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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상처받고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by 진 란 2006. 12. 15.

 상처받고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울고 싶을 때 있지요. 한 해가 저무는 이런 즈음에 울고 싶다면 그 아픔과 외로움은 더하겠지요. “이 들녘에서 엎드려 울게/날 좀 내버려둬”라고 읊은 로르카는 스페인 최고의 시인이지요. 삼나무 그림자가 바람에 날리고 모닥불이 탈 때 어두워지는 들판에 엎드려 울고 싶을 뿐인 시인이 외칩니다. 날 좀 제발 내버려두라고. 울고 싶은 이유를 쉽게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외롭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외롭다는 게 정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외로움이 주는 음식들, 그 영혼의 음식들은 종종 성찬입니다. 정도의 문제이겠지만 가난과 질병과 마음의 상처가 주는 외로움은 삶을 컨트롤하는 데 필요한 약입니다..

 

아파도 사랑하세요. 아프고 아름다워서 사랑입니다. 어느 순간, 아픔까지도 곁눈질할 틈이 없는 황홀한 생의 열기라는 걸 알게 되어 당신을 더욱 사랑합니다. 선사들은 몸에 병이 들어오면 마음을 활짝 열어 병을 내보낸다지요. 마음에 병이 들어오면 몸을 활짝 열어 병과 놀아주고 앓아주고 달래주다가 내보낸다지요.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아플 수 있게 우리는 진화해 왔답니다. “오 계절이여, 오 성곽이여! 결함 없는 넋이 어디 있으리?”라고 랭보가 말했던가요? 그래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어요?

까치밥이란 게 있지 않아요? 새들이 쪼아 먹은 감이나 배, 사과 같은 것들. 쪼아 먹힌 과일들이 훨씬 맛있다는 얘기에 골똘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는 새들이 맛있는 과일을 어떻게 용케 알고 찾아내는 걸까? 라고 신기해했지만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고 해요. 새가 과일에 상처를 내면 상처를 회복하려는 나무의 열심에 의해 상처 난 과일에 더 많은 영양분이 공급되고 그래서 쪼아 먹힌 과일이 더 윤택해지고 맛있어진다는 거였어요. 그러니 두려워 마세요. 상처를 가지고 사랑하면서 가는 겁니다. 당신을 사랑해서 비로소 나를 사랑하게 된 저녁 5시, 당신의 사랑이 넉넉해져 누군가를 감싸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사랑은 배반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가 되어요. 사랑은 자꾸 파문 짓고 파장이 됩니다. “사랑해”라는 당신의 말 한마디를 등불 삼아 오래 아픈 누군가 몸과 영혼의 신비로운 긴 여정에 오릅니다. 누가 할 일이 무어냐고 물으면 당신과 함께 밝힌 촛불을 들고 “사랑”이라고 말하렵니다.

한 해가 저뭅니다. 오, 오오 이런!

“인생 뭐 별거 있겠어요? 잘 될 때까지 사랑하는 일밖에”라는 편지를 내게 보내준 사람이 있었지요. 나무가 없는 아주 작은 무인도에 배를 타고 들어가 소나무 한그루를 심고 나온 그 사람의 해안에 지금 동백이 불을 밝히려 들겠네요.



김선우/시인 
2006/12/15 <한겨레신문>
그림/안인실화백(그림저작권때문에 스크랩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알라 푸가쵸바 (Alla Pugatche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