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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고흐의 그림들

by 진 란 2007. 7. 9.

고흐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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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가셰의 초상

 

1890년 6월 오베르에서 그림.

68 x 57cm.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고흐는 자신을 치료한 의사인 가셰박사가 자신보다 더 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여 위와 같은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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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집..

 

 

고흐의 노란집은 고흐가 파리생활을 접고 프랑스 아를 지역으로 이주한후 그린 그림입니다.
여러분은 고흐가 평생 동생 테오에게 원조를 받아 생활한걸 알고 계시겠죠?
근데 테오는 고흐뿐 아니라 고갱도 원조하고 있었죠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으론 이해하기 힘든데, 외국에선 예술가를 후원하는것이

그리 낯설지 않은 일이라 하네여
게다가 테오는 화구상을 했었다고 하니, 더 이해할만 합니다.
고흐야, 평생 예술을 업으로 삼았지만 부자가 아닌 동생이 고갱까지 원조하니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그래서 원래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꿈도 있고해서 벗이던 고갱을

아를의 노란집으로 불러들입니다.
흔히 고흐가 자주쓰는 노란색은 그의 정신병력과 연관시켜 설명하기도 하는데
아를시기의 초기에 노란색은 미래에 대한 고흐의 희망을 나타내주는

밝은 의미의 노랑이라 이해할수 있습니다.
고흐의 정신병이 시작된것은, 고갱과의 권총사건 이후부터 거든여,,,
색채로 넘어가서
캔버스의 상단은 강렬한 블루가 하단은 노란집을 중심으로,

희망의 노랑이 전반적으로 깔려있어, 인상파적 특징을 보여주고

군데군데 쓰인 주황은 그런 생동감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준다고 생각됩니다.

 

 

고흐의 탕기 영감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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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7~1888년 작. 92x 75cm.

 

캔버스 위에 유채. 파리 로댕미술관.

 

 

고흐의 삼나무와 두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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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와 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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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올리브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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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de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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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를 감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

1889. 01
아를
오일 캔버스

 

 

1888년 12월 23일 일요일밤 11시 반, 아를의 창녀촌 1번 집의 라셀은 빈센트에게 불려나가

그로부터 무엇을 잘 맡아달라는 말을 들었다. 피범벅의 붕대를 머리에 두른 빈센트는 곧 사라졌다.

그녀가 신문지를 펼치자 잘린귀가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실신했다.

다음날 경찰이 빈센트가 사는 노란집에 가 보니 그는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빈센트는 곧 병원에 수용되었으나 귀를 다시 붙일 수는 없었다.
..............
흔히 소설류의 전기에는 고갱의 핀잔을 들은 빈센트가 수치심에 못이겨 집으로 달려와

바로 귀를 잘랐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랬는지, 아니면 술에 취해 밤늦게 돌아와서 그랬는지

그 자신도, 다른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
폴라책에 나오는 에르스트 와르딩게르의 <잘려진 귀의 담시>에서는

고갱이 빈센트의 자화상을 보고 '이것이 귀란 말인가.

이러고도 자네는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 있나', ' 자화상이라고? 귀가 전혀 달라' 라고 비난한 것을

그 원인으로 들고 있다.
...............
빈센트는 다시 그림을 그렸다. 거울을 들여다 보며 그린 <파이프를 문 귀를 자른 초상>은

실제와는 거꾸로 오른쪽 귀를 붕대로 동여맨 거친 모습이었다.

그 표정은 자신이 사로잡힌 광기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연민이 아닌 자기분석의 그것이었다.
-내친구 빈센트中-

- 빈센트는 자신의 잘린귀를 그림에서 보여주지 않고 있다.

실제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쪽귀를 잘랐으나, 붕대를 감고 있는 그의 초상은

실제로 다치지 않은 오른쪽 귀에 붕대를 감고 그린것이다.
또한 귀를 자른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가장 많이 대두되는 추측이 고갱과의 마찰때문이라고 한다.

그 마찰 또한 위에서 말하고 있는 초상화 속의 귀에 대한 문제냐..

아니면 다른 문제로 고갱이 떠났기 때문이냐..에 대한 두가지 문제로 나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환청으로 인해 귀를 잘랐다고 알고 있다.

이 모든것이 추측일 뿐이지만, 그가 간질로 인한 발작을 일으킬때 환청을 들은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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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있는 보리밭*

 

쌩 레미에서의 생활에 싫증을 낸 고흐는 동생의 추천으로 오베르에 오게 된다.


하지만 오베르에 오게 된 이후부터 그의 외로움은 더 커졌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커다.

그러나 이 시기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낸 시기 중의 하나이다.
 
결과적인 해석일지는 모르나 이 시기의 그림은 그의 불행한 종말을 암시라도
하는 듯 짙은 어둠의 이미지가 강하다. 
오베르의 교회에 나타나는 무거운 하늘의 이미지가 그렇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하늘이 또한 그러하다.
특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그 역동적인 이미지만큼이나 불길한 이미지도 크게 
느껴진다. 
바람에 쓰러질 듯 흔들리는 밀밭과 파도 치듯 구부러진 길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그의 심리상태를 보는 듯하며, 금방 폭풍우가 몰아칠 듯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불길함이 다가온다.
그 속을 날고 있는 까마귀의 존재가 이러한 느낌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이 작품을 남기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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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편백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
1989년 유화 73.7x92.1cm 뉴욕 현대 미술관

 

<실편백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 > 에선 모든 것이 다 움직이는 느낌이 듭니다
빠르고도 짧은 붓질 자국이 음악에서처럼 리듬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리듬감은 매우 숨가쁘고 강렬합니다.
그리고 회오리 바람처럼 모든 것을 그 안에 빨아들이는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호흡이 무척 빠르면서 거센 교향곡의 절정이 들이는 듯 합니다.

그림은 밤의 풍경입니다
오른쪽에 달이 있고 마을은 청색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별은 창백한 빛으로 반짝입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온통 죽음의 그림자를 봅니다
빈센트는 어느 누구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법을 획득했습니다
그림천제에 역동감과 리듬이 넘치고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발췌: 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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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유화 81x65.5cm 오테를로, 크륄러 뮐러 미술관




짙은 청색의 밤 하는 아래 노락색 불이 환하게 켜진 밤의 카페는

부드러운 밤 기운에 포근하게 감싸인 느낌이 듭니다

이 그림을 보면 여러분은 빈센트가 무슨 색갈을 좋아하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바로 청색과 노란색입니다
"아, 노란색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빈센트는 감탄 합니다

빈센트에게 노란색은 사랑의 빛이며 청색은 무한함을 의미 하며 별은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자신이 느낀대로 색에 하나의 이미를 부여한 것이지요

빈센트의 노란색이 이 그림에서는 청색하늘과 대비되어 정말 매력적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그림의 있는 노란색은 다 똑같지 않습니다.,

카페안은 주황색에 가까운 짙은 노랑이고
하늘의 별빛은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창백한 노랑입니다
어둠 속에 자리잡은 오른쪽 집들의 창에서 새어 나오는 노랑은 좀더 어둡습니다
포장된길도 빛을 받아 노랑과 주황 파랑이 색색이 섞여 있네요

각기 다른 이 노란 빛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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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1888년 유화 72.5x92cm 개인소장




그림에 보이는 강은 아를르를 흐르는 큰 강인 론 강입니다.
강과 하늘과 강가는 언뜻 보면 어둠 속에서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하늘은 <밤의 카페 테라스> (아래그림)보다 더 어둡습니다.
빛이 많지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림에서 두껍게 덧바른

물감의 층과 짧은 붓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신 하늘의 별은 더욱 반짝거립니다.

강물에 가스등 불빛이 반사되어 노랗게 어른거리네요.
이 그림의 색깔에 대해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드넓은 청록색 하늘에 큰 곰자리가 초록빛으로 때론 장밋빛으로 반짝인다.

어렴풋하게 빛나는 이 창백한 빛깔은 가스등에서 나오는 거친 노란빛과 대조를 이룬다."

그림 오른쪽으로 마치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듯한 두 남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강가를 산책하는 연인의 모습이네요 이들도 어둠에 묻혀 푸른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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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핀 복숭아 나무>
1888년 3월 유화 73x59.5㎝. 오테를로 크륄러 뮐러 미술관

 

아를르에 봄이 왔습니다.

<꽃 핀 복숭아나무> 는 남프랑스의 맑은 봄기운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림입니다. 
아직 봄이라 햇빛은 그다지 강하지 않습니다. 
나무의 그림자가 푸르스름한 엷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 그

림은 무척 밝고 화려합니다.

분홍빛 복숭아꽃은 가뿐하게 흰 구름을 떠받들고있고 땅에도 분

홍빛이 얼비쳐서 마치 땅 위에도 꽃이 핀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 땅에 꽃잎이 떨어져있었거나 고흐가 그림 전체의 색채를 통

일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림은 분홍 하얀 파랑 엷은 갈색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입니다.


고흐는 "아마 내가 그린 풍경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풍경화가 될것 같다" 고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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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에 휘말린 하늘과 밭》
            -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

'건강을 위하여 뜰에서 제작을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기도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바다와 같은 넓은 언덕을 향하여 펼쳐져 가는
보리밭의 그림에 지금 열중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3점의 대작의 하나로,
이것도 어두운 폭풍 속에 있는 보리밭이다.
'저는 완전히 이 보리밭의 대작에 소모당하고 있습니다'
라고 그는 어머니에게 써 보내고 있었다.
그가 자살을 시도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이 작품은 색채 면에서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 만큼
불길해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공백감은 불길 이상의 종언의
예고와도 같은 작품이다.


1890년 7월 : 오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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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네 송이 해바라기
            - Vase with Fourteen Sunflowers


1987년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629만 2500달러라는 거액에 경매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37년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발작을 일으킨 뒤 쓴 한 편지에서 고흐는
1888년 여름에 몰두했던 '진노랑의 색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거의 노란색으로만 그린 해바라기 연작 다섯 점이 바로
그 색조를 강력히 보여준다.


1888년 8월 : 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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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문 해골》
            - Skull with Burning Cigarette

해부학 교실에서 사용하는 해골을 토대로 제작한
이 그림은 당시 심하게 악화되었던 고흐의 건강을 연상시킨다.
소문에 의하면 앤트워프 시절 고흐는 매독과 충치, 영양부족
으로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이 그림은 당시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도전적인 푸념이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름은 그가 앤트워프 시절에 제작한
가장 자신있는 그림일 것이다.


1885년 겨울 : 앤트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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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먹는 사람들
                - Potato Eaters, The

"내가 강조하고 싶은것은 등잔불 밑에서 감자를 먹는
이 사람들이 접시에 가져가는 바로 그 손으로 감자를
수확했다는 사실이다. 이 그림은 육체노동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음식을 벌었는가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고흐의 그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 그름은 머리와 손, 구도에 대한 많은 습작을 통해
얻어진것이다. 그는 이 작업에 완전히 몰두했다.
"내가 이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느낌은 꿈에서
그대로 되살릴 수 없을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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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 Sorrow

고흐는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 슬픔'은 작은 시작이다."
슬픔에 잠긴 여성에 대한 깊고 패배적이었다.
두 개의 판본 중 하나인 이 그림은 첫번째 그림에서 표현한
인상을 종이에 '수정'하여 표현한 것이다.
풀을 첨가했고 미슐레의 글에서 인용한 문장도 넣었다.
"버림받아 고독한 여성이 대체 웬 말인가?"
이 여인은 크리스틴이다.
그녀의 비참함이 손에 잡힐 듯하다.

 

1882년 4월 : 헤이그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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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들의 보행》
                - Prisoners Exercising

이 작품의 원화는 구스타프드레가 지은 '런던'이란 책 속에서
판화로 실려있는 삽화였다.
데생이나 에칭, 석판화가 보여주는 흑과 백의 기묘한 조화를
그는 자유로운 색채를 사용해서 이루려고 했었다.
회색과 푸른색이 기조를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가로 세로로 사용되고 있는 직선에 의해서
순수한 선의 회화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폐쇠된 공간에 있어서의 운동, 구속된 자유 속에서도
무엇인가 하지 않을수 없는 인간의 모습
이것은 바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감금당한
고흐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1890년 2월 : 생 레미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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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 lrises

이 유명한 그림은 아를 주민들의 비난을 피해
요양원에 와서 안정을 얻게 된 고흐의 푸근한 마음을 표현한다.
이 그림은 이곳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정원에서 제작하였다.

금잔화가 붓꽃의 행진을 바라보고 있는듯한
이 그림은 마치 기념식에 참가한 군중들 같은
생동감을 준다.
색채는 본능적으로, 통제되어 있다.
고흐의 격렬한 감정은 정교하게 관찰한 실제 꽃의
느낌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1889년 3월 : 생 레미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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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달밤》
                  - starry night

 

생 레미에 옮겨온 고흐의 화면은 아를 시대에 비하여
한층 침참된 색채를 쓰고, 필치는 보다 다이나믹하게 되고
동적인 곡선의 자유로운 발전에 의한
일종의 묵시록적인 환상을 만들고 있다.
고흐가 몽상적이거나 환상적이란 것은 아를 시대까지의
작품에서는 그 표면적인 흔적을 찾아볼수 없었다.
그는 항상 현실에 밀착한 듯 했다.
그러나, 생 레미에서의 그의 작업은 본질적인 서정을 보인다.
그는 자연이나 물체와 마음으로 통하는 일종의
주술사 이기도 하며, 그 기술적인 제어력의 완성과 마음의
성취가 마침내 생 레미 시대에 있어 몽상가로서의 고흐를
낳게 한다. 별들이 소용돌이를 이루고, 이 모든것이
구심적인 운동과 통일된 움직임을 나타내는
장대한 밤의 시는 자연과 사물의 내면에 와 닿는것에 의한
서정성과 신비성을 나타내고 있다.

 

1889년 6월 : 생 레미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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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1853년 3월 30일

빈센트는 가난한 네덜란드 시골의 친절하고도

온순한 개신교 목사 테오도루스 반 고흐 Theodorus van Gogh (1822~85)와

외향적인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카르벤투스 Anna ornelia van Gogh-Carventus (1819~1906)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헤이그 시절은 그의 삶에서

가장 밝은 시절이었다.

 

음악 : Pavane - Tol & 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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