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자유분방하게 속박당하다 - 키스 해링
팝아트 혹은 키치 미술에 관여하는 모든 예술가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에 만약 그들이 대단히 진지하게 이 분야에서 ‘놀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다음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팝아트 미술가 키스 해링의 작품 팝아트 혹은 키치 미술은 이 대중사회의 욕망 속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 대중의 욕망과 코드와 기호들을 마치 계류 낚시를 하듯이 날렵하게 낚아채어 자신의 작업으로 삼는데, 대체로적으로 그 소재가 곧장 주체의 표상으로 직선으로 이동하는 결과가 나온다. 그 작업들이 잔뜩 부풀려진 이 시대의 욕망을 풍자하든, 비난하든, 아니면 그것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증언하든, 아니면 어쨌거나 그것이 우리 시대를 그대로 밀착 인화한 초상화라고 하든, 아니면 정말로 짐짓 두어걸음 물러서면서 ‘웃자고 해본 거예요’ 하면서 슬쩍 물러서든,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들의 작업은 그 자신이 포착하고자 했던 대상이나 소재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미술관의 관습을 벗어나 작업한 키스 해링 팝‘아트’보다는 ‘팝’이 더 거세고, 키치 ‘미술’보다는 ‘키치’ 그 자체가 더 압도적인 현실에서 그 아트와 미술은 팝(대중사회)이나 키치라는 거대한 미궁으로 결국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 상황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그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코카콜라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마신다’고 말했던 팝아트의 비조 앤디 워홀이 스스로 증명했듯이 그들의 작업은 곧잘 그들이 대상으로 삼았던 세계의 일부가 되어 팝과 키치 시대의 상징이 된다. 애초부터 예술적 거리 두기를 포기했거나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혼전 양상에 대해 팝아트 혹은 키치 미술의 관여자들은 이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앤디 워홀이 그랬고, 그와 더불어 작업했던 장 미쉘 바스키아가 그랬으며, 1958년의 오늘, 5월 4일에 태어나 1990년 2월에 31살의 나이로 사망한 키스 해링이 또한 그랬다.
국내 모 의류회사가 출시한 바스키아 티셔츠 물론 이 뉴욕의 예술가들을 두고 ‘상업에 영혼을 팔았다’는 식으로 몰아부쳐서는 곤란하다. 이미 1930년대 후반에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가 살바도르 달리의 쉬르리얼리즘 작품의 터치를 바탕으로 만들었던 기이한 상품들이나 1960년대에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몬드리안의 회화에서 인용한 실크 드레스와 폴 고갱이나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그대로 옮긴 듯한 의상들로 큰 돈을 벌었던 예가 있다. 그는 1979년에 피카소의 그림을 드레스에 옮겼다. 최근에도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도나 카란이 폴 클레와 잭슨 폴락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옷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팝아트 혹은 키치 미술에 대해서 특별히 혐의점을 가져서는 곤란하겠지만, 그러나 역설적으로 피카소와 폴락이 디자이너들의 소재가 되었다고 해서 예술 작업 전체가 용해되지는 않지만 애초부터 그와 같은 거리 감각을 염두하지 않았던 팝아트 혹은 키치 미술과 현실의 질서는 너무나 손쉽게 쌍생아처럼 변해버린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중저가 브랜드 유니클로에서 출시한 키스 해링 티셔츠. 80년대 초에 뉴욕의 지하철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키스 해링의 운명도 그러했다. 그는 다운타운의 낡은 거리와 지하철의 벽과 이스트빌리지의 나이트 클럽에 그림을 그렸다. ‘가난하고 배가 고파서’ 아무 곳에나 가서 그린 것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제도 그 자체를 거부하면서 거리에 나가 자유롭게 그렸던 것이다. 해링은 친구들과 함께 뉴욕의 어느 교회 밑 지하실에 위치한 ‘클럽 57’에서 온갖 실험을 거침없이 감행했다. 요즘은 누구나 한번만 보면 잊을 수 없는,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일산의 어느 빌딩 신축 공사장에서 가림막을 설치하면서 거기에 그려넣기까지 한, 해링의 만화적인 인물들, 뛰어다니고 뒹굴고 재주넘는 양식화된 인물 그림을 해링은 1982년의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강렬한 색채와 단순한 이미지와 자유로운 표현이 압축된 그의 아이콘들은 지금 ‘해링의 세계화’라고 부를 만큼 온 사방에 널리 퍼져있다.
강렬한 색채와 단순한 이미지로 유명한 키스 해링의 아이콘 일이 그렇게 되면서 해링은, 단순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그려냈던 그 미술가는 이제 ‘코카콜라’처럼 전지구의 문화팬시 상품의 대표주자가 된 듯한 느낌마저 준다. 티셔츠라는 현대문명 속으로 들어간 그의 아이콘은, 워홀이나 바스키아는 물론 더러는 체 게바라의 어떤 상태처럼, 매우 자유롭게 ‘속박당한’ 느낌을 준다.
대중시대의 대중예술
팝아트 | 클라우스 호네프 지음 | 지향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독일의 유명한 미술전문 출판사 타센(TASCHEN)의 ‘Basic Art Series’ 가운데 팝아트 편이다. 195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1960년대에 미국에서 만개한 이 흥미로운 미술 행위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의 증거물이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라는 고전의 이분법을 폐기시킨 용맹한 작업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고급문화’가 경멸했던 산업과 시장과 욕망의 한복판에서 일을 했고, 마침내 그것과 거의 동일체가 되기도 했다. 미술 책은 역시 도판 보는 재미. 이 책이 잘 알려준다. /정윤수 정말 흥미진진한 현대미술 이야기
크레이지 아트 메이드인 코리아 | 임근준 지음 | 갤리온 현대미술 이야기 책이 곳곳에서 발간된다. ‘히트곡’ 하나 없이 30여 년을 버텼다는 어느 대중음악인도 썼고 ‘비키니를 입은......’이라는 제목을 단 어느 퍼포머의 책도 있고 그림을 읽어준다는 책도 있다. 그 책들도 훑어볼 만한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반이정과 임근준의 책이 정본이라면 정본이다. 임근준은 ‘익스트림 리서치 프로젝트’라는 그만의 방식으로,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그들의 작품보다 더 요란하고 기이하고 흥미롭게 이야기해준다. 진중권은 이 책을 ‘한국 현대미술의 복잡한 지형과 굴곡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꼼꼼한 지형도’라고 썼다 /정윤수 뉴욕의 어떤 풍경
워홀과 친구들 |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1972년부터 뉴욕에 거주해온 김광우는 현대미술의 참호가 되는 뉴욕 한복판에서 그 생생한 현장을 늘 지켜보면서, 예술가와 그의 관계들을 다양한 자료로 재구성하는 글을 써왔다. <폴록과 친구들>, <뒤샹과 친구들> 등이 그러한데 이 책 <워홀과 친구들>도 앤디 워홀이라는 항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많은 행성들, 이를테면 바스키아 같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잘 들려준다. 물론 팝아트에 대한 기본적인 시선을 잃지 않은 채 말이다. /정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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