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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외갓집에 가는 마음으로 들르는 마을

by 진 란 2007. 12. 10.

외갓집에 가는 마음으로 들르는 마을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마을
[오마이뉴스 이형덕 기자]
▲ 대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강골 마을
ⓒ2006 이형덕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대나무 숲에 숨어 있는 이 고즈넉한 강골마을은 이끼 낀 돌담길 사이로 ‘할머니’하고 소리치면 당장이라도 외할머니가 달려 나와 반길 듯한 옛집과 고샅길들이 예스럽게 기다리고 있다. 진흙으로 쌓아 올린 토담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만히 그 곁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어렴풋이 어린 시절의 그 그을음 내 나는 기억들을 되살려낸다.

▲ 가만히 걸터앉기만 해도 시원한 대청마루
ⓒ2006 이형덕
소설가 한상준이 집 한 채를 얻어 살기로 했다기에 집들이 겸해서 들른 강골마을은, 앞에 넓은 득량벌을 내어 두고 고색창연한 40여 채의 옛집들로 이루어져 있다. 임란 때, 군량을 조달하여 득량이라는 이름을 가진 벌 덕에 어느 마을보다 넉넉히 지내던 부촌이었던 강골마을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큰 규모의 한옥들이 오랜 세월에도 옹골지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정민 전통한옥마을 회장
ⓒ2006 이형덕
광주 이씨 집성촌인 이곳에도 바람이 불어, 집을 비우고 도회지로 나가느라 여기저기 비어 있는 집들이 많았는데, 최근에 이정민 회장이 옛 모습을 온전히 지켜내며, 무엇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애써 빈집들에 새 주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고 있다 한다.

이정민 회장은 그동안 사람도 없는 빈집을 그저 전시장처럼 볼거리로 내놓는 방식에서 벗어나, 집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과의 만남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이다. 무작정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외지인보다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우물물이라도 한 잔 청하는 이를 더욱 반긴다는 이 회장의 말은 많은 걸 시사한다. 그동안 많은 전통마을들이 민속촌류의 ‘보여주는 공간’으로 치우치며, 그곳을 찾는 이들의 카메라 속에만 들어앉는 마을은 결코 살아 있는 마을이라 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이정민님 댁
ⓒ2006 이형덕
그는 그런 점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내놓을 어떤 장식물이나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저 고향집에 들른 것처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고, 그 속에서 함께 느끼고 생활하기를 바라고 있다.

ⓒ2006 이형덕


▲ 이금재 가옥
ⓒ2006 이형덕
전통한옥 마을답게 큰 느티나무 옆에 새로 지어진 마을회관도 기와지붕을 얹고 있었다. 득량벌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졌다. 다섯 개의 봉우리를 지닌 오봉산에서 연유한 오봉리에 자리잡은 강골마을은 중요민속자료 157호인 이금재 가옥을 비롯하여 이식래, 이용욱 가옥 등의 상태 좋은 한옥들이 잘 보전되어 있는데, 다른 곳과 달리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주 오래된 연조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강골마을의 한옥들은 전통적 구조에 근대적 실용성이 잘 조화를 이룬 형태로 의미를 갖는다 한다.

ⓒ2006 이형덕


▲ 담으로 이어지는 고샅길
ⓒ2006 이형덕
이 밖의 집들도 하나같이 이끼 낀 담장과 제 나름대로 아름다운 옛 풍광을 잘 지니고 있는데, 특히 1845년 헌종 11년, 이제 이진만이 후학을 기르기 위해 지었다는 열화정은 안마당에 자리 잡은 연못을 비롯하여 한국 정원의 조경미를 잘 보여 주는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의 한옥은 대체로 앞에 연못을 하나씩 두고 있는 것이 이채로웠고, 광채를 앞에 둔 이금재 가옥이며, 우물 하나를 세 집의 담장으로 둘러싸 함께 쓰는 이용욱 가옥의 구조도 특이했다.

ⓒ2006 이형덕


▲ 이용욱 가옥과 담을 낀 초가
ⓒ2006 이형덕
고향이 그리운 이들. 그러나 고향도 너무 변하여 노래방과 식당들이 즐비해 낯선 풍경으로 바뀌어 돌아갈 곳이 남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이제 들떴던 여름날을 고요히 가라앉히며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소소한 강골 마을을 찾아보기 권한다. 아마 이끼긴 고샅길을 돌아가노라면 오래 전 잊고 지내던 고향집 가족들의 이름을 불현듯 부르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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