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소식

[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

진 란 2009. 1. 11. 14:22
돌아오지 않은 황제의 여인




중국 역사를 통틀어 절세가인 중 하나로 꼽히는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의 후궁이었다. 원제는 궁녀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면 총애하였다. 후궁들은 그림을 그리는 화공()에게 잘 보이기 위해 뇌물을 썼다. 실물보다 그림을 더 잘 그려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으로 치면 본래의 모습과 다르게 성형을 시도한 셈이다. 왕의 총애를 받기 위한 후궁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생각하면 요즘이나 그때나 미모에 대한 경쟁의식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황제에게 본래의 모습을 고하지 않고 그림으로 성형한 모습을 올릴 생각을 했다니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 아닌가.

후궁 중 가장 아름다웠던 왕소군은 원제에게 한 번도 발탁되지 않았다. 돈이 없어 화공에게 뇌물을 쓰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녀를 오만하고 괘씸하게 여긴 화공은 왕소군을 본래의 모습보다 더 못생기게 그려 왕은 단 한 번도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왕은 그녀가 후궁 중 가장 못생긴 줄 알고 흉노와의 화친정책 때 그녀를 흉노의 왕에게 출가토록 하였다. 뒤늦게 그녀의 실물을 보고 황제는 놀라고 안타까워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흉노와의 약조를 어길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절세가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왕소군이 출가한 뒤 왕은 후궁의 그림을 그려 올린 화공 모연수() 등을 사형에 처했다. 하지만 한번 떠난 절세가인은 끝내 중국 땅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흉노의 왕에게 출가한 그녀는 흉노의 왕이 죽은 뒤 왕위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과 다시 결혼하여 평생을 흉노의 땅에서 살았다. 이를 불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왕소군이 타국에서 살게 된 건 불행한 일이지만 평생 후궁과 성형 경쟁이나 하며 살기보다 훨씬 나은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절세가인이었으면 왕이 죽은 뒤에 그 아들이 다시 왕비로 삼았겠는가.

성형미인이 넘쳐나는 세상, 절세가인의 사연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림 성형을 하지 않아 오히려 팔자가 바뀐 여자. 한 미인을 잃은 게 아니라 대륙의 절세가인을 잃은 걸 후대의 많은 시인은 애석해하였다. 그중의 하나, 이백()의 ‘소군원()이라는 시가 너무 절절하다.

한나라 시절 진나라 땅에 떠 있던 달은/그림자를 내려 명비를 비추네./한번 옥관도에 올라/하늘가로 떠나간 후 다시 못 오네./한나라 달은 돌아와 동해에 떠오르건만/명비는 서쪽으로 시집가고 돌아올 날이 기약 없네./연나라 땅의 긴 겨울에 눈이 꽃을 만들었으니/고운 얼굴 초췌하여 오랑캐 모래에 사라지도다./살았을 때 돈이 없어 화공이 잘못을 저질렀으니/ 죽어 푸른 무덤만 남겨 사람들로 하여금 탄식하게 하네. / 박상우 작가

 

 

태양, 차별 없는 무한사랑



일출-신, 망, 애(, , )’ 신동권, 그림 제공 포털아트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출은 우리네 삶의 경계입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하루 일을 마감합니다. 그런 일이 일출을 경계로 평생 되풀이됩니다. 수평으로 누워 자고 있다가 해가 뜨면 수직으로 일어나 일터로 나갑니다. 진종일 열심히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수평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하루 단위로 되풀이되는 수평과 수직을 확장하면 인생이 됩니다. 갓난아이일 때는 수평으로 누워 있다가 기고 걷는 과정을 거쳐 인간은 수직적으로 성장합니다. 늙으면 등이 굽거나 허리가 휘고 운명을 다하면 다시 수평 상태로 돌아가 영면을 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날마다 되풀이되는 하루는 인생의 압축이고 축약입니다. 하루를 잘 사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을 잘 사는 것입니다.

일출과 함께 새날이 시작됩니다. 새날이 모여 새달이 되고 새달이 모여 새해가 열립니다.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태양 앞에 섭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원합니다. 금전 승진 합격 건강 등등 각자 자기 인생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남보다 잘살게 해 달라고 빌고, 남보다 높은 자리에 서게 해 달라고 빌고, 남보다 앞서게 해 달라고 빕니다. 요컨대 그것은 차별에의 갈망입니다.

일출을 보며 사람들은 차별화된 인생을 갈망하지만 태양은 아무것도 차별하지 않고 고르게 빛을 나누어 줍니다. 가난하다고 빛을 주지 않고 못생겼다고 빛을 거두지 않습니다. 맑은 물에도 내려앉고 더러운 물에도 내려앉습니다. 키가 큰 나무도 감싸주고 키가 작은 나무도 감싸줍니다. 그렇게 태양은 아무것도 차별하지 않는 광원()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빛을 온 세상에 골고루 나누어 줌으로써 태양계의 생명 활동이 유지되게 합니다. 그렇듯 평등한 태양 앞에서 남보다 잘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건 나에게만 각별한 빛을 달라고 차별을 기원하는 일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태양으로부터 발산되는 빛은 만물에 대한 긍정의 상징입니다. 차별하지 않는 태양 앞에서 차별을 기원하는 자세를 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태양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별이 아니라 긍정과 포용, 그것으로 태양의 마음을 닮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밝은 햇살의 어느 구석에도 부정적인 기운이 없으니 태양의 마음은 막힘이 없는 무한 열림입니다.

 

구태의연한 우리 마음의 자화상, 태양 앞에 드러내고 부정적인 기운을 건조시켜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시작하는 새해, 태양의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태양의 마음으로 주변을 감싸주고, 태양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어루만져야겠습니다. 태양의 마음, 그것이 곧 차별 없는 무한사랑입니다. / 작가 박상우

※‘그림 읽기’는 오늘자부터 작가 박상우 씨가 집필합니다. 그동안 수고해 주신 작가 김주영 씨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