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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진 란
2007. 1. 11. 14:20
눈꽃
이런 날 여행을 떠나보세요. 폭설로 길이 막히면 쉬어가면 되지요. 매번 떠나는 여행의 목적지는 언제나 그렇듯이 짐을 꾸리고 문을 열고 나서는 바로 그 자리지요.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거든요. 각성의 큰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쿵하고 떨어지면 더 없이 의미 있는 여행이 되겠지요. 돌아오는 여행을 왜 떠나느냐고요, 그야 지금 내리는 눈처럼 힘들고 지친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서지요. 여행을 떠나보면 던져버리고 싶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아늑하고 행복이 넘치는 곳인지를 알게 되지요. 때로는 귀찮고 등 돌리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지요. 여행은 반복되는 삶에 비타민인 셈이지요. ![]() 지금은 달라졌지만 강원도 정선의 구절리라는 곳이 있지요. 기차를 타면 종점이지요. 우리에게 알려진 정선 아리랑의 고향인 아우라지를 하나 더 지나면 구절리역이지요. 정말 벽지였지요. 그 곳에서 기차는 멈춥니다. 더 갈 수 없지요. 막힌 곳을 넘으려면 백두대간을 넘어야 하는데 험준한 굽이굽이지요. 버스로 백두대간을 아주 힘겹게 넘는데 아찔하기도 했지요. 눈은 내리고 버스는 구부러진 길을 오르고 내리거든요. ![]() 눈구경을 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었지요. 그 때는 폭설이었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길이 막혔다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거든요. 길이 막히면 쉬어가고 넘어지면 또 쉬어가면 되지요. 서두르는 사람은 주위 풍경을 놓치기 마련이지요. 눈길에 갇혀야 제대로 눈을 구경할 수 있고 생명들이 눈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지요. 인생길 바쁘게 간다고 행복이 빨리 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빨리 달려가는 사람들이 놓친 건 풍경뿐이 아니지요. 행복도 놓치거든요. 웃음도 천천히 얼굴에 담아야 더 아늑해 보이지요. 정말로 길을 잃어야 천국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거든요. 그만큼 앞날에 대해 긍정하는 사람이지요. ![]() 우리가 태어난 것이 지구여행이라고 하면 길을 잃었다고 힘들어 해야 할 일이 아니지요. 예상하지 못한 곳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혼자 여행할 때는 여행의 목적지를 정해놓고 한 적이 없지요. 그 날 그 순간에 마음이 가고 싶은 길을 정해서 가지요. 버스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마음이 변해 항구로 가서는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도 하지요. 여행의 기쁨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날 때가 많지요. 풍경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렇지요. 사람은 언제나 그렇지만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감동이지요. 사람에 대한 감동은 여운이 오래 가거든요. 길에서 만난 사람과 막걸리를 같이 하고는 기약없이 헤어지는 여행은 미로였습니다. ![]() 그래서 제 여행은 럭비공을 닮았지요. 사람도 럭비공을 닮기는 마찬가지고요. 길이 일직선으로 난 고속도로도 좋지만 산이 펼쳐놓은 치마선을 따라가는 산길이나 들의 굴곡을 그대로 오르내리는 들길도 그 나름대로 좋거든요. 인생길이 조금 휘어져서 돌아간다고 힘들어 할 일이 아니지요. 삶은 느긋이 걸어야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폭설이라고 할 만큼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살아 행복한 날에 만나는 폭설은 축제입니다. 선물받은 '오늘'로 눈과 함께 여행을 떠나보세요. 여행의 종착지에서 살아있음의 고마움을 만나거든요. -글, 신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