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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박영희]대통령이 죽었다

by 진 란 2009. 8. 18.

 

 

시인이자 르포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벌여온 박영희가 청소년을 위한 소설 한 편을 출간한다. 실천문학사의 담쟁이 문고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작가 자신, 어린 시절 공장과 신문보급소를 전전하며 고학했던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낸 이 소설은 1970년대 엄혹했던 유신시대 한가운데를 신문보급소 배달원 소년들의 눈으로 바라본다.

 

 


신문배달부의 눈으로 본 유신시대

가난으로 인해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로 들어가게 된 ‘신설동 보급소’에서 세상을 읽는 법과 사람살이의 방식에 대해 배워 나간다. 특히 주인공 수형에게 있어 폐결핵을 앓고 있는 신설동 보급소의 수재, 영환 형은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창이자 거울이다. 수업 교재는 자신이 배달하는 신문이다. 신문에는 그날그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건들을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힘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지식이 될 뿐이며 잡다한 상식이나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 면에서 시사 문제에 밝은 영환 형의 존재는 주인공에게 세상의 바다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작가는 ‘달배’ 생활을 하며 겪는 여러 사건들을 서술해가는 동시에 1970년대 말의 사회․정치 상황을 밑그림으로 제시함으로써 이 작품이 단순히 성장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읽는 세태소설 내지는 사회소설의 영역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물론 긴급조치부터 YH무역 사건, 부마항쟁,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이르는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주인공은 정확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건들이 개인의 삶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수형이 YH무역 사건에서 여공 김경숙의 죽음을 통해 그의 가난과 자신의 가난을 견주며 동질감을 느낀다거나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이후 장례를 치르기 전 며칠 동안 배달용 신문을 빼돌려 팔아서 돈을 챙기는 ‘달배’들의 모습은 언뜻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정치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로 읽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일그러진 세계 속 ‘어린 민중’이 만들어나가는 눈물겨운 우정의 세계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서로가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점이 무척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긍정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손 소장과 유 감독, 부정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황바다와 백 총무 사이의 대립,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낀 ‘달배’들의 우정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특히 아무런 권력도 지니지 못한 ‘달배’들의 우정이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남들보다 한 발 뒤처진 낙오자 인생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공유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야말로 ‘어린 민중’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폐결핵에 걸린 영환 형을 위해 폐신문을 팔아 개고기를 사 먹이기도 하고, 유 감독의 지휘 아래 똘똘 뭉쳐 본사에서 파견한 새로운 소장을 몰아냄으로써 통쾌한 승리를 맛보기도 한다.

그런 그들도 자신의 앞날은 결코 남이 대신해줄 수 없으며, 오로지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검정고시 합격자 발표 이후 ‘달배’들 사이에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고 각자의 처지에 따라 거리감을 두기 시작하는 건 그런 까닭이다. 배달용 신문을 빼돌린 사건이 들통 난 뒤 백 총무로부터 시달림을 받던 중 “총무님은 달배들이 검정고시를 합격하고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심정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라고 하는 종찬이와 “내도 세상 살기 싫니더. 내한테 지금 총이 있다므 김재규처럼 언놈이라도 콱 쏴뿔고 싶다 이 말입니더”라고 하는 상택의 절규는 그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한 아픔과 좌절감을 위무해줄 수 없는 세상은 분명 어딘가 한쪽이 일그러진 세상일 터,  그러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는 지금 얼마나 벗어나 있는 걸까?


‘어린 연인’의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있어……

그렇다고 이 소설이 역사적 현장 속 ‘달배’들의 애환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주인공인 수형과 여자 친구인 지혜의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중요한 곁가지를 이룬다. 새벽 배달길에 위험에 처한 지혜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소설을 한층 재미있게 읽히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달배’와 대학생이라는, 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신분의 차이를 생각하면 두 사람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으리란 짐작을 쉽게 해볼 수 있다. 소설은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 어떠한 결말도 내려놓지 않는다. 또한 ‘달배’ 생활을 청산하기로 한 수형의 앞날이 어떨지에 대해서도 가능성만 열어놓고 있을 뿐,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랑의 성공과 실패는 그 결과만 가지고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는 행위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운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한층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순수함을 믿는다면, 그러한 순수함이 이 삭막한 세상을 조금은 밝고 따스하게 비춰줄 것이다.


1970년대 엄혹했던 유신시대, 신문보급소 ‘달배’들의 이야기가 2000년대 청소년들에게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공명할 수 있을까 하는 최초의 의문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사는 지금도 이 세상 한복판에는 여전히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이웃이 현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속 청소년의 고민이 수형, 상택, 종찬, 시민 들의 고민과 닮은꼴임은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살이의 근본은 한뿌리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한때 ‘달배’였던 작가 박영희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이웃들 곁으로 가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게 된 것은, 글을 씀에 있어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박영희_e-mail_ yh548@naver.com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에서 태어나 임성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 신문보급소와 공장을 전전하며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마쳤다.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후, 나흘은 막일을 하고 사흘은 그곳의 대학들에서 다섯 해 남짓 도강(盜講)하였으며, 이후 강원도 사북으로 옮겨 광부로 일하기도 했다. 1985년 문학무크『민의』3집에 시「남악리」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저서로 시집『조카의 하늘』(1987), 『해 뜨는 검은 땅』(1990), 『팽이는 서고 싶다』(2001), 『즐거운 세탁』(2007)과 서간집『영희가 서로에게』(1999), 시론집『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2003), 평전『김경숙』(2003), 르뽀집『길에서 만난 세상』(공저, 2006),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2007),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2007), 기행산문집『만주를 가다』(2008)를 펴냈다.

 

 

 

백담사 만해마을에 가서 마음을 좀 만회하고 왔어요

어제는 마침 아들 생일인지라 그제밤에 도착한 길이라서 마땅히 준비한 것도 없고

아침에 미역국 끓여서 먹고 점심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남편이 사준 갈비를 먹고

일주일 내내 밖에 나가 돌아다닌 탓에 몸살이 나서 어제는 마냥 쉬고

오늘 오전 눈을 뜨자마자 소설책을 잡고 단숨에 읽었네요

그리고 외출하기전에 잠시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문자메시지로 보낼까 하다가 컴퓨터를 켰습니다

 

늘 누님에게 라는 말이 너무 좋아서

자주 보고 싶은데 바쁜 사람에게 시간내서 나랑 노라줘노라줘 할 수도 없고

그냥 이렇게 그리워하는게 내 성격에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전에도 좀 들어서 알고 있던 성장기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나서 읽다보니

내가 알지 못하던 달배들에게 애정이 생기고(허긴 난 그 달배님들에게 친절한 아줌마였어요 가끔 수금오면 커피도 타주던...음료수나)

달배라는 단어도 처음 듣는 말이지만 달이라는 배를 타고 떠다니는 달배꾼이라는  말처럼

사공의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어요. 이 정도면 나도 소설 쓸만 한데...ㅎ 감성만 충만한 소설...심증만 가득 실은 글잔치일 가능성이 높지만

하여간 제목이 너무 시대적인 기류를 타고 내세운 듯한 미끼용 같다는 말 하고 싶어요

ㅎㅎㅎ 금년에 대통령이 한분 떠나셨길래 모두는 그런 오해를 좀 하게끔 유도한 죄가 작가에게 의도적으로 있다는...

 

장난처럼 쓰고 있지만 작가의 말과 박일환님의 발문을 읽을 쯤에는 그만 따순 눈물이 왈칵...

그래서 내 이상한 목소리로 전화하기보다는 좀 메마르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그 달배 수형, 정수형을 꼬옥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잘 살아주어서 고맙고, 환경을 헤쳐나오는데 진솔하고 적극적이어서 고맙고,

이제는 내가 아는 분중 가장 존경하는 아우님으로 자칭해주심이 자랑스럽고 그랬습니다.

입버릇처럼 자랑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표상>이라고......진심입니다

 

지금 책을 제 아들에게 읽으라고 넘겼습니다.

가끔은 지인들에게 선물용으로 사서 사용해볼려고 합니다.

마음 같으면 날마다 한권씩 사고 싶지만 제 게으름이, 장학금을 거부하고 사는 아들들 덕분에

제 지갑도 변변치 않아서 가끔요...그리고 좋은 책 선물로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울 오시면 저도 끼워서 좀 얼굴 보여주세요.

 

그럼...주말 염천에 몸 건사 잘하시면서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청운동에서 진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