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다
[데일리안 배강열 칼럼니스트]
실크로드, 사막을 건너 파미르고원 가는 길 ( VII )
◇ 2005년 타클라마칸 가장자리에서 ⓒ 들찔레
|
가까스로 도착한 아크스의 호텔 마당 한 쪽에 매우 큰 자귀나무에 핀 연분홍색의 꽃들이 오늘 하루 수고했노라고 환영인사를 건넨다. ´
그래, 너의 이름도 영어로 풀면 실크 트리(silk tree)지. 이곳 아크스에 언제 오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느냐?´
가볍게 씻고 간 호텔식당은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 일행을 맞기에 분주하다. 시골인심이 좋을 것이다 라는 인식처럼
이곳 변방의 도시 오래된 호텔의 사람들 역시 따뜻하다. 짧은 시간에 준비한 먹거리의 종류가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맛이나 정성은 한결 나아 보인다. 하루의 노고를 위로하는 느낌이 들어서 안온하다.
긴장이 풀렸던 탓일까? 예상보다 한시간 늦잠을 자고 말았다. 여행 중간의 누적된 피곤함으로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중간 중간 시계를 보았는데 한시간을 잘못 본 것이다. 고대 쿠차왕국의 일부였던 아크스는
쿠차와 카슈가르의 중간쯤의 실크로드 천산북로에 위치한 도시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도 쿠차에서의 테러가 없었다면 이곳을 들를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지금까지 여행자가
별로 찾을 만한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70만의 인구가 살고 있고 우리가 천산남로의 요충지인 호탄으로
건너갈 제2의 사막공로가 작년에 개통됨으로서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2008년 타클라마칸 I ⓒ 들찔레
|
제2의 사막공로로 불리는 아크스-호탄 사이의 길은 원래의 사막공로보다 짧은 430km 정도로
이 길 역시 카슈가르등 신장 남부와 국경지역의 공업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건설된 것이며 우루무치로
혹은 중국 중심으로 가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키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마도 호탄까지는 6-7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비로소 40만 평방 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는 날이 왔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거대한 타림분지의 중심부를 이루는 가장 낮은 지리적 위치에 있다.
아래위의 거대한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이 가장자리에 있고 그 산기슭 아래를 따라 오아시스가 발달되어 있으며
좀 더 가운데는 척박한 땅이 자갈과 흙으로 된 고비(몽골어로 고비라는 말 자체에 흙과 돌로 된 사막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한가운데가 사막인 것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가장자리에는
호양나무 군락과 낙타풀이 자라며 사막의 중심부로 들어가면 온전한 사막의 형태를 보인다. 크고 작은 사구가 이어지고,
사구가 바람에 밀려 이동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큰 장애가 된 유동(流動)사막이다.
자고 일어나면 지형이 바뀌며 지금도 일 년에 평균 10cm씩 계속 남진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막 가운데로 2,719km의 타림강이 흐른다. 타림강은 중국내의 가장 긴 내륙하(內陸河)이다.
20-100m에 이르는 사구가 연결된 이 사막은 대낮 기온이 높을 때는 70도까지 이르고 연 평균 강우량은 18mm에 불과한 척박하고 마른 땅이다.
◇ 2008년 타클라마칸 II ⓒ 들찔레
|
3년 전 투르판의 양관 앞에 펼쳐진 타클라마칸의 아득한 풍경을 보고 다시 이곳에 올 것이란 다짐을 했었다.
막연한 동경이 단순한 이유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옛날 사막 속의 왕국들이 풍요로웠던 시절이 궁금해졌고
지금 그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고싶었다. 이런 관심은 단지 실크로드의 문명에 대한 궁금증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내 피붙이도 아닌 사람들, 그리고 끝없이 척박한 길에 대한 동경을 하는 내면의 역동에는 외부적인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문명의 혜택을 더 받고 사는 것에 대한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보기도 하겠지만 인생의 여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본질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 2005년 타클라마칸, 해질 무렵 ⓒ 들찔레
|
이뿐만 아니다. 사막의 모래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하여 사막에 사는 개미떼를 일러 ´황금을 먹는 개미떼´라고
하는데 이들의 공격을 받으면 살아날 길이 없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건조하고 더운 열기와 삭막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고 몰아칠 수 있는 사막의 검은 바람이 세상을 뒤집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에 오기 직전 읽었던 기사 하나를 다시 읽는다.
<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 5일 허리케인급의 강풍을 동반한 황사가 불어 닥쳐 4천 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행중이던 4개 노선 기차가 중간 역에 갇혔다고 신화 통신이 보도했다. 승객 1천800명을 태우고 아크수에서
우루무치로 가던 5808호 열차는 5일 오후 4시부터 강풍과 황사 때문에 투루판 부근의 위얼거우(魚兒溝)역에
정차한 채 10시간 이상 운행을 정지했다. 허리케인에 맞먹는 14급 강풍으로 4일 섭씨 40도를 웃돌던 기온은
23도로 떨어졌고 열차는 탈선 우려 때문에 운행을 중단했다. >
(2008년 8월 5일 베이징, 연합뉴스)
◇ 2008년 타클라마칸 III, 차창으로 본 호양나무와 사막 ⓒ 들찔레
|
타클라마칸 사막 주위로는 봄부터 여름 사이에 때때로 강풍이 분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저기압의 활동 없이도
모래먼지를 날아 올리는 힘이 있는 사막이다. 타림분지는 마치 깊이 5km의 사발과 같은 구조로 분지 안의 공기를
뒤섞듯이 바람이 불기 때문에 모래먼지가 천산산맥의 꼭대기 높이까지 올라간다. 이것이 황사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기상학자들이 ´미니폭풍´ 이라 기술하는 회오리바람들이 언제 어디서고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혹자는 이런 강풍을 일러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부는 블리저드의 일종으로 눈보라를 동반한 차갑고
강한 바람 ´칼리부란´이라 기술하는 경우도 보는데 꼭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런 사막을 서양인으로 처음 지난 이가 약탈자 스벤 헤딘이다. 그는 한겨울 삭풍 속에서 타클라마칸을 지나며
이곳을 ´무덤 속 같은 고요함의 고향'같다고 정의하였다고 한다. 무덤과 고향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질감과
동질성이 같이 존재한다. 고향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이지만 무덤은 죽은 자의 삶터이다. 반면 타클라마칸은
죽음의 땅이 될 수 있음이며 때로는 문명의 기원들이 숨어있는 인간들의 고향일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무덤 속 같은 고요함을 간직한 고향이라는 말에서는 섬뜩함이 묻어난다. 경외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거대한 자연의 절대적임 힘 앞에 인간은 얼마만큼 겸손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 2008년 타클라마칸 IV ⓒ 들찔레
|
보편적인 생각으로 판단해보아도 사막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런 사막에 생생한
생명의 숨결을 더하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산업화의 바람으로 지하자원의 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길을 내게 되었겠지만 진행되는 사막화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그것이다. 구체적인 실천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 조림과 관개시설이다.
중국은 사막환경에 적응해서 자랄 수 있는 나무들을 선정하여 조림하는 방법으로 계속 나무를 심고 관리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심는 수종이 호양나무(서양버드나무), 뿌리가 5m에 이르는 홍유, 20cm의 키에 작은 무더기를 이루며
바람을 잡는다는 사사(梭梭), 야생대추나무인 사괴조(沙拐棗)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마치 아프리카 하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가 생각나고 메콩델타 하면 멩그로브 나무가 떠오르듯 두터운 둥치에 높지 앉은 키를
가진 호양나무들이 햇살이 내리쬐거나 황혼이 물들 즈음 서 있는 모습은 타클라마칸사막의 속성이 어떠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케 한다.
◇ 2008년 타클라마칸 V , 사막의 대표 수종 호양나무 ⓒ 들찔레
|
호양나무는 원래 이곳 사막에 자라는 가장 대표적인 수종으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썩을 때까지
또 천 년, 합해서 3천년을 산다는 전설을 가진 나무이다. 호양나무가 3천년을 산다는 과장된 표현의 이면에는
사막의 속성이 감추어져 있다. 전설처럼 사라진 사막의 옛 왕국들에서 온전한 형태의 미라들이 발견된 것처럼
절대강우량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건조함과 높은 온도로 비단 호양나무 뿐 아니라 어떤 것도 잘 썩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길가에는 격자형으로 끝없이 노위(蘆葦, 갈대의 일종)가 심어져 있다. 노랗게 빛이 바랜 노위는 제대로
자라지 않고 있지만 건조한 기후 탓에 썩지도 않아 단단하게 뿌리를 모래에 파묻고 있다. 가장자리로는
굳이 한 층을 더 빽빽하게 2중으로 노위를 심은 것은 바람에 밀려온 모래가 길을 덮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 2008년 타클라마칸 VI, 모래를 막기 위해 노위를 심어 만든 길가의 풍경 ⓒ 들찔레
|
아크스를 통해 호탄으로 가는 이 길에는 길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관이 보이지 않는데
이유는 길이 개통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의 사막공로에는 노위를 심은 길 따라
인위적으로 만든 관개수로가 있고 약 5km마다 이 시설들을 돌보기 위한 작은 집인 수정방(水井房)이 있다.
우물을 파서 관개수로를 만들고 길 양편으로 심어놓은 나무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 수정방인데
대개는 신혼부부들로 하여금 일정기간동안 의무적으로 살도록 하고 있다.
젊은 부부는 한 달에 약 8천 위안( 우리 돈 약 12만원)을 보수로 받으며 사막 한가운데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 젊은 부부들을 살게 하는 중국당국의 정책이 사회주의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여겨지지만 어쩌면 이들 신혼부부에게는 사막에서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교훈을
미리 배우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수정방은 지나는 이들에게 휴게소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곳 공로에도 곧 이곳 인근 젊은이들의 신혼방인 수정방이 생길 것이다.
◇ 2008년 타클라마칸 VII ⓒ 들찔레
|
햇볕이 구름 속에 가려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날이다. 사막이 사막다우려면 쨍쨍한 햇살이 필요할 터인데
사막을 지나는 내내 흐린 하늘이 아쉽게 만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길에 멈추어 선 채 지나지 못하는
사막을 바라보던 어제는 맑고 청명했던 날이 또 안타깝다. 오직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일행 중
한 분의 ´모든 조건이 나한테 다 맞추어 줄 수 있냐´며 탄식처럼 내뱉는 말에는 아쉬움이 가득하고
역시 같은 심정의 나에게도 그 말은 내내 귓가에 쟁쟁하다.
일찍이 이곳을 지난 현장법사는 그의 저술서인 ´대당서역기´에서 타클라마칸을 가리켜
대유사(大流沙)라 지칭하며 이런 기술을 해 놓았다. "행인들이 지나간 후에는 어떠한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으니
사람들은 왕왕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 ... 내왕하는 사람들은 죽은 자가 남긴 해골들을 주워 모아 길 표지로 삼는다."
이쯤에서 느끼는 것은 사막을 건너는 법을 안다면 사는 동안 닥쳐왔던, 또 닥쳐올 크고 작은 난관들과 조우하였을 때
좀더 슬기로운 대처가 가능할 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 2008년 타클라마칸 VIII ⓒ 들찔레
|
비록 사막에서 살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은 그냥 오아시스만은 아니라 정글이거나 사막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막을 건너는 일은 길이 없는 길을 가야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길 없는 길을 가야하는 일들이 더러 있을 것이고 보면 구름이 두터운 날,
애써 사막의 황량한 모습만 보여주는 타클라마칸이 나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려는지 짐작이 간다.
사막을 지나는 일에는 죽음이라는 명제가 부적처럼 뒤따르기 마련임에도
사람들은 태양 빛과 사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현상에 집착하고 있음을 깨우치는 것이다.
하여 좋은 사진을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너무 목말라 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 살아갈 길에도 늘 안온함과 평화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케 하는 것이다.
간혹 사막을 지나는 것 같은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잠시 숨을 고르고 이겨낼 용기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 2008년 타클라마칸 IX ⓒ 들찔레 |
어느 틈에 저 멀리 호탄 지방의 푸른 백양나무 숲, 오아시스의 흔적이 모래바람 사이로 신기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나마 숲이 보이기 시작하니 사막이 끝나고 거친 흙 길에 들어섰지만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 Copyrights ⓒ (주)이비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있는風景' 카테고리의 다른 글
Claude GAVEAU(1940 - FRANCE) (0) | 2008.11.26 |
---|---|
도심의 미네르바 (0) | 2008.11.23 |
겨울 만끽할 '한강 산책로'는 어디? (0) | 2008.11.23 |
묵향 그윽한 추사 김정희 고택 (0) | 2008.11.23 |
다이나믹 듀오 - 합죽이가 됩시다 합! (Stop) (0) | 2008.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