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소설가 서영은
사진/ 탁인아
소설가 서영은
“남편을 잃은 깊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오게 해준 건‘성경공부’였습니다”
<먼 그대>의 소설가 서영은씨가 오랜만에 산문집을 펴냈다.
<안쪽으로의 여행>은 흑백사진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을
차곡차곡 적어내려간 사진 에세이집이다.
이제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서씨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많은 것을 되돌아본다.
남편을 잃은 깊은 상실을 훌훌 털고 여행과 탱고,
그리고 새롭게 접한 신앙 속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그의 근황.
사진 왼쪽에는 나뭇가지가 앙상한 커다란 나무가 서 있다. 여기는 언덕일까. 구름 한점 없는 하늘 밑으로는 그 흔한 빌딩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사진에는 이상한 적막함이 흐른다. 나무가 서 있는 반대편에는 과연 앉을 수나 있을까 싶은, 서툴게 목공질된 나무 의자가 기우뚱하게 버려져 있다.
소설가 서영은씨(59)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로 이 한장의 사진이었다.
“우연히 사진 전시회에서 탁인아씨의 사진을 봤어요. 보고 있는데 아득한 느낌이 들더군요. 망가진 의자, 고장난 시계, 마당에 잡풀이 무성한 빈 집… 매일매일 시간을 잃어가면서도 실감을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사진 속의 사물들은 흘러간 시간을 깨우쳐주더군요. 그 사진들에 내 마음이 움직였어요.”
서씨는 생면 부지의 사진작가에게 “사진과 글을 함께 묶어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한 인터넷 웹진을 통해 그들의 작업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합의가 된 후 인아씨가 1백여장이 넘는 사진을 보내줬어요. 그걸 보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들을 추려냈고, 마음 가는 대로 글들을 풀어냈지요. 그게 <안쪽으로의 여행>이에요. 산문집은 아마 10년 만인 거 같아요.”
사진 / 탁인아
처마 위로 무심히 걸쳐진 사다리 사진을 보면서 그는 인생의 이치를 읽어낸다. 사다리에 올라선 사람도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무작정 오르다가는 내려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이 사다리에는 존재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겹쳐져 있는 ‘사다리’에서 그렇게 그는 인생을 읽어낸다.
“이 글들은 일반적인 입장에서 상상해서 쓴 글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대부분 저의 실제상황인 줄 알더군요. 누군가는 영화포스터 판넬을 찍은 사진을 보고 써놓은 영화 감독이 되고 싶은 남동생 얘기를 읽고는 제게 ‘남동생이 영화감독이예요?’라고 물어보더군요. 그게 다 상상이었는데 리얼리티가 있나 봐요. 유일하게 내 기억에 빗대 쓴 건 ‘거기에 해바라기가 있었다’예요.”
‘그 집엔 세 식구가 살았다. 나이 많은 노인과 30년 연하의 젊은 아내, 그리고 부엌일을 하는 할머니. 함께 있는 것은 아내였으나, 남편의 기억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전처였다’로 시작되는 그 글은 애잔하게 기억을 따라간다. 전처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있는 집안의 물건을 고스란히 놔둔 채, 젊은 아내는 자신의 방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불편을 내색하지 않는 것이 남편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아침이면 늘 잣죽만을 고집하는 남편과 밥과 국을 먹는 아내. “우리도 뜰에 해바라기를 심어볼까?” “나중에 씨앗을 받아둬야겠어요.” 어느 아침. 부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기까지 남달랐던 그와 소설가 고 김동리씨의 사랑이야기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아내가 있는 30년 연상의 유명한 소설가를 사랑한 경험은 젊고 예민하며 자의식 강한 여성 소설가가 치러내기에는 혹독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여자>를 펴낸 2년 전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서씨는 남편의 빈 자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95년에 김동리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사는 의미를 완전히 휩쓸어갔어요.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원폭이 터지듯 존재 자체를 파여놓는 느낌이었죠.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였고 특히 그분은 제게 단지 한 남자 이상의 의미였기 때문에 그 상실감이라는 게 말도 못했죠. 거의 손을 놓고 지내다가, <그녀의 여자>를 쓰면서부터 내면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지요.”
남편의 죽음과 그로 인한 상처를 통해 인간으로서 성숙해져
그러면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던 것은 꾸준히 해왔던 ‘성경공부’의 영향이라고 했다. 덧붙여 처음에는 혼란이 컸다고. 변화는 4년여의 시간을 거쳐 아주 서서히 이뤄졌다고 했다.
“작가란 자기 개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자기를 통해 얻은 걸 표현하는 존재입니다. 자기가 중심이죠. 그런데 신앙인은 당신 안에서 완전히 죽겠다는, 남을 섬기는 자세예요. 제 안에서 두 개의 나가 서로 상충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런 갈등이 사라졌어요. 마음의 밑바닥이 완전히 달라진 거죠.”
그는 담담히 이어 말했다. “남편과의 이별로 인생의 한장이 접어진 거라 생각해요. 그 모든 일이 없었다면, 더 아프고 고통스러운 극한 지경에 달해서야 인생에 눈을 떴겠지요. 제가 겪어낸 이 모든 경험들이 도리어 제 바탕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걸 이제는 감사해요.”
그러면서 그는 외줄타기 소녀를 그린 그림 이야기를 해주었다. 높은 곳에 외줄이 걸려있고 밑에는 소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저 아래서 위로 환하게 밝힌 빛이 소녀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소녀는 양손에 장대를 쥐고 위태롭게 줄을 탄다.
“외줄에서의 중심은 양쪽 흔들림에 있다는 것, 그러니까 외줄에서 흔들림은 위험이 아니라, 도리어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지요. 흔들림은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셈이에요.”
그는 2년 전과 마찬가지로 평창동의 주택에서 살고 있다. 담쟁이 덩굴이 휘감고 올라간 독특한 구조의 3층집. 1층은 소설가 이제하 선생이 화실로, 3층은 이문재 시인 가족이 살고 있다. 문인만 3명이 어울려 사는 독특한 집. 교류가 많은 것 같아도 의외로 얼굴 대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이 곳에서 개 세 마리와 함께 산다. 굳이 훈련을 시키는 건 부자연스럽다는 주인의 생각 때문인지, 이 집 개들은 똥을 못 가린다. 그래서 마당에는 개똥이 소복하다.
“이제는 쓸고 닦고 매번 부지런을 떨기엔 너무 힘드네요.”
무안해하는 그이지만, 작업실로 쓰는 서재는 자연스레 어질러져 있는 것이 도리어 편안해 보인다. 그는 커다랗게 낸 창문 앞에 놓인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한다.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 그는 손으로 쓰는 원고지를 지금껏 고집한다. 요즘 육필로 쓰는 작가는 ‘천연기념물’ 취급을 당한다는 걸 그도 알지만, 굳이 자신을 바꿀 필요를 못 느낀다고.
“자판을 칠 줄도 알고 인터넷 서핑도 합니다. 그렇지만 글만큼은 안되네요. 자판으로 치는 것은 뭔가 코드가 다른 거 같아요. 우린 묵향이라는 걸 너무 쉽게 잊어버렸어요. 예전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직접 먹을 갈아, 붓을 들었잖아요? 그건 어떤 정신과 결부된 건데, 그런 게 없어진 게 아쉽다는 생각도 해요. 물론 요즘의 추세라는 게, 편의를 더 따지는 세상이긴 하지만요. 이렇게 원고지에 직접 쓰다보면 안 좋은 점도 있어요. 우선 파지(破紙)가 수북하게 나와요. 어떤 분은 소설을 쓴 원고지가 키를 훌쩍 넘긴다는데, 전 파지가 그래요(웃음). ‘이 표현은 아닌데…’싶어 북 찢어내도 버릴 수는 없지요. 어떨 땐 그 파지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되거든요.”
직접 손으로 쓰는 행위는 기계에 의탁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혼을 육체에 실어내는 것. 그래서일까. 그가 탱고에 빠져있다는 얘기가 전혀 놀랍지 않다. 그는 EBS 다큐멘터리를 보고 탱고에 반해있던 차에 프랑스 영화 <탱고 레슨>을 보고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국민대 평생교육원에서 1년 이상 탱고를 배웠다고 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배운 탱고,그리고 여행이 주는 기쁨
“내 몸을 미학적 경지에 도달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갈등중이에요. 기본은 전부 마스터했는데 그 다음 단계가 만만치 않거든요. 춤에 자신만의 맛을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유명 선생에게 사사를 받아야 해요. 1백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끝까지 익히겠다는 독한 결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과정이라 망설이고 있어요. 탱고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춤이거든요.”
환갑을 바라보는 여자가 탱고라는 춤을 배우는 낯선 풍경. 그것은 기이하면서도 유쾌한 상상이었다. 격정적이고 우울한, 글로만 상상했던 작가의 모습과는 180도로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그는 또 뜻밖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여행광’ 서영은의 발견이다.
스스로 우스갯소리처럼 “5대양 6대주를 다 돌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여행 경험이 풍부하다. 그가 가본 나라 중 가장 마음에 든 나라는 노르웨이. 북유럽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바이킹의 후손들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전나무 숲과 만년설, 그리고 특유의 피요르드(빙하가 지형을 V자나 U자로 긁고 간 계곡에 물이 차 있는 자연 경관)가 자아내는 냉담한 아름다움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친환경적 정책이 그에게는 마음 깊이 감동을 주었다고 했다.
“차 한대 폭밖에 안되는 길 때문에 맞은 편에 차라도 오면, 어느 한쪽이 후진을 해서 도로 끝까지 나가서 오는 차를 피해줘야 하지만, 국민들이 그 불편함을 기꺼워하면서, 개발을 막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그는 얼마 전엔 일본을 거쳐 북한엘 다녀왔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홈 스테이를 하고 귀국한 후 바로 한민족복지재단이 주선한 행사에 참가하느라 북한을 방문했다. 그리고 기자와 만났을 때 그는 다시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7월25일부터 ‘꿈에도 그리던’ 남아프리카로 열흘간 여행을 떠나는 것.
“5대양 6대주를 돌았다고는 하지만 못 가본 곳이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예요. 이번에 외대 아프리카어과 교수의 주선으로 남아공에 갑니다. 벌써 가슴이 두근거려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건 단지 여행 자체의 즐거움 때문만은 아니예요. 그보다는 지구 전체의 ‘돋을새김’들을 두 발로 직접 밟아본다면, 나를 둘러싼 이 지구의 풍경을 좀더 잘 이해하겠다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늘 “떠나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했다. 일단 익숙한 일상에서 떠나보면 낯선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에 치여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그리고 또한 무리한 주문인가.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 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저도 젊을 땐 그랬어요. 제가 보니까 삶의 시기엔 씨를 심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고, 물을 줘야할 때, 또 반대로 거둬들여야 할 때가 있는 듯 싶어요. 때가 되면 누구나 그 충동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고 전 생각해요.”
신앙, 여행, 탱고…. 그의 차기작은 이런저런 그의 변모가 반영된 새로운 소설이 아닐까. 이런 기자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럴 거라 생각해요. 문제는 나이가 드니까 자꾸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데…날이 갈수록 쓰는 속도가 더 더뎌지네요. 건강이요? 아, 이 나이쯤 되면 병이야 한두 가지쯤 거느리고 사는 거지요.” 작가의 웃음이 무명처럼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