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박영근
길가 푸라타나스 나무 밑에서
자장면 그릇 몇 개
서로 얼굴을 파묻고
비에 젖고 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빈 그릇 속으로 고이는 빗방울들
지나가던 행려의 사내 하나 그 모양을 보고 있다
어디 먼데
먼데로
흩어진 식구들 생각을 하나 보다
푸라타나스가 젖고
빗속으로 가지들이 흔들리고
허공에 걸리는 새 울음소리
나뭇잎들이 길바닥에 낮게 엎드린다
온통 젖은 얼굴 한 장
흙탕물 튀어오르는 그릇 위로 떨어지고 있다
날이 더 저물면 한 번쯤 우레소리가 건너올 것이다
―<유심> 200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