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파리를 찾는 한국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자주 입에 오르는 프랑스 얘기가 ‘사르코지’와 ‘와인’이다.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대통령은 별명 ‘수퍼 사르코’처럼 종횡무진 활동하는 바람에 프랑스 정치인에 별 관심 없던 한국 사람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다. 두 번째 화젯거리 와인은 한국에서 급속도로 붐이 일어 그 열기가 멀리서도 느껴진다.
그런데 프랑스 대통령이라고 프랑스 와인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건 아니다. ‘일벌레’ 사르코지는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라 와인에 별 관심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의 한 와인잡지가 ‘와인의 축복을 받지 못한 유일한 대선 후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와인과 사이가 멀다.
반면 전임 시라크(Chirac) 대통령은 프랑스 음식과 와인에 애착이 강하다 못해 도가 지나쳤다. 2년 전 EU(유럽연합) 관련 사안을 놓고 영국과 신경전을 벌일 때 시라크는 “영국 음식이 핀란드 음식 다음으로 최악이다” “맛없는 음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독설을 해 빈축을 샀다. 올 3월 EU 50주년을 맞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Merkel) 총리가 EU 정상들을 베를린에 초청하는 자리에, 가장 고민한 것이 와인 선택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시라크 대통령이 또 무슨 트집을 잡을까봐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 시장 시절, 시 예산을 펑펑 써 값비싼 특급 와인들을 사들였다가 비난을 산 적도 있다.
그러나 와인 애호가를 자처한다고 시라크 전 대통령이 와인과 프랑스 문화의 이미지를 드높인 것은 아니다. 와인이 가진 다양성의 가치와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불붙은 한국의 와인 문화는 와인 모르는 ‘사르코지’에서 뻐기는 ‘시라크’ 스타일로 갑자기 건너뛴 느낌이다.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빠진 것 같다는 말이다.
한국서는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이 히트하니 만화에 나온 와인만 유행한다. ‘레드 와인이 좋다’고 하니 여름에도 겨울에도 내내 레드 와인만 마신다. 남들 하는 대로 우르르 몰려가는, 한국적 쏠림 현상이 와인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건 유감이다.
프랑스 음식에서 와인은, 한국 음식의 국 같은 존재다. 국처럼 목도 적셔주고, 반주(飯酒)처럼 사람들 사이도 적셔주면서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나가는 역할을 한다. 여름에 시원한 냉면 생각나듯, 프랑스 사람들은 여름이면 시원하고 가벼운 로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더 많이 마신다. 때와 장소, 음식에 따라 곁들이는 와인 선택도 다양하다.
프랑스 전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브랜드도 수만 가지가 넘는데다, 와인 한 잔에 담긴 맛과 향의 표현도 ‘산딸기, 배, 바닐라, 낙엽, 버터 발라 구운 토스트, 고양이 오줌냄새…’하는 식으로 700여 가지나 된다.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한국의 CEO와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 앞다투어 값비싼 와인을 마시며, 와인 학습 붐이 일고 있다지만 압축 성장, 압축 성공하듯 ‘초단기 암기학습’으로 정복되지 않는 존재가 와인이다. 한 프랑스 소믈리에는 “와인 맛을 잘 느끼고 싶다면 숲과 공원을 산책하며 꽃 냄새, 풀 냄새를 많이 맡아보라”고 충고해줬다.
프랑스 와인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런 다양성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유행과 집단 쏠림보다는 나의 입맛, 나의 선택을 중시하는 프랑스적 가치다. 와인을 통해 이런 지혜와 문화를 배우지 못한다면 비싼 돈 들여 와인 수입하는 건 정말이지 아까운 외화 낭비다.
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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