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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서울신문 당선취소

by 진 란 2011. 4. 1.

 

[서울신문 2011년 신춘문예 당선]

 

 

 

 

새장 

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당선소감]

먼 곳의 숲을 쓸고 온 바람이 나무의 귓전에서 쉬고 있습니다. 식물들의 언어란 저렇듯 손가락을 귀에 후비듯 만들어지는지 나무줄기 끝 빈 고막이 키득거림으로 가득 차는 것을 봅니다.

물고기의 씨앗을 품은 구름이었을까요?

낮달을 돌아 우회하는 구름이었을까요?

언덕에 사다리를 걸쳐 놓고 몸을 접는 호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 군요.

시는 왜 굳이 나에게 찾아와 단추가 되려 했는지 의문이 드는 날들이었습니다. 불안한 꿈은 늘 잠을 앞질러 가곤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가끔 옥타비오 파스의 단추를 읽었습니다. 그때 시는 제 옆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뒤집힌 풍뎅이를 집어 바로 놓듯, 그동안 알고 지내던 시를 뒤집어 놓고 싶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웬 공부가 그리 바쁘냐는 핀잔도 간혹 있었습니다. 등으로 날아다니는 것들, 그러나 그 등 때문에 버둥거리고 있다는 것을 보는 마음을 간신히 찾았습니다. 참 고맙고 고마운 늦은 발견입니다.

“생일 축하해.”

생일 날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심사를 보신 백무산 선생님과 안도현 선생님의 축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과 함께 쓴 알약 같은 긴 시간들이 흰 눈발로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듯 당분간은 아프지 않은 시를 만날 것 같았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선생님들 앞에 큰절 올립니다. 그리고 내 심장과 같은 남편과 두 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을 다 말할 수 없지만 시의 첫 걸음마를 가르쳐주신 박제천 선생님. 우문(愚問)을 들고 가면 늘 현답(賢答)으로 지도해 주신 박해람 선생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경운서당 학우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약력

-1959년 전북 장수 출생

-부산여자대학 수료

 

 

 

[심사평]

응모작들이 기성 시단의 어떤 흐름에 깊이 감염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이 너무 커서 완전한 독해가 어려운 시들이 적지 않았고, 유행하는 소재를 검증 없이 끌어다 쓰는 안이한 시도 여럿 있었다. 감동을 생산하려는 의지보다 시를 잘 만들려는 욕망이 비대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시의 리얼리티에 대한 배려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신성희씨의 ‘신발들이 날아간다’는 가장 읽을 만한 시였다. ‘벌판에 버려진 신발이 하나 있다/그 외발을 벌판의 창문이라고 혼자서 불러보았다’는 첫머리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란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이 시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다만 지나치게 궤도를 이탈한 몇몇 불안한 표현에 꼬투리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아깝다. 머지않아 좋은 시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강정애씨는 시적 대상을 객관화하면서도 충분히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시인이다. 당선작 ‘새장’은 생각과 언어의 결이 살아 있는 시다. 자칫하면 상투성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 나무나 새와 같은 소재를 붙잡고 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무엇보다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대상을 자기 안으로 바짝 잡아당겨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방증이다. 앞으로 서정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시인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시 부문 본심 심사위원 백무산·안도현

예심 심시위원 유성호·손택수

 

강가람(=강정애) 시인- -201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알림] 2011 신춘문예 詩 당선 취소합니다

 

서울신문은 2011 신춘문예 시 부문 강정애(59)씨의 ‘새장’ 당선을 취소합니다. 2009년 제8회 지용백일장 고등학생 부문 차상(次上) 수상작인 이슬(19)씨의 ‘우산’과 상당 부분 흡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강씨는 “2008년 가을쯤 ‘새장’을 썼으며 당시 함께 시 수업을 받던 이씨에게 이 습작시를 보여주고 합평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씨는 “강씨와 함께 시 수업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사람에게 시를 가르쳤던 박해람 시인은 “강씨와 이씨가 여러 차례 함께 시 공부를 했으며 강씨가 ‘새장’을 먼저 쓴 것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내가 쓴 ‘우산’ 초고를 박 시인이 손질해 줬고, 이 중 일부 표현을 박 시인이 강씨에게 줬다.”고 재반박했고, 박 시인은 이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서울신문과 시 부문 심사를 맡은 4명의 위원들은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상 강씨가 표절했다는 혐의는 없는 것으로 자체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데다 비슷한 작품이 이미 이씨의 이름으로 발표된 만큼 미발표작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신문 신춘문예 규정에 어긋난다는 판단 아래 당선 취소를 결정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 드리며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춘문예 응모작을 더욱 면밀히 검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울신문 : 2011-03-26  19면

 

 

 

 

 

 

 


두 시를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이슬학생의 작품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라도 찾게 되면 그 때 보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