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싶은풍경

인제 용봉산 자작나무 숲

진 란 2010. 11. 6. 02:45

하얀겨울 닮은 듯 흰 속살 보이며 하늘로 치솟은 눈부신 자태
인제 용봉산 자작나무 숲
여의도 면적 2배… 이국적 풍경 감탄
2010년 11월 06일 (토) 이수영
상남면사무소 거리를 벗어난 차는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 방면으로 접어든다.
낙엽송과 잣나무 사이로 소양호가 언듯 푸른 빛을 드러내는 사이, 차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리드미컬하게 빠져나간다.
단풍으로 자태를 뽐내던 나무들은 어느 새 탁한 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다가올 계절을 예고한다.

   


수산리로 향하는 나그네는 뻔한 늦가을 풍경을 무심하게 지나친다. 풍경 어디에서도 자작나무 숲에 대한 단서를 읽지 못한다. 또 한 번의 오르막을 앞두고 산국이 만발한 농가 마당에 잠시 선 차는, 주민에게 숲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받는다.

농어촌도로를 따라 소박하게 자리 잡은 마을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자 낯설고 웅장한 그림이 펼쳐진다. 자작나무 숲이다. 무려 600㏊,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이 숲은 북유럽의 광활한 숲을 연상시키며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투명한 단풍으로 화려한 계절을 보낸 응봉산의 자작나무들은 늦가을부터 변신을 시작한다. 퇴색한 잎을 하나씩 털어내더니 이윽고 눈부시게 하얀 알몸을 드러내며 다가올 계절과 마주한다. 자작의 미끈한 몸매로 만들어진 직선의 조합이 신비롭다. 숲은 푸른 하늘과 만나면서 또 한 차례 조화를 부린다. 흰색과 청색, 그리고 수많은 선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마술이다.

일명 매봉으로 불리는 응봉산의 자작나무 숲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좁은 임도를 따라 10㎞ 코스로 트레킹을 하는 것이 좋다. 수산리 마을에서 출발해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3시간 남짓의 산행이다. 길은 웅장하고 신비한 숲의 다양한 모습을 차례로 선물한다. 산엔 자작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달나무와 잣나무, 굴참나무는 자작 숲과 어우러지면서 변화무쌍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능선을 따라가던 나그네는 산 중턱 박달나무골에서 장엄한 스케일의 자작나무 산을 발견한다. 펜으로 그린 듯 불규칙하게 뻗은 하얀 가지들은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첩첩이 쌓인 자작나무 산은 햇빛을 받은 숲과 그늘진 숲이 조화를 이루는 장관을 경험하게 한다. 응봉산 정상 쪽에 이르면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를 만난다. 좁은 산길에서 이어지는 자작숲이 아득한 풍경을 연출한다. 몽환적인 장면과 마주한 나그네는 원근감을 잃고 현기증을 느낀다. 사진 작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장소다.

매가 많아 매봉으로 불리는 응봉산 정상 아래 골짜기는 치락골이다. 매의 밥이었던 꿩이 많아 그렇게 부른다. 치락골 산길에 들어서면 자작나무 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몇 구비의 오솔길을 지나 완만한 산길을 걷던 나그네는 익숙한 모양의 자작나무 숲을 발견한다.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가 무리를 지어 한반도 모양을 만들었다. 하얀 색의 한반도는 바다 역할을 하는 푸른 잣나무숲를 배경으로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응봉산 자작나무숲은 한 펄프회사의 조림사업으로 탄생했다. 회사는 1985년부터 이 산에 180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었으며 이들이 성장하면서 다시 씨를 뿌리고 자연의 힘을 빌려 번식을 거듭했다. 사람과 자연이 시간을 따라가며 거대한 숲을 만든 것이다.

매봉의 자작나무들은 이제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더 하얗고 날카롭게 자신을 변신시키며 겨울을 기다린다. 인제/이수영 sooyoung@kado.net·사진/김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