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風景
가을 편지
진 란
2006. 10. 27. 03:14
![]() 당신이 안 보이는 날. 울지 않으려고 올려다 본 하늘 위에 착한 새 한 마리가 날으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향한 내 무언(無言)의 높고 재빠른 그 나래짓처럼. ![]() 당신은 내 안에 깊은 우물 하나 파 놓으시고 물은 거저 주시지 않습니다. 찾아야 주십니다. 당신이 아니고는 채울 수 없는 갈증. 당신은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는 샘, 돌아 서면 즉시 목이 마른 샘.... 당신 앞엔 목마르지 않은 날 하루도 없습니다. ![]() 이 가을엔 안팎으로 많은 것을 떠나보냈습니다. 원해서 가진 가난한 마음 후회롭지 않도록 나는 산새처럼 기도합니다. 시(詩)도 못쓰고 나뭇잎만 주워도 풍요로운 가을 날, 초승달에서 차 오르던 내 사랑의 보름달도 어느새 다시 그믐달이 되었습니다. ![]()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섬은 변함이 없고 내 마음 위에 우뚝 솟은 사랑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은 밝은 귀, 귀가 밝아서 내가 하는 모든 말 죄다 엿듣고 있습니다. 사랑은 밝은 눈, 눈이 밝아서 내 속마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읽어 내립니다. 사람은 늙어 가도 늙지 않는 사랑. 세월은 떠나가도 갈 줄 모르는 사랑. 나는 그를 절대로 숨길 수가 없습니다. ![]() 잊혀진 언어들이 어둠 속에 깨어나 손 흔들며 옵니다. 국화빛 새 옷 입고, 석류알 웃음 물고 가까이 옵니다. 그들과 함께 나는 밤새 화려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찔레 열매를 닮은 기쁨들이 가슴 속에 매달립니다. 풀벌레가 쏟아 버린 가을 울음도 오늘은 쓸쓸할 틈이 없습니다. ![]() 당신이 축복해 주신 목숨이 왜 이다지 배고픕니까. 내게 모든 걸 주셨지만 받을수록 목마릅니다 당신에게 모든걸 드렸지만 드릴수록 허전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끝이 나겠습니까? ![]() 가을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가을에 온 당신이 나를 떠날까 두렵습니다. 가을엔 아픔도 아름다운 것. 근심으로 얼굴이 핼쓱해져도 당신 앞엔 늘 행복합니다. 걸을 수 있는데도 업혀가길 원했던 나 아이처럼 철없는 나의 행동을 오히려 어여삐 여기시던 당신... 한 켤레의 고독을 신고 정갈한 마음으로 들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 여기 제가 왔습니다. 언제나 사랑의 원정(園丁)인 당신. 당신이 익히신 저 눈부신 열매들을 어서 먹게 해 주십시오. 가을 하늘처럼 높고 깊은 당신 사랑의 비법을 들려 주십시오. 당신을 부르는 내 마음이 이 가을엔 좀더 겸허하게 하십시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에서- |