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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이외수 그는?

by 진 란 2008. 1. 2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무슨 일론가 울적한 기분이어서 아침부터 소주를 마셨고,
그대로 밤까지 이어졌던 어느 주점에서였습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시인 강우식(姜禹植)선생이 웬 양아치처럼 생긴 사내와 인사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독주에 절여 비틀어 짠 오이장아찌의 몰골에 촌스럽게 잠바 위에
후줄근한 바바리를 걸치고 있어 언뜻 오십줄에 들어 보이는 사내는,
이외수(李外秀)였습니다.
그는 내가 어떤 소설에서 만들었던 사내처럼 철저하게 말라서 오히려 황홀한 육체의 소유자였습니다.
얼마나 투철하게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했기에 저토록 마를 수가 있는 것인가,
문득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무릇 정신을 담는 그릇이 육체일진대 그 육체의 모양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화두를 들고 침음(沈吟)하는 누더기 납자(衲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입니다.

'내 아버지의 별명은 미친 개였다'로 시작해서
나는 현기증을 느끼며 오래도록 나의 그림과 아버지의 훈장을 바라보고 있었다'로 끝나는
그의 처녀소설 [훈장]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관세음보살을 불렀던 것은 75년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전 해의 겨울에 썼던 어떤 소설로 해서 승적을 박탈당한 채 참혹한 꼬락서니로
13월의 동토(凍土)를 헤매이던 터였습니다. 내가 '발견'한 작가 이외수는 그러나 침묵했고,
나는 어머니를 만나게 됨으로써 마침내는 산을 내려오게 되었는데,
문득문득 궁금한 것은, 그리고 이외수였습니다. 언젠가는 '혼의 소설'을 내놓을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읽게 된 것이 [꿈꾸는 식물]이었는데,
그러나 나는 마지막 장을 넘기고나서 책을 던져버렸습니다. 철저한 악서(惡書)였습니다.
읽는 자로 하여금 깊은 슬픔과 허무에 빠지게 함으로써 문득 사세(辭世)하고 싶게 만들어버리는 소설을
쓴 작가는 그리하여 고독지옥(孤獨地獄)으로 가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작가는 지옥으로 가야 할 것이고, 독자는 재미가 하나도 없는 극락(極樂)에서
자기를 극락으로 보내 준 작가를 원망이나 해야 할 것입니다. 아아 이외수라고 부릅니다.
그는 삶 자체가 그대로 소설이며 문학입니다. 일체의 세속적인 상식이나 관습을 거부하며
홀로 우뚝해서 차라리 쓸쓸한 사내. 많은 사람들이 한번의 회의도 없이 또는 회의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타성에 젖어 흘러가는 일상의 강물을 그는 철저하게 거부하며 혼자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몸부림치는 한 마리의 고독한 물고기...
그 이상한 작가 이외수와 나는 몇 군데의 술집을 더 다닌 끝에 이윽고는 바람 부는
여인숙에 쪼그리고 앉아 밤을 밝혔고, 이튿날까지 밥 대신 술을 들이붓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나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 또한 전혀 일방적인 나의 생각일 뿐,
그 자신은 "웃기지마, 김형. 술이나 마셔"라고 말하며 예의 비틀어진 얼굴을 더욱 비틀어지게
만드는 웃음을 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날밤 우리는 세 번째의 여관에서야 겨우 방을 자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발 때문이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서 나는 우선 양말을 벗었는데

웬일인지 그는 그냥 구두를 신은 채였습니다.
잘 닦아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있는 그에게 내가 말했습니다.

" 아니, 왜 신을 안 벗고... "

그는 털푸덕 주저앉으며 이빨로 소주병을 벗겼습니다.

" 벗었어 "

" 어.....? "

가만히 보니 구두를 신은 게 아니라 그것은 때였습니다.
거짓말 안보태고 1센티 두께의 때가 양말에 쓸려 잘 닦은 구두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가 구두를 신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숙박계를 들고 들어오던 아주머니는
그 발을 보고 그만 "아이구머니나!"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고, 우리는 그곳을 쫓겨났던 것이며,
세 번째 집에서는 마침내 쥔아주머니가 떠다준 물에 그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발을 씻음으로써
겨우 쫓겨남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발만이 아니라 그는 세수도 양치도 하지 않는데, 이상한 것은 조금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그가 획득한 어떤 '경지'일 것이며,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일부러 그런 기행(奇行)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발을 씻는 따위의 일상적 행위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밥도 잘 안 먹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극소량의 밥을 어쩌다 겨우 먹을 뿐, 늘 술로 때웁니다.

졌다, 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와 나는 함께 끌어안고 일주일 동안을 서울과 그의 거처가 있는
춘천(春川)에서 뒹굴었는데, 딱 한 투가리의 보신탕을 먹었을 뿐입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일상의 행위를 잊은 지가 한 6년쯤 되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병신 같은 새끼들.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먹고살겠다고..."

그런가 하면 그는 무예(武藝)의 고수입니다. 중국집에서 나오는 대나무 젓가락을 들어 던지면,
5미터 전방의 철제 책상을 뚫고 지나갑니다. 내공(內攻) 또한 상당한 경지일 것으로 추측되며,
고스톱 따위의 투전을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선(先)을 잡을 수 있는 비법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따위는 모두 여담에 불과하며, 그의 본령은 역시 소설입니다.
혼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선열한 작가정신입니다.

아아, 다자이 오사무같은 사내. 이 시대 최후의 데까당.

이외수는 내게 끝없이 상처를 주는 참으로 이상한 사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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