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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미당문학상 문인수시인-오래 머물면 마음이 맑아지는 ‘한편의 시’

by 진 란 2007. 9. 19.
미당문학상 문인수씨 시 `식당의자` [중앙일보]
황순원문학상 김연수씨 중편 `달로 간 …`
변방·근성의 승리
 
김연수씨(左), 문인수씨(右)

 

제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으로 문인수(61)씨의 시 '식당의자'가,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으로 김연수(37)씨의 중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이 선정됐다. 미당 서정주(1915~2000) 선생과 소설가 황순원(1915~2000)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된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은 중앙일보와 문예중앙이 주최하고 LG그룹이 후원한다. 미당.황순원문학상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상이다. 미당문학상 상금은 3000만원, 황순원문학상은 5000만원으로 각 부문 국내 최고 액수다. 모두 26명의 심사위원이 투입됐고, 8개월 동안 81종의 문예지를 검토했다. 문인수.김연수씨의 수상 의의를 짚는다.

◆비주류의 승리=문인수씨는 이른바 '변방의 시인'이었다. 42세에 문예지 '심상'으로 등단한 늦깎이이고, 대구를 무대로 활동하는 지방 시인이다. 무엇보다 그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동국대 국문과를 6개월만 다녔을 따름이다. 시인은 "허위 학력 파동으로 소란스러운 이때 큰 상을 받게 돼 감개가 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씨 시의 매력은 야생성에 있다. 규범에 매이지 않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표현력은 그의 시를 설명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더욱이 그는 늘 저 낮은 세상을 바라본다. 번듯한 시 수업 한 번 받은 적 없는 시인이기에 외려 구현할 수 있는 작품세계다. 수상작 '식당의자'는 식당 천막 아래 놓여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시인은 허름한 의자에서 삶의 그늘을 찾아낸다.

◆프로 정신의 개가=김연수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 소설가'다. 94년 등단한 이래 한 번도 대중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가볍고 쉬운 읽을거리가 판치는 요즘에도 교양소설의 전통을 묵묵히 따르고 있다. 그는 자신을 "프로 소설가"라고 소개하며 "소설은 나에게 숭고하고 신성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수상작 '달로 간 코미디언'은 김득구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권투 경기에 목숨을 걸었던 한국인 청년의 비극을 소설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김득구 사건을 통해 80년대란 시대의 암울한 풍경이 낱낱이 드러난다.

수상작은 예심에서 유일하게 심사위원 전원 추천을 받은 작품이다. 최종심에서도 "현실과 허구를 교묘히 오가는 작가의 솜씨가 뛰어나다"란 평가와 함께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수상작이 됐다. 미당.황순원문학상 시상식은 중앙 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10월 26일 오후 6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미당.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중앙북스)은 이번 주말께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한편 중앙 신인문학상 당선자는 20일 발표한다.

손민호.이에스더 기자

 

 

“내일 당장 시 못 써도 여한 없어” [중앙일보]
육십 평생 회한의 눈물 흘린 변방의 시인
미당문학상 수상자 문인수
 
문인수 시인이 올해 미당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고맙고 반갑다. 하필이면 올해여서 더욱 그러하다. 문인수 시인의 수상 소식은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귀한 사실 두 가지를 일러준다. 역병처럼 떠도는 ‘간판주의’가 아직은 더럽히지 못한 영역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그 하나이며, 그놈의 ‘짝퉁’이 오로지 시인의 영토엔 침범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른 하나다.

 문인수 시인은 42세에 문예지로 등단했고, 대구에 거주하며,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어느 조건도 이른바 ‘주류’와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올 미당문학상은 문인수 시인의 손을 들었다. 문인수 시인의 수상은, 마흔 줄에 들어서야 비로소 등단한, 지방 거주 고졸 시인이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상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하여 그저 고맙고 마냥 반가운 것이다. 
 문인수는, 그 연배와 상관없이 2000년대 시인이다. 문인수란 이름이 중앙 문단에서 거론된 건 2000년부터다. 시인은 그때, 쉰다섯의 나이로 김달진문학상을 받는다. 중앙 문단에서 문인수에게 수여한 최초의 상이다. 시인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때 나는 스스로 시 쓰기에 무슨 발동이 새로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말하자면 시 쓰는 일이 어느 때보다 재미가 났으며 은근히 혼자 신명이 붙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때부터 이런저런 문학상 후보에 자꾸 이름이 올라가곤 했다.”

 미당문학상 최종심에 문인수란 이름이 처음 보인 건 이태 전이다. 그때부터 시인은 해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2005년 미당문학상 최종 심사 때 일화다. 최종 심사를 맡았던 정현종 시인이 문인수의 작품을 읽고서 한 마디 평을 얹었다.

 “이 친구, 아무리 봐도 지금이 전성기야.”

 그때 시인의 나이 예순이었다. ‘환갑에 맞은 전성기’란 말은 이때부터 그를 따라다녔다. 특히 지난해 초 발표한 여섯 번째 시집 『쉬!』는 문단 안팎에서 높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이 시집으로 그는 시와시학상·편운문학상 등 네 개의 문학상을 잇달아 거머쥔다.

 문인수의 시는 야생의 시다. 문인수의 시는 온갖 정성 기울여 가꾸는 화분 안의 화초가 아니다. 저 넓은 들판 어디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피어나는 야생화다. 세상의 어떤 문학 교과서에서도 볼 수 없는 감각과 표현이 그의 시에선 늘 파닥거리고 꿈틀댄다. 앞서 적은 대로, 시인은 번듯한 시 수업 한 번 받아본 적 없다. 그래서 시인은 여태 길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삶의, 아니 시의 아이러니다.

 수상작 ‘식당의자’에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장맛비 맞아가면서도 시인, 대구 근처 유원지로 놀러 나갔던 모양이다. 하나 시인의 눈에 들어온 건 요란스런 유원지 풍광이 아니었다. 겨우, 허술한 식당 천막 안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였다.

 궂은 날씨 탓에 식당을 찾은 손님은 천막 아래 의자에 앉지 않는다. 사람이 앉지 않았기에 의자는 지금 쉬고 있는 거다. 등받이나 팔걸이도 편안히 보이게 된 거고. 다시 말해 의자는, 장맛비 아래에서만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다. 그 의자의 속내를, 시인은 헤아린 거다. 

 9월 초순 자정을 넘긴 밤,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사 근처 포장마차. 언제부턴가 촉촉이 젖은 눈매의 시인, 소주잔을 앞에 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일 당장 시를 못 써도 여한이 없네. 이 마음, 알겠는가?”

 그 마음, 얼추 짐작한다고 차마 말하지 못 했다. 
 



식당의자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시인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85년 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뿔』(92년) 『동강의 높은 새』(2000년)『쉬!』(2006년) 등 다수
▶김달진문학상(2000년) 노작문학상(2003년) 편운문학상(2007년)

글=손민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오래 머물면 마음이 맑아지는 ‘한편의 시’ [중앙일보]

미당문학상 심사평

 

미당문학상 최종심 논의를 하고 있는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황지우·이남호·황현산·김혜순·이시영씨. [사진=김성룡 기자

 

 

제7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미당문학상은 미당 서정주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탁월한 성취를 이룬 시(詩) 작품에 수여되는 문학상이다.

 논의 끝에 마련한 심사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상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발견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응결 혹은 형상화의 미학이 있어야 한다. 셋째, 가독성과 흡인력이 높아야 한다. 넷째, 미당의 문학성과 상관성이 있으면 더 좋다. 다섯째, 독자의 나태한 일상을 흔들고 긴장케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최종 후보에는 젊은 시인과 원로급 시인이 두루 있었다. 이장욱·손택수·김행숙은 개성있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지만 연륜·안정성·가독성 문제가 제기됐다. 김경주는 비유와 시적 공간의 세련성에서 관심을 끌었지만 수상작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문재의 문명 비판시는 그것이 지닌 의미는 인정하지만 아직 출발선에서 멀리 못 간 것 같다는 지적, 다른 작품과의 연결이 불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고형렬의 ‘달개비의 사생활’은 찬사를 받았지만 그 외 작품에서 안이한 상상력과 언어가 엿보여 아쉬웠다. 김명인과 김신용에 대해서, 특히 김명인 시의 수사적 세련됨과 안정감을 다들 고평했다. 반면 한 자리에 머물며 같은 언어를 반복하는 듯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진규 시에 대해서도 비슷한 견해가 나왔지만 미당문학상을 떠받칠만한 단 한편의 시를 선별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문인수가 남았다. 그의 시가 기준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태작 없이 대부분 높은 완성도를 가졌고, 원숙기에 들어섰으며, 그의 작품 몇 편이 계속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점이 그의 치열한 시 정신과 함께 인정됐다. 그 중 ‘식당의자’와 ‘공백이 뚜렷하다’를 놓고 마지막 격론이 있었다. 두 작품 모두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예사롭지 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발견의 충격과 시적 에스프리의 매력은 ‘공백이 뚜렷하다’가 더 강하다. 그러나 ‘공백이 뚜렷하다’는 더 높은 정신으로 응결되지 못한 개인적 삶의 허무를 노래한다. 이에 비해 ‘식당의자’는 언뜻 기시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삶의 근저에 닿아있다. 버려진 식당의자를 소외된 존재와 연결하는 비유적 상상력은 평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평범에서 비범의 긴장과 의미를 유지하는 것이 장점이다. 또 소외된 존재에 대한 연민이라는 주제는 멋진 허무의 포즈보다 신뢰감이 높다. 기발한 시적 공간도 아니고 목소리도 낮지만 겸손한 진정성과 섬세한 미학성이 잘 결합된 수작이다. 오래 머물면 마음이 맑아지는 예쁜 굴곡과 무늬가 숨어있다. 미당문학상의 영예는, 오래된 기억같은 작품 ‘식당의자’에 주어졌다.

 ◆심사위원=황현산·이시영·황지우·김혜순·이남호(대표집필 이남호)


사진=김성룡 기자

 

 

Melody Of Love..Ba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