸다. 도

대체 주인은 코빼기도 볼 수 없는 대형 점포. 강도가 느끼는 당혹감은 어려운 말로 하면 일종의 소외(疎外) 현상이다.

 

청계천과 서울광장에 모인 촛불시위대도

"가게에 주인이 있어야 말이라도 걸어 보지"라며 탄식하다 하나둘 집을 나선 것 아닐까.

그들에게 '가게'는 국회요, 청와대요, 정부다.

 

대의민주주의 잘하라고 투표하고 권한 주어 내각도 꾸미게 했는데,

바꿔 말하면 '상권을 싹쓸이'해 몰아주었는데 하는 짓이 영 시답잖은 것 아니겠는가.

 

국민은 강도가 돈을 탐내는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간절하게 건강과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데

종업원들만 나서서 딴소리를 늘어놓으니 화가 북받친 것 아닌가 말이다.

수십 개 단체에 이름 걸어놓고 각종 시위마다 개근하는 '꾼'들도 보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촛불시위는 일반 시민이 주축이었다. 더 좁히면 중·고생을 포함한 젊은 세대가 다수였다.

 

그러므로

'시위 행렬의 앞에 서면 선동 세력, 중간에 끼이면 핵심 세력, 뒤에서 따라가면 배후 세력' 이라는

최근 유머는 정곡을 찔렀다.

 

쇠고기 정국을 놓고 대의정치의 실종이니 생활정치의 등장이니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나는 '소증(素症) 세대'와 '촛불 세대' 의 인식 차이도 사태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소증은 푸성귀만 너무 먹어 고기가 먹고 싶어지는 증세다.

아무리 강부자 내각이라지만 노무현 정부보다 한층 연로해진 현 정부 인사 상당수는 자랄 때 소증을 경험했을 것이다.

 

내남없이 가난했고 보릿고개가 매년 찾아오던 시절이었다.

'소증 나면 병아리만 쫓아도 낫다'는 속담에 다들 공감하던 때였다.

내가 아는 한 장관은 시골에서 대도시로 전학간 뒤 난생 처음 자장면을 먹고 된통 설사를 했었다.

 

누구보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적빈(赤貧)의 생생한 증언자다.

초등학교 때도 굶기를 밥먹듯 하면서 김밥·성냥 장사를 했고,

밀가루떡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팔다 헌병한테 걸려 두들겨맞기도 했다.

성장기의 원(原)체험은 처지 변화와 상관없이 오래 영향을 끼친다.

꿀꿀이죽·존슨탕으로 기갈을 막던 세대에 먹거리는 종류를 막론하고 '없어서 못 먹지'다.

 

그런 체험이 쇠고기 도입 협상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 아닐까.

꽁보리밥을 쌀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먹던 세대와 웰빙 음식으로 즐기는 세대의 먹거리관(觀)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서울광장과 청계천 공사를 잘 해놓았다.

촛불 세대가 소증 세대에 말을 건넬 공간을 마련한 셈이니까.

 

나는 촛불시위를 대의민주주의의 실종이 아닌 보완 수단으로 이해한다.

이왕이면 정부가 나서서 광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움츠리고 주눅들 이유가 없다.

사회적 이슈는 쇠고기 이후에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주말이면 해당 장관이 나와 촛불 세대와 대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많은 소증 세대의 추억일랑 일단 접어두자. 어차피 시간은 촛불 세대 편이다.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8.06.13 00:34

 

 

 

 

‘소통’에 진정성을 담아라

 

요즈음 이명박 정부가 '소통'이란 말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 시끄럽기만 한 빈 수레가 떠오른다.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연일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이명박 정부 지지도가 뚝뚝 떨어지면서 대통령부터 나서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연일 거리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과 진정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모습은 청와대나 집권 여당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은 겨우 경찰 정도다.

쇠고기 문제에 덧붙여져 고유가 문제가 불거지면서 화물연대와 건설기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기로 해 물류대란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여기에
민주노총이 자동차 4사를 포함해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키로 돼 있어 산업현장 또한 일대 혼란과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이 많은 시기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소통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노조가 머리를 맞댄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노동계에서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안에 대화할 상대가 없다고 불만이 가득하다. 노동부 산하기관들은 기관장들의 사표를 두 달 전에 제출했지만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업무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는 노동계의 움직임에 대한 정부의 엄정 대응만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고, 정부는 '법과 질서의 준수'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다.

누가 봐도 현재의 상황은 위기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세계경제 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은 기업과 노동자, 일반 서민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통이 크면 아우성이 커지고 충돌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이 아우성을 보듬고 그 충돌을 조정해야 할 정부는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어 걱정이다.

어디서부터 이 위기를 수습해야 하는가? 청와대와 행정부의 일부 인사를 교체하기만 하면 될 것인가? 물론 인적 쇄신은 불가피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뒤늦게나마 지난 인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쇄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인적 쇄신이고 쇄신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대통령 지적대로 '강부자' '고소영'으로 희화화되었던 '도덕성' 문제만 처리하면 이 위기가 수습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나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분명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위기상황에 처해 있을수록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과 대화를 통해 지혜를 모으며 고통을 나누는 것 외에는 해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1997년의 IMF 상황을 극복했던 것도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타협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아일랜드 등 성공한 나라들이 외부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 등 위기상황에서 돌파구로 찾았던 것도 소통과 대화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던 필자 스스로도 최근의 촛불시위를 보며 각계각층 시민들의 자발성과 열정에 놀라고 있다. 이 자발성과 열정을 구시대적 잣대로 폄훼하지 말고 전면적인 소통 구조 정비와 자율성 확대를 통해 국가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따라서 인적 쇄신을 하더라도 무엇보다 국민을 섬기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자세와 능력이 중요하다. 농림부 장관에 누가 새로 임명되든 농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한 똑같을 수밖에 없으며, 물류대란이 예고되고 총파업 투표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노동장관이 노동계와 소통하고 대화하지 못하는 한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인사 쇄신의 핵심은 소리만 요란한 소통의 내실을 채울 수 있는가다. 이와 함께 노동정책과 관련해 임기응변의 기술적 대응이 아닌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일랜드의 87년 대타협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46년부터 수십 년간의 중앙단위 노사자율교섭이 토대가 되었다. 우리도 이제 정부 주도가 아닌 중앙단위 노사 자율대화가 시작되고 정착되도록 과감한 정책방향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이용득 전 한국노총위원장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8.06.1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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