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대 광주시민운동의 모습을 극화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대사 "나는 폭도가 아니다."
또한 "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라고 외치던 신애의 목소리가 지금도 아련하다.
화려한 휴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그때를 기억해달라는 얘기 같다.
역사의 한자리에 남아 진실과 정의, 자유를 위해,
정확히 그것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몸으로 느껴서 행동한 그분들을 저는 기억하렵니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꼭 이야기 해주렵니다
<화려한 휴가> 80년 그날을 취재한 외신기자의 생생한 증언
http://blog.naver.com/ranigy21/80041029238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스크린에 옮긴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 제작 기획시대)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했던 외신기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했던 외신기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인터뷰 영상 공개
당시 518을 취재했던 전 남독일 신문 기자 ‘게브하르트 히일셔’와 전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노먼 누트 타프’의 증언을 담은 이번 인터뷰 영상은 1980년 5월, 광주의 참혹한 실상을 전해주고 있다. 시체가 즐비했던 장소, 도청 밖 시체의 수 등 자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는 기자들은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날의 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기자는 얼마나 힘든 취재였는지, 시민군들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는지 마치 어제 일을 기억해 내듯 침착하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증언과 함께 맞물려 보여지는 <화려한 휴가>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마치 그들의 증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는 <화려한 휴가>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실존 인물들과 실제 사건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시민들과 계엄군의 대치 상황, 상무관의 시체들, 침대가 모자랄 정도의 엄청난 부상자의 수, 병원의 끔찍한 상황 등 그들의 증언은 바로 <화려한 휴가>의 장면으로 보여지고 이에 이번 인터뷰 영상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그날의 참혹함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아픈 현대사를 다룬 <화려한 휴가>는 오는 7월 26일 개봉할 예정이다.
출처:코리아필름(http://www.koreafilm.co.kr/)
<실존인물> 김복만[1952-06-12] _ 당시 28살 -> ‘강민우’라는 인물의 모티브 제공
택시운전을 하던 김복만은 시위에 가담했다가 5.21일 도청 앞에서 총을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
<실존인물> 홍순권[1960-01-21] _ 당시 20살 -> ‘강민우’라는 인물의 모티브 제공
20일부터 카톨릭농민회 회원들과 시위에 동참했다가 27일 도청에서 최후항쟁에 참가. 총에 맞아 사망.
강민우로서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 강민우(27세/남)_김상경 분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동생 진우를 돌보며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택시 기사.
전교 1등을 하는 동생 진우에게 부모처럼 헌신적인 사랑을 주면서, 짝사랑의 상대자 신애에게는 서툴러 제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광주시민.
그러나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사랑하는 동생과 여자를 위해 역사의 비극에 정면으로 맞선다.
<실존인물> 전옥주
1980년 5월 27일 광주 시민군의 최후 항쟁이 있던 날 오후 3시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을 했던 주인공.
1980년 5월 27일, 당신의 울부짖음을 기억하겠습니다. / 박신애(24세/여)_이요원 분
군 인 출신의 아버지 흥수와 살고 있는 간호사. 따뜻한 성품을 가진 박신애는 남자 못지 않은 담대함으로 항쟁 기간 동안 간호 요원으로 자진해 많은 희생자들의 아픔을 감싸주고 어루만져준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우와 수줍은 사랑을 만들어 나간다.
<실존인물> 양회남[1950-02-16] _ 당시 30살 ->‘강진우’라는 인물로 재구성
화정동집 담밖에서 총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있는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나갔다가 총에 복부를 맞아 사망. 101사격장에 가매장되었다가 망월동으로 이장.
용감했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겠습니다. / 강진우(18세/남)_이준기 분
진우의 동생으로 비록 부모님 없이 자랐지만 밝고, 착하고, 모범적인 고등학생. 형의 말이라면 절대 거스르는 법이 없던 진우 이지만 절친한 친구가 계엄군에 처절한 죽음을 당하자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항쟁에 앞장선다.
<실존인물> 김복만[1952-06-12] _ 당시 28살 -> ‘인봉’이랑 인물로 재구성
택시운전을 하던 김복만은 시위에 가담했다가 5.21일 도청 앞에서 총을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
당신의 기쁨과 슬픔을 기억하겠습니다. / 인봉_박철민 분
민우의 절친한 택시회사 동료. 월남방위 출신에 허풍이 강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 딸을 위해 가족을 위해 열흘 동안 시민군으로서 용맹이 싸운다.
<실존인물> 민병대[1960-05-18] _ 당시 20살 -> ‘용대’라는 인물로 재구성
5.20일부터 시위에 참여하다 27일 새벽 도청지하실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
당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억하겠습니다. / 용대_박원상 분
광주의 잘나가는 제비족으로 잃을 것 하나 없다는 심정으로 시민군에 동참. 인봉과 찰떡궁합을 선보이며 열흘간의 민주 항쟁 기간 동안 시민군으로 활약한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용감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박흥수(48세/남)_안성기 분
예 비역 대령 출신으로 택시 회사 사장. 곧은 성격의 소유자로 정확한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아내와 사별하고 하나뿐인 딸 신애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군대의 과잉진압으로 쓰러져 가는 무고한 시민들을 위해 비극의 현장에서 시민들을 통합해 시민군을 이끌어 간다
사람 냄새가 나는 우리 영화 만세입니다
사람냄새.
나는 영화를 보고 감독이 궁금해졌다.
분명히 광주사람이겠지? 그래서 광주에 대한 애정이 특별한 사람일거야.
나의 추측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에게게~~ 10살 어린이에 불과했다고 한다.
-저는 그 시절 10살이었고 광주 반대편 대구에서 살았어요. 제가 아주 어렸고
또 어른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 폭동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그런지 불순 분자,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어요.
그렇다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다시
-전 서울로 와서 대학을 다녔죠.
역사적 사실의 진실을 알고서 개인적으로 참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알려고 하지 않은 것도 부끄러웠고......
그래서 이 영화가 제 개인적으로는 참회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5.18 운동에는 우리 민족의 장단과 가락, 흥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성취해야 할 첫 번째 지점이 캐릭터에서의 동질감이기에
전반부의 코미디는 이를 위해 넣었습니다.
중간부터 나오는 코미디는 '슬픔을 전이하지 않으려는 배려'라는 장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감정과 슬픔을 남한테 전이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있죠.
실제로 유족들을 만나보면 영화에서 내 얘기나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라
5.18 전체를 다뤄 달라고 말합니다.
영화를 위해서 유족들을 만나고 그들의 소리를 진심을 다해 새겨들었다는
그래서 그가 만든 화려한 휴가는 눈으로 보는 영화가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 영화다.
입술로 키득키득 웃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웃다가 두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줄줄~ 흘려야 하는 영화다.
★ http://memolog.blog.naver.com/ranigy21/917 ★
[5.18광주항쟁]25년만의 고백 - 한 특전사 병사가 겪은 광주
영화가 끝 난 후 오랫동안 체증이 남아 있었다. 얼음이 띄워진 동치미를 두 사발이나 넘기고 나서야 체증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렸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는지 뭐가 부족한지에 대해 말하는 데는 재주가 없다. 그냥 영화 그대로를 읽었다.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는 끝까지 광주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확성기를 통해 울부짖던 이요원의 마지막 대사를 위해 영화는 2시간을 거침없이 달린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김상경의 대사는 다 잊어도 좋다. 김상경의 농익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려는 말 또한 죽기 전 말 한 마디이다. “우리는 폭도가 아냐”.
내가 그렇게 가르쳤나, 적 앞에서 도망가라고?
안성기도 결국은 자신의 부관이었던 대위와 총을 겨누고 했던 이 말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신군부 그들은 분명 적이었다.
불과 27년 전
불과 27년 전의 일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시 뉴스를 통해 접하는 당시의 상황들이 떠올랐다. 광주에서 빨갱이가 난동을 부리고 우리 군은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뉴스는 시골 마을 중학교 아이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빨갱이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시기가 불과 27년 전이었다.
영화는 잔인하지 않다.
영화는 잔인하지 않다. 대학을 들어가며 간간히 보아왔던 장면들조차도 담아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장면 장면 눈을 뜨지 못했다. 곤봉이 무방비의 시민들 머리를 난타하는 중에는 한 동안 눈을 감았다.
지난 5월 광주 망월동을 처음 찾았다. 잘 정리된 묘지와 기념관 봉안소를 둘러보면서도 마음 한 켠이 저렸던 이유는, 그들은 아직도 광주 도청 앞 금란로 거리와 도청 안 어디에선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람들
영화에는 어떤 투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예비역 대령 출신이면서 신군부에 저항하다 밀려난 안성기 정도가 투사일 수 있을까? 너무 평범하고 순수하다. 그저 작은 인연들로 엮여 살아가던 시민들일 뿐이다. 그들의 언어 또한 유쾌하기 짝이 없다. 비장감이라곤 눈을 씻고 찾을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이 금란로로 도청으로 모여 들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군인들의 곤봉에 총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다.
잊혀진 광주, 잊혀져 가는 광주
불과 27년전의 일이 이미 27년이 되어 버렸다. 한 세대가 지나갔다. 광주는 기억도 되기 전에 잊혀져 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롭다. 그러는 사이 광주는 지쳐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신군부와 결탁한 3당 합당의 주역, 김영삼이 광주와 악수를 했다. 한나라당의 대선예비후보 광주 토론회는 5.18묘역에서 열렸단다. 아직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는 그들과 악수하고 그들에게 성지를 내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광주는 지쳐가고 있다.
광주는 잊혀져 가는 데, 총과 칼을 들었던 그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개인으로도 정치세력으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잠시 숨 죽였던 시간에서 벗어나 다시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곳곳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리는 끔찍하리만큼 견고하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
마지막 장면, 결혼식 장면이다. 죽은 자들의 환한 웃음에 이요원의 얼굴은 고통과 어두움이 스며있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 잊혀져 가는 자의 어두움이다. 단지 잊혀져 가는 슬픔 뿐이랴, 무자비한 살해 세력들은 아직 너무도 떳떳하다.
비어 있는 이야기들
영화는 많이 비어 있다. 제목이 왜 화려한 휴가인지 말하지 않는다. 왜 특수부대가 광주로 모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군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무자비하게 죽어가는 데에도 뚜렷한 이유가 없다. 군인들이 누구이며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일 길이 없다. 단지 ‘전장군’이란 단어를 통해 어림잡아 추측할 수밖에 없다.
광주 시민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도 빠져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밥을 짓고 창녀들이 밥을 푸며 동참한 일도 빠져 있다. 광주의 사람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그 후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에 대한 복선도 없다.
비어 있는 이야기는 입으로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입으로 전해지며 다시 광주를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휴가가 던져준 메세지 그리고숙제 |
2007.07.30 22:29 |
http://paper.cyworld.com/historty7/2182798 | |
*역사학도 박성연 학생의 글 옮김 | |
들어가기 전에
원래 전공은 근대전환기인데 2편 연속으로 현대사를 쓰게 되네요..
하지만 '화려한 휴가'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영화이고...
제가 이 페이퍼를 발행하는 목적이 제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세상과 소통 혹은 역사 대중화의 일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 스스로가 광주 출신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안 쓰고 넘어갈 수가 없네요..
들어가서
작년 부터 이 화려한 휴가에 대해서는 언론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광주서 학교를 다닌 입장에서.
이 영화는 무척이나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광주 출신이기는 하지만 5.18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닙니다.
(현재 5.18 광주 민주 항쟁이 가장 일번적인 용어로 쓰여지고 있지만
시민전쟁, 민주화 운동, 등등 아직은 용어의 합의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러한 용어들은 가치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5.18이라는
가장 비가치판단적인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생년월일 자체도 80년 생이고 사건 당시 공무원이시던 아버지가
여천(현재 여수)에 파견 근무 중이셨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에서
광주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역의 상처가 깊었기에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이 5.18에 대한 이야기들은 듣고 자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이 듣고 자라서 일까요? 아니면 심야영화라 몇몇 없어서 일까요?
사실 다들 많이 울었다는데 저는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 이런 느낌이었어요.
단지 광주 사람인 제가 보기에도 감탄 할 수 밖에 없는 도청과 금남로의
세트는 많이 감탄했습니다. 이준기씨 인터뷰를 보니가 주요 배역들이
사투리를 써야하는가 표준어를 써야 하는가로 배우와 감독의 의견이 달랐다고 하는데
사실 그 부분은 어느 쪽이 더 맞는가는 모르겠어요.
사실적이라면 사투리가 맞겠지만 이 영화가 가지는 의미는 사실만은 아니기에..
영화속으로
5.18과 관련된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꽃잎'과 '박하사탕'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드라마로는 '모래시계'와 동명의 '화려한 휴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5.18로 파생된 이야기나(영화들) 도입부의 배경로만 쓴 것에 비해(드라마)
사건 자체를 배경으로 한 것은 영화 '화려한 휴가'가 처음입니다.
감독의 인터뷰(필름 2.0 7.25일자, 인터넷판)에서 밝히듯이 이 영화는 철저히
당시 광주 시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부 평자들이 너무 시민들의 입장에서만 바라봐서 계엄군의 입장
즉 군부가 아닌 진압을 위해 투입된 병사들의 아픔을 그리지 않았다는 비판을 하지만
이는 너무 사건을 분산 시킬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 입니다.
그만큼 아직도 광주 시민들의 입장이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도 됩니다.
다만 이에 대한 실마리는 영화 첫장면에서 한 병사의 "북으로 가는 것입니까?"란
대사에서 찾아 볼 수는 있습니다. 당시 진압군의 입장에서는
시민들이 아닌, 북의 침투와 동급으로 상부 지시가 내려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감독의 인터뷰(필름 2.0)에서 밝히듯이 김대위를 통해 다소나마
전달하고한 흔적이 보입니다.
영화는 철저히 당시 시민들이 얼마나 평범했는지를 강조합니다.
극중 안성기도 김상경도 그리고 이요원도 특별할 것이 없는 시민들입니다.
인터뷰에서 밝히듯이 이 등장 인물들은 사실 실제했던 사람들이 아닌
있을 법했던 사람들입니다. 역사학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는 다소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이번만은 왜곡이라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결국 자료가 풍부하지 않은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해야 하는데 사건의 본질을 흐트러 뜨리지 않는 범위라면.
역사서가 아닌 이상 이 정도 창작은 허용이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최근 서양 역사학의 조류가 지배층이 아닌 일반 평민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유행인데(이를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문화사, 일상사란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지만)
한국사에서 이를 어떤식으로 표현할지 아직 많은 고민을 담고 있는 것에 반해서.
'화려한 휴가'는 그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배울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금남로 발포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시민들 모두 웃고 떠들던 분위기에서
일순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숙연한 장면으로 전환이 되는데요..
두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이 정도로 현대사에서 국가주의의 교육이 뿌리 깊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과
다른 하나는 이들 시민들을 신군부는 폭도로 규정을 했지만
국가에 충량한 시민들이었다는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 두가지가 복합적이었겠지만 방점은 후자에 찍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점은 김상경이 죽는 장면에서 폭도라는 말에 흥분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이 됩니다.
일반시민의 입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흔적은 이 영화 곳곳에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이 사건은 광주 시민의 입장에서는 절대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가족, 친구들의 죽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사건에 참여해야 했던 시민들..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도청을 사수해야 했고..
평범한 처녀였던 이요원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계엄군을 죽여야 했던...
현실을 담담히 그래내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너무 중요한 사건을 너무 정치적 해석이 없이 그려내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광주 시민들이 목놓아 울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27년이라는 시간동안 광주 시민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 처럼 역사의 소용돌이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들었다는...
색깔이 없어 보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어떤 영화보다 색깔이 있는 영화란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의 색깔은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도 보입니다.
감독의 다른 인터뷰(시네 21. 7.17일자 인터넷)에서도 밝히듯이..
다들 밝은 표정인데 이요원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살아 남은 자의 숙제를 보여주는 것이고 이는 광주 시민 나아가
대한국민 전체 시민들의 몫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개봉 첫날 보고 와서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영화는 무척이나 슬펐고 중요한 사실을 다루었지만.
결말은 너무 허무하다라고 이야기 하시더군요...
시민들이 그렇게 죽어갔는데 아무런 결론이 없다는 것에 불평한 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5.18이라는 사건이 아직 그렇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한계레에 실린 평론이(2007,7,27 임범) 스치고 지나갑니다.
"지금 와서 보면 할 건 다 했는데 한 게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새로 할 것도 없게 돼버린 상태에서 영화는 그 역사를 다시 고발하고 분노한다."
특별법을 만들어서 두 전직 대통령도 재판했고..
시민들에 대한 복권도 이루어졌고.
5.18 광주 망월동 묘지는 국립묘지가 되었지만..
아직 뭔가 할 것이 남은 이 부분을 영화는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야 5.18의 이 투쟁이.
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공의 발판으로 보지만..
아직도 뭔가 남은 것 같기에 이요원의 표정으로 상징되는
영화의 이런 엔딩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좋은 영화 그러나...
"화려한 휴가"가 좋은 영화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뭔가 결정적인 한방이 약한 것 같다는 느낌을
저 개인적으로는 지울 수 없습니다.
처음 발포 장면도, 맞아 죽는 장면도, 엔딩도 기억에는 남지만...
정작 영화 전체를 아우를 만한 결정적 한방이 없는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실미도에서의 그 유명한 설경구의 유명한 대사
"비겁한 변명이십니다."
이런 강력한 한방이 없이 잔잔히 영화가 흘러 간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사실 농담반 섞자면 이런 장면 하나 있으면 1000만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 대선 정국과 맞물리려는 성향도.
사실 영화 자체가 던지는 문제 제기를 희석시킬까 걱정 됩니다.
벌써 오늘 기사보니 범여권에 유리할 것 같다..
범여권의 대권주자 누가 영화를 관람했다는 기사가 나오던데요..
하지만 이제 영화가 가지는 대중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이..
문민 정부 이후 서서히 5.18을 인정하기 시작해서..
참여 정부에 들어서서는 자신들이 정통성을 5.18에서
찾기 까지 했지만(노무현 대통령� 2003년 5.18 기념 축사)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영화 한편이..
이렇게 사회 전체에 커다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오랫만에 촉발된 5.18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다 한 거 같지만 한게 없는거 같은 것이 아니고..
이제는 이요원의 심각한 얼굴을 풀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덧붙이기.
인터넷을 돌아다니가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있는 '화려한 휴가 유감'이라는 그 당시 전남대 학생이셨던 분의 글이 느끼는 바가 많아서 덧부치겠습니다.
나는 80년 당시에 전남대학교 학생으로, 당시 광주를 경험한 모든 분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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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우랴 출정하여라
영원한 민주화 행진을 위해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
출정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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