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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문병란]직녀에게

by 진 란 2007. 9. 6.

 

 

 

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쳐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문병란 시집 <땅의 연가>1981.




 

[재생시간 : 4분 27초]

 

 


직녀에게

 

(문병란 시/박문옥 작곡/백창우 편곡/김원중 노래)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문병란 시집 <땅의 연가>



6.15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지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분단의 장벽은 두텁다. 그날의 감격만으로 오늘 삐걱거리는 감정을 돌려 놓지 못한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름이 맺히면 속시원하게 터지기라도 하련만 재깍거리는 시계바늘은 더디기만 하다. 우리 스스로 준비하지 못한 탓도 크다. 그날 이후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 만족하기에는 이르다. 이토록 아픔이 길어질 줄 몰랐다. 녹음이 짙푸른 이 6월에 뒤를 돌아보면 회한이 더 짙다. 아침 밥상에 희망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테잎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직녀에게>가 흘러나왔다. 그렇지, 이 노래가 있었지. 이 노래, 꿈길을 걸으면서 아마 몇 번은 불렀을 노래. 분단의 멍에를 짊어진 조국의 아들딸이라면 한번쯤은 듣거나 불렀을 노래. 달팽이관을 거쳐 노래는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문병란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직녀에게>는 '통일을 염원한 서정시'다. 70년대 중반에 발표한 작품이다. 80년대 초 펴낸 <땅의 연가>란 시집에도 들어 있다. 시인 자신은 아직도 <직녀에게>를 매우 아낀다는 소문이 있다.

그 분의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배경에는 5월 광주와 무관하지 않다. 광주민중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이 5월의 전사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할 무렵, 이 노래를 싹틔운 윤한봉씨도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검거망을 피해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광주의 5월 정신은 조국 통일로 계승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던 그는 작곡가 김형성씨에게 <직녀에게> 시를 주며 노래를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노래가 해외판 <직녀에게>다. 이 노래는 미주와 유럽 등지에 알려지면서 통일을 염원하는 해외동포들의 애창곡이 됐다.

그러나 지금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직녀에게>는 해외에서 부르던 처음의 노래와는 다르다. 1984년 문병란 시인이 베를린에 갔다가 이 노래의 악보와 육성 노래테잎을 얻게 되었다. 김형성씨의 노래를 들은 문 시인은 생각을 달리했다. 가곡풍인데다 국내 정서에 맞지 않다는 느낌을 가졌다. <직녀에게> 노래가 다시 만들어진 사연이다. 이렇게 하여 작곡가이자 통기타 노래꾼인 박문옥이 같은 가사에 새로 곡을 붙였고, 대학생 가수 김원중이 음반으로 취입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민중가수 김원중(48). 나는 그의 삶과 노래를 사랑한다. 그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다. 격랑의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서 '노래하는 시인'의 모습을 본다. 그의 노래는 그의 인생이다. 가창력과 기교 없이도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민중 앞에 겸손한 사람, 언제나 평화와 통일을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 그는 노래하는 전사다.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와 <모래시계>를 무지 좋아한다. 정말 좋은 노래다.

<직녀에게>를 따라 부르며 눈을 감았다.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그리는 시대의 감정이 느껴진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직녀에게>를 부르며 맺힌 가슴을 쓸어내렸던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민중가수 김원중에게 시로 말했다. "어느 세상이든 진정한 노래는 있었다. 노래는 아픈데서 태어나고 아픈 곳에서 꽃처럼 피어난다"고. 아픈데서 꽃처럼 피어나는 노래가 있다면 아마 <직녀에게> 같은 노래일 것이다.

분단이 너무 길다. 그 길이만큼 아픔의 시간도 길다.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몇 번을 건너가 만나야 분단의 시계가 멈출 것인가. 이럴 순 없다. 말라붙은 가슴, 눈물로 녹여서라도 겨레의 손으로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동강난 반도 그 등허리를 잇고, 반세기 넘게 박혀 있는 통한의 가시를 모두 빼내는 그날. 남누리 북누리 통일의 노둣돌을 놓을 기쁨의 그날. 그날이 오면 이 노래는 분단의 마침표를 찍는 역사의 유물로 남겨 두어야 하리. /굴렁쇠 http://kr.blog.yahoo.com/eumgisub/1736

 

▣ 작가 소개

- 문병란(文炳蘭 1935- ) 시인. 전남 화순 출생. 조선대 국문과 졸업. 1963년 <현대문학>에 “가로수”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9년 전남문학상, 1985년 요산(樂山)문학상을 수상. ‘원탁시(圓卓詩)’ 동인으로 활동. 그의 시 세계는 생활 감정의 승화와 서정을 노래하면서 의식의 내면을 탐구하는 면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면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집으로는 <문병란 시집>(1971), <정당성>(1973), <죽순밭에서>(1977), <땅의 연가>(1981), <무등산>(1986) 등이 있다.

 

 


조관우
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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