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들고 가 보고 싶은 곳, 첫 번째: 남해 금산. 혼자 여행 계획을 세워보고 있다. 좀 멀긴 하지만, 시간 내서 꼭 가야겠다.
아래는 이성복의 시 <남해 금산> 전문. 덤으로 같은 시인의 시 중에 (내가 유별나게) 좋아하는 시 하나를 더 덧붙인다: <새들은 이곳에 집을 짓지 않는다>. 쓸쓸하다 못해 애처롭고, 애처롭다 못해 처연한 시다.
시 속의 이미지들: ‘수의(壽衣)처럼 바람에 날리는 기저귀’와 ‘길바닥 돌 틈의 목이 마른 풀’과 ‘길 위를 휩쓰는 먼지바람’과 ‘처진 어깨로 돌아오는 지친 사내들’과, 그리고 ‘빛이 안 드는 골방에서 손금을 보는 창녀들’과…. 그곳의 ‘물 밑 송사리떼는 말이 없었고’, ‘새들은 그곳에 집을 짓지 않았다’.
*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새들은 이곳에 집을 짓지 않는다 / 이성복
아무도 믿지 않는 허술한 기다림의 세월
순간순간 죄는 색깔을 바꾸었지만
우리는 알아채지 못했다
아무도 믿지 않는 허술한 기다림의 세월
아파트의 기저귀가 壽衣처럼 바람에 날릴 때
때로 우리 머릿속에 흔들리기도 하던
그네,
새들은 이곳에 집을 짓지 않는다
아파트의 기저귀가 壽衣처럼 바람에 날릴 때
길바닥 돌 틈의 풀은 목이 마르고
풀은 草綠의 고향으로 손 흔들며
가고
먼지바람이 길 위를 휩쓸었다 풀은 몹시 목이 마르고
먼지바람이 길 위를 휩쓸었다 황황히,
가슴 조이며 아이들은 도시로 가고
지친 사내들은 처진 어깨로 돌아오고
지금 빛이 안
드는 골방에서 창녀들은 손금을 볼지 모른다
아무도 믿지 않는 허술한 기다림의 세월
물 밑 송사리떼는 말이 없고,
새들은 이곳에 집을 짓지 않는다
'♬있는風景'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하태도:푸른 절경 속의 해녀섬 (0) | 2007.07.08 |
---|---|
[스크랩] 국내최대 생태계보전지역 왕피천에 가다 (0) | 2007.07.08 |
[스크랩] 남루한 골목을 걷다 (0) | 2007.07.08 |
[스크랩] 뛰는 소를 찍다 (0) | 2007.07.08 |
[스크랩] 사진은 시를 떠올리게 한다 (0) | 2007.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