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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2007 미당문학상 수상 문인수 시인

by 진 란 2007. 10. 17.
 
미당문학상을 받은 문인수 시인이 모처럼 홀가분한 맘으로 수성못 못둑 잔디밭에 앉아 시상을 굴리고 있다.
 미당문학상을 받은 문인수 시인이 모처럼 홀가분한 맘으로 수성못 못둑 잔디밭에 앉아 시상을 굴리고 있다.
 
 [인터뷰 사람사람]
미당문학상 수상 문인수 시인 

 
"좋은 詩語 떠오르면 '찰칵'하고 소리가 나…난 재미없으면 안써"
"마누라가 상금 3분의1을 내 아들뻘 되는 애인한테 줘버렸어…애인 이름도 나와 비슷해. 예수라고…"
"노력이 시인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질이 만들어…시인? 결코 착한 사람은 아니지"
 

△1945년 성주 초전 출생

△64년 대구고 졸업

△66년 동국대 국문과 중퇴

△85년 심상 신인상에 '능수버들' 외 4편이 당선돼 시단에 나옴

△86년 첫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심상사) 발간

△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수상

△91~98년 영남일보 기자

△2000년 김달진 문학상 △2003년 노상문학상

△2007년 중앙일보 미당문학상 수상

△시집은 늪이 늪에 젖듯이(1986),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1992),

   뿔(1992), 홰치는 산(1999), 동강의 높은 새(2000), 쉬!(2006) 등 6권

 

# 좀 헐렁한, 때론 유장하게…

 

눈매가 울렁거린다. 날아가는 기러기 같다.

눈초리 주위에 자잘한 주름이 꽁지처럼 달려있다. 동공은 촉촉하게 젖어 있고 그래서 하염없고 그윽하다. 가까이 있어도 멀어보인다.

서울에 있는 98세의 노모(조묵단)를 만나고 내려오던 기찻간에서 그는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뜸들일 필요없이 쇠뿔도 단김에 빼버리지 뭐." 그의 기질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동대구역에 내리자마자 약속 장소까지 걸어왔다.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진갈색톤 점퍼와 바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앞트임 라운드 티셔츠를 받쳐입었다.

가방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쪽으로 비켜맸다. 얼굴을 가린다면 영판 20대다.

올해 예순 셋. 운수대통인 듯 그가 국내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미당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행인들은 그가 현재 우리 시단에서 가장 잘나가는 '문인수 시인'이란 걸 전혀 모른다. 가수 '비'가 걸어갔다면 야단났겠지.

 

2년전 술을 끊었다. 40년 연조의 흡연은 너무 외로울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술기운을 잃으니 노래방에서 눈감고 18번 부를 기분이 영 아니란다.

예전엔 술 힘을 빌려 '비내리는 고모령' '울고넘는 박달재', 조금 덜 취하면 김정호의 '하얀나비'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을 잘 주절거렸는데.

그래도 이날만은 기자를 배려해 일부러 술자리를 깐다.

"동동주보다는 불로 막걸리로 하지. 난 그게 좋더라."

말끝마다 웃음이 파도처럼 입술가로 밀려온다.

 

갑자기 그가 말머리를 돌린다.

"큰일났어."

"뭐가요?"

"마누라가 상금의 3분의 1을 내 아들뻘 되는 애인한테 줘버렸어."

"예?"

"애인 이름도 나와 비슷해. 예수라고."

함께 깔깔 웃었다. 자못 시적인 위트였다.

아내는 남편이 큰 상을 받을 거란 믿음에 한달 넘게 기도를 했다.

기도가 효험이 있었든지 남편이 큰 상을 받는다.

지난 8월27일 오후 7시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자택에서 아내와 함께 TV 보다가 당선 소식을 접한다.

그는 '귀를 의심한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실감한다. 아내는 좋아서 아이처럼 팔짝 뛰었다.

며칠뒤 그는 감사헌금으로 1천만원을 뺏긴다.

한 달 이상 전국 각처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전화를 이정록 시인한테 받았다.

술자리에 있던 이 시인이 대뜸 "똑딱선 기적소리~"로 시작되는 '만리포 사랑'을 불러줬다.

마흔셋이란 늦깎이로 등단해 지방에 앉아 그처럼 큰 상 받은 걸 '기적(奇蹟)'으로 빗댄 걸 그도 안다.

"상 받으려고 시 쓰는 시인은 없을거야. 난 이제 좀 편하게 시를 대할 수 있을 것 같아."

 

# 수상작 '식당의자'의 현장에서

 

"수성못으로 가지. 이번 수상작도 거기서 태어났으니깐."

"그러죠."

사진 찍을 곳을 못찾아 애를 태우자 그가 수성못을 제안했다.

이번 문학상 수상작 '식당 의자' 배경은 수성못 동편 골목 안 삼초 삼겹살집 수성유원지점.

지난 해 여름 비오는 날, 지인들과 삼겹살을 먹고 나오다가 근처 골목에서 비맞고 있는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서 시상을 얻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중략)

이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오후 4시 삼초식당 앞. 행인도 거의 없다. 의자만 야외 데크에 오종종 모여있다.

꼭 백수들이 명상하는 것 같다.

그가 동행한 사진기자에게 내년에 나올 제7시집의 표지사진을 멋있게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시집 제목을 식당의자로 가려고 하니 주위에서 너무 촌스럽다고 말린단다).

거기서 숨겨뒀던 객기찬란했던 지난 시절 술판 에피소드 한 개를 '북어 대가리'처럼 꺼낸다.

서정춘·송상욱 시인과 함께 순천 문학행사 때 야단법석을 연출한다.

젓가락 장단 들고 목이 터져라 불러 화제가 됐다. 아쉬움이 남았다.

 

한달뒤 서울 거사를 모의한다.

인사동에서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술집을 4군데 옮겨가며 목숨걸고 퍼마셨다.

그것도 양에 안 차 한번 더 그 짓을 했다. 이를 안 지인들이 그의 신명을 '전라도산'으로 분류해줬다.

"객기와 일탈, 방랑, 예전에는 낭만의 원천이었지만 이젠 비난의 대상 아닌가."

아직 뭔가 확 저지르고 싶은 구석이 있는 듯 했다.

수성못에서 불어온 바람 한 자락이 그의 허연 머릿결을 핥고 지나간다.

상은 받았지만 표정은 고독해 보인다.

'연극이 끝나고 난뒤'란 노래 첫소절을 떠올리니 그가 웃으며 "그래, 나도 실은 그런 기분이야"라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세상에 제일 강적은 외롬과 고독이죠?"

"글쎄, 그놈을 애써 이기려는 자들이 있는데 그럴 수도 없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냥 친구라 생각하면 편하지."

 

# 달북·초전·묵단…그의 아호는 3개다

 

좋은 시인은 맞는 시어를 안다. 아니면 가차없이 버린다.

아마추어는 대충 끼워 사용하지만.

그는 천신만고 끝에 딱 맞는 말을 찾으면 '찰칵'하고 소리가 난다고 했다.

그런 시어가 아니면 뭔가 '이물감'이 느껴진단다.

대표시 속 빛나는 구절에 밑줄 그어본다.

 

'새끼 염소~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니다'(시 '각축' 중)

 

'~피아노는 컴컴한 벽돌조 양옥 같다~피아노는 폭설 창고일까 기쁨이거나 슬픔, 저 목화 폭발 환한 야음이다~'(시 '낡은 피아노의 봄밤' 중)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시 '쉬' 중)

 

시인은 '위험한 동물' 아닌가.

여기도 저기도 못 서는, 그래서 늘 서성거리지만. 그는 "시인은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 원로시인이 문학 강연에서 한 말을 다시 인용한다. '시인은 건달이다'. 시인은 타고나는가?

그는 "노력이 시인을 만드는 게 아니고 기질이 만든다"고 했다.

그의 아호는 3개다. 대표시 '달북'을 사랑하는 팬들이 '달북 선생'이라 불러준다.

고향 성주군 초전면에서도 하나를 취했다. 동네 지명의 한자를 좀 바꿔 '초전(艸傳)'이라 했다.

마지막 게 찡하다. 노모의 성은 버리고 이름인 '묵단(默丹)'을 가지겠단다.

묵단, 붉은 침묵이란 뜻이 뭘까? 막걸리 기운이 그의 눈가로 몰려와 '묵단(노을)'처럼 묻어난다.

 

# 그의 일상은 늘 빈둥댐이다

 

요즘엔 수성구 만촌동 집에서 종일 멍하게 보낼 때가 많다.

아내와 장모, 자식까지 모두 나가고 없는 대낮엔 지하 서재에서 초고 시를 갖고와 퇴고하다가

멍하니 구름 흘러가는 걸 보고, 너무 무료하면 근처 남부정류장으로 가서 아무 버스나 타고 초행인 시골길을 무작정 걷는다.

'시상 낚기'의 일환이다. 시골 장터 국밥집 구석에 붙은 거미줄과 송판 의자의 옹이도 그에겐 산삼 이상으로 귀하다.

갈수록 반듯한 공간보다 이지러진 골방·구석자리가 좋단다.

인터뷰 직후 한 식당에 갔을 때도 그는 등을 기댈만한 구석자리로 옮겼다.

 

"시가 안 될 땐 미치죠?"

"내 시작(詩作) 방식을 묻는 질문인데, 이 사회를 움직이는 양대 가치는 권력과 금력 아닌가,

시는 거기에 끼지 못하고 한참 떨어진 곳에 있지. 난 재미 없으면 시 안써.

시인은 언제라도 능수능란하게 시를 쓸 수 있어야지.

그러나 대상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면, 가령 시보다 돈이나 자리 등이 좋아보이면 오던 시도 오지 않지,

안 오면 못쓰고, 그럼 쓸 때까지 기다려야지. 평생 기다릴 수도 있고.

누굴 위해 적겠어, 남? 난 아니라고 봐.

천리타향 만리타국 가서 별의 별 생각을 해도 결국 그건 자기 연민과 비애를 바라보는 짓 아닌가."

 

그의 시는 초기 모성·고향회귀에서 최근에는 삶의 비애와 연민의 기슭을 훑고 있다.

마지막 시적 주제는 '삶과 죽음'에 가 닿을 거란다.

그가 기자에게 보내준 문학적 자전 '저 흰 구름, 잘못 든 길'의 마지막 구절에 그 '시관(詩觀)'이 반짝거린다.

'나는 내 깜냥, 내 시의 결핍을 잘 안다.

나는 아마도 끝내 그것을 채우거나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한 시를 쓴다. 시 쓰는 일, 지금은 아직 이 짓만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그뿐이다.'

 

 

 달빛몽돌 김양헌시인과 달북 문인수시인

 

 


◇미당문학상 수상작

식당의자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07.10.12 /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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